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평화뉴스
  • 입력 2005.05.2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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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관행이 독버섯”
“작은 관행도 스스로 고치지 못하는데 과연 큰 줄기의 개혁이 될 수 있을지..."


제가 몸 담고 있는 이 지역의 초등에서는 지금도 봄 가을로 현장체험학습(소풍)을 갑니다.

“우리 스스로 도시락을 챙기자”
올해에는 꼭 동의를 이끌어 내보자며, 일주일 전 쯤 동학년 담임들이 모인 자리를 빌어 담임 각자가 도시락을 스스로 챙겨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내어 몇 사람의 동의를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서는 ''관행인데 우리가 없애버리면 안 되지 않느냐, 다른 학년에 욕 먹으니 김밥 정도로만 부탁을 하자."

또 이렇게 한통속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나 혼자 고집할 수 없으니 한 물에 휩쓸릴 수 밖에...”하면서 비겁하게 또...

소풍 당일의 차림상은 당연히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점심 한 끼를 위해 해마다 이렇게 많은 노력과 비용을 학부모들에게 부담시켜야 하나 싶었습니다.

임원 학부모님들의 이런 봉사가 과연 아이들의 담임을 위한 자발적 배려일까.
음식준비에서 소풍놀이 준비물, 놀이 도우미역할, 쓰레기 뒷처리까지...

‘당연히 이런 접대는 받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지닌 다수의 교사들과, 부당한 요구나 부탁에도 아이들의 불이익을 떠 올리며 그에 부응해 주는 학부모들의 잘못된 대응방식이 끈끈한 연결고리가 되어 각종 행사시 관행으로써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부교재, 점심도시락, 청소, 반찬 부탁까지...
스승의 날, 학급비품 마련, 학교 행사 꽃다발, 화환, 다과준비, 행사시의 도우미까지...
임원 학부모들의 행사비 갹출, 발전기금까지...

심지어 환경정리까지 학부모들에게 맡겨 버리는 이런 풍토가 과연 바람직한 건지...

어느 하나 해결치 못하며 안 그런 척 하는 현실.
낼 모레, 또 어떤 날이 되면 얼마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교사가 되어질까? 이번 만은...

하지만, 오늘도 비겁함에 안주해 버렸다는 자괴감을 떨쳐버리기 어렵습니다.

작은 관행부터 스스로가 고치지 못하는데 과연 큰 줄기의 개혁이 될 수 있을지...

‘그래도 나만이라도 행하려 노력하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될거다. 꼭 이루어져야 하고, 꼭 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습니다.

내 할일은 누가 뭐래도 내가 하고 부당하면 거절해야 하지 않을까요?
가을부터는 나 혼자라도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는지, 또 비겁함에 동참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전라남도 목포지역 초등학교 B교사>
* 이 글은, 전남 목포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18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40대 초반의 교사가 쓴 것으로,
학부모들에게 접대받거나 교사가 할 일을 학부모들에게 떠넘기는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시며,
'관행이 독버섯', '염치와 책임으로 잘못된 관행을 고쳐 나가야'라는 제목으로 두차례나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멀리서 글을 주신 B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5월 1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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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1> - 대구 초등 L교사 ... "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교사들의 고백 2> - 구미 중등 L교사 ... "게으른 나를 탓한다"
<교사들의 고백 3> - 포항 중등 K교사 ...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들의 고백 4> - 영주 초등 A교사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교사들의 고백 5> - 대구 중등 H교사 ... "잘못된 부교재 관행, 이젠 바로잡아야"
<교사들의 고백 6> - 목포 초등 B교사 ... “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글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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