‘반성’. 자기 자신의 상태나 행위를 돌아보는 일은 말만큼 쉽지 않다.
약간 비약하자면 자신의 치부를 끄집어내는 일은 내 안의 악령을 몰아내는 엑소시즘과도 같다. 그러나 엑소시즘에는 위험과 대가가 따른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또 다른 잘못의 반복을 하지 않으려는 자기 제령의식의 뒤에 오해와 불신의 벽이 쌓이기도 한다. 치유의 대가로 신체적 고통을 요구하는 엑소시즘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다고 반성을 않는다는 것은 ‘괴물이 되겠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명제는 참이다. 만인에 공포하고 잘못을 뉘우침으로써 허물은 용서받고 자신은 구원을 받는다. 그 순간만큼은 새 출발의 계기가 된다.
국내 언론계에서 ‘반성’은 그리 익숙하고 달가운 단어가 아니었다.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쪽’ 팔려서 그런 것인지, 그렇게 할 가치가 없었던 것인지, 반성하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반성에 인색했다. 그나마 1997년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성을 한 것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지난해 4월부터 대구경북지역의 인터넷신문 평화뉴스(편집장 유지웅·www.pn.or.kr)을 통해 이색적이고 신선한 시도가 있었다. 이름하여 ‘기자들의 고백’. 몸소 겪은 언론계의 관행과 촌지수수, 민원청탁 등 취재현장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들춰내 고해성사하는 자리였다.
스스로를 개혁하는 주체가 되겠다는 일종의 ‘자기 선언’이었다. 이와 함께 언론계의 올바른 문화를 만드는 계기를 형성해보자는 취지였다.
지난해 4월5일 매일신문 조두진 기자의 <“나는 유능한 기자?”>라는 ‘고백’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오는 27일 총 40회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40회는 유영철 영남일보 편집국장의 몫이다. 유 국장의 소회와 젊은 기자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후 유지웅 편집장의 고백 후기와 뒷얘기가 대단원의 막을 장식한다.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게재된 이 시리즈에는 대구경북지역에 뿌리를 둔 언론사의 기자들은 물론 전국단위 신문·방송의 현지주재기자들이 이 대열에 동참했다. 총 20개 언론사에 달한다.
섭외는 유 편집장의 몫이었다.
10여년의 기자생활로 쌓아온 인맥을 중심으로 한마디로 ‘엉겨 붙었다’. 선배들에게는 “써 달라”는 애원(?)을, 후배들한테는 “좀 해라”는 강요(?)를 오가며 차츰 외연을 확대했다. 청탁하는 말을 꺼냈을 때 처음부터 순순히 “하겠다”고 나선 기자는 거의 없었다. 사정하고 부탁하고 매달렸다. 그래도 결국 못한 경우도 있었다.
“남의 것 취재하긴 쉬우나 자기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춰 써 볼일이 뭐 있었겠냐. 특히 공개적으로 하다보니 부담이 많았을 것”이라고 유 편집장은 말했다.
그러다 차츰 이 시리즈가 알려지면서 10회차 이후에는 “내 차례가 됐구나”하는 식의 반응도 돌아왔다. 청탁했을 때 반응은 대체로 “내가 쓸 자격이 되겠나...”와 “난 고백할 것이 없는데...”로 나눠진다는 것이 유 편집장의 설명이다.
치부를 드러낸다는 것, 적잖은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을 법하다.
남을 탓하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으나 자신에게 칼날을 들이대는 일은 또 다른 마음가짐을 필요로 함은 분명하다. 공개된 글이다 보니 ‘수위조절’도 있었을 테고 공개된 글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는 물론 오해도 있었다. 엑소시즘의 댓가를 치른 것이다.
유 편집장은 “그동안 ‘고백’을 강요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크고 고백한 내용들이 다른 인터넷사이트에 많이 알려지면서 ‘지방 기자들이 다 그렇지’하는 오해와 비난을 사기도 했다”며 “그래도 시리즈를 통해 고백한 기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유 편집장은 기자들에 이어 ‘교사들의 이야기’(가칭)을 후속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다. 역시 자기반성을 모토로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학생·학부모와의 관계, 교사들의 관행 등을 주된 내용으로 대구경북의 교사들에게 청탁할 예정이다.
한편, 오는 28일 창간1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기점으로 평화뉴스는 ‘매체비평팀’을 꾸리기로 했다.
지역 내 10년차 이상의 취재기자와 편집기자 등 5~7명으로 구성, 3월부터 이를 운영키로 했다. 지역신문부터 시작, 한달에 2번 정도 지역 언론에 대한 매체비평을 하고 이후 자리가 잡히는 대로 방송도 모니터링하면서 매주 한번씩 비평에 나설 계획이다.
유 편집장은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에 대한 비평을 넘어 기사 내용과 편집에 대한 분석과 비평에도 힘을 쓸 것”이라며 “당장에 무슨 성과를 내기보다 멀리 보고 매체비평팀을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오늘>(2.24)(http://www.mediatoday.co.kr) 이김준수 기자 jslyd012@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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