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평화뉴스
  • 입력 2005.04.27 0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교 밖에선 ‘공교육의 위기’, 학교 안에선 ‘절대 침묵’ ..."


J 선생님.

일전에 있었던 일로 선생님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선생님이 저에게 주신 격려의 말씀 한마디가 너무 큰 힘이 되었기에 이렇게 다시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관료적이고 비민주적인 학교의 분위기는 교직생활에서 가장 회의를 가져오게하는 원인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 날도 참다 못해 몇일을 고민하다 힘겹게 던진 항의의 한마디였습니다.

제가 교무회의에서 그랬었죠.

"교감선생님, 학생등교 시간을 당겨 강제 자율학습을 하겠다고 하시는데 이 문제는 학생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교사의 근로조건을 동의없이 열악하게 하는 것으로써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강제보충수업, 강제자율학습을 하지말라는 작년의 도교육청의 지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 시정을 바랍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 지난 주 첫 교무회의에서 '학교에서 인성교육은 버겁다. 학력 향상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발언은 모든 교사의 교육활동에 심각하고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여기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버거우면 인성교육은 어디서 하죠? 학원에서 인성교육을 해야합니까? 학교는 인성교육을 하지말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대충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학력, 학력 오로지 학력 향상에만 치중하시겠다는 그 말씀이 과연 국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 부합한지 묻고 싶습니다. 학교란 모름지기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곳 아닙니까? 학교란 학생들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심성을 길러주고, 인권과 평화,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감수성과 존중감을 길러주어야 하는 곳이 아닌가요?

며칠 전에 교육부에서는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어떻게 우리 교무회의 시간에 한마디 언급조차 없습니까? 우리학교에도 폭력조직이 있고, 학교 폭력이 있어왔고, 금품갈취가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이 문제를 놓고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감정이 격앙되었습니다. 아마 교직에 오시고 교무회의에서 이런 모습을 처음 접하는 J선생님은 많이 놀라셨고 매우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교무회의 시간에 제가 일어나서 어떤 문제를 따지면 옆자리 앉은 교직경력이 10년이 훨씬 넘은 한 선생님도 가슴이 벌렁벌렁하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저 역시 공개적으로 학교관리자들을 비판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 날 5분도 채 안되는 발언을 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답니다. 학교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문제를 공개회의에서 지적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 때부터 머리 속엔 온통 그 문제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해야할 말이 수없이 되뇌여지고 계속 그 날 상황이 미리 머릿속에 떠오르며 다른 선생님들이 어떻게 생각 하실까, 나에게 어떤 비판이,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까 두렵고 가슴 떨렸습니다. 그렇게 4, 5일을 보내야했습니다. 밤잠을 설치자 아내가 눈치를 채고 무슨 일이 또 있냐고 걱정 어린 타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그랬었죠. 남을 비판하는 것은 엄정한 자기 성찰과 비판이 있은 후에야 가능하다고 ! 말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무엇보다 발언하는 그 순간은 더 힘들고 긴장되었습니다.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르고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 혹시 앞뒤가 꼬이지나 않을까 말이 버벅거리지나 않을까 온 신경이 곤두서는 초긴장의 시간이었습니다. 왜 이래야 하죠? 교무회의에서 교육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토론하는데 왜 우리는 이래야 하죠? 전 이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습니다. 평소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조직은 언젠가는 망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아니 벌써 학교는 망해가고 있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학교 밖에서는 모두들 '공교육의 위기'를 이야기하는데, 정작 학교 안에 있는 우리 교사들은 아무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아무도 교육적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교무회의는 지시,전달의 장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 관리자들은 학교의 모든 의사결정 구조를 틀어쥐고 학교를 농단하는데 아무도 잘못을 말하지 않습니다. 정말 너무 슬프고 가슴아픈 일입니다.

이 곳이야말로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급속도로 변해가는 사회 속에 학교는 여전히 7,80년대 모습에서 별 진전이 없는 듯 합니다. 특히 승진에 눈먼 교사들과 교장,교감의 모습에서는 더욱 더 말입니다.

교무회의에서 저의 발언이 있은 그 날 오후 J선생님은 사탕을 하나 주시면서 "선생님, 사탕드세요. 선생님 존경합니다."라고 말씀하셨죠. 그것도 교무실에서 옆에 교무부장선생님이 계시는데도 말입니다. 전 순간 제 귀를 의심했었고 그리곤 가슴이 막 터질 것 같았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아! 정말 너무 감사했습니다. 너무 긴장했었고, 공개적으로 남을 비판하고나서 마음이 편치않았던 저에게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는 참으로 봄 햇살 같았습니다. 물론 '존경'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았지만요.
제가 누구에게 존경받을 사람이 아니란 것을, 또 그 정도의 발언이 존경받을 만한 일도 아니란 것을 잘 압니다. 아마 선생님께서 저에게 공감을 표시하면서 적절한 단어를 못찾아서 사용했던지, 아니면 경직되어 있는 저를 위로하시기 위해 선택한 단어란 것은 잘 압니다. 어쨌든 선생님은 전교조 조합원도 아니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용기 없이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노동조합의 지원을 등에 업은 조합원이 한마디 하는 것은 어쩌면 쉬운 일에 속할 것입니다.

전 그날 선생님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았고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학교에 오신지 얼마되지 않아 말없이 계셨지만, 늘 문제점을 인식하고 계셨고 그리고 깨어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J선생님, 선생님은 동지입니다. 우리 교육을 걱정하고 학교를 변화시켜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 하는 동지입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어 그래도 학교에 다닐 힘이 생깁니다. 다시한번 선생님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포항 중등 k교사>
* 이 글은, 경북 포항에서 중등학교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40대 초반 K교사가 쓴 것으로,
권위적인 학교 조직 안에서 교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이 글을 주셨습니다.
글을 써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4월 18일 <평화뉴스> 메인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글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