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서 탄생하셨다.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걸음을 걷고 난 뒤, 두 손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사자후를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 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외침은 장차 고통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선언, 즉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눈먼 중생들을 위하여 걸림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선언은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6년간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다섯 비구를 상대로 법을 설함으로서 시작하였고, 이후 45년 동안 인도 전역을 다니면서 중생들을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인도하셨다.
부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를 따서 만들었으며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깨달음이란 단순한 개념이나 관념이 아니며, 부처님이 체험을 통하여 증득(證得)한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신 그 가르침 또한 배워서 알아야 하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그 가르침을 믿고 그에 따라 실천 수행해야 한다. 깊고 참된 진리를 깨달은 이는 마침내 생사의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불교 최고의 이상인 열반(涅槃)을 성취한다.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사바세계로 내려 오셨다. 그 분이 나신 곳은 호화찬란한 궁궐이 아니라 길가의 동산 위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가신 우리 스승의 탄생은 그 자체가 중생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불자들은 부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것은 물론 "참 나"를 찾겠다는 분발심을 내고 부처님의 중생구제 원력을 세워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다. 중생의 병의 종류에 맞춰 약을 주셨던 부처님과 같이 우리 불자들은 이 시대의 중생의 고통에 맞게 처방을 해 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부처는 육신이 아니고 깨달음이다.
육신은 이곳에서 열반하지만, 깨달음은 영원히 법(法)과 도(道)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육신을 보는 자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르침을 아는 사람만이 나를 보는 것이니라" 하였다.
* 이심전심(以心傳心) -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
以 : 써 이
心 : 마음 심
傳 : 전할 전
心 : 마음 심
[동의어]
염화시중(拈華示衆) :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다는 뜻
염화미소(拈華微笑) : 부처는 꽃을 들고 가섭은 미소를 짓다는 뜻
[유사어]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
- 언어나 경전에 따르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전하는 오묘한 진리
[출전]
송(宋)나라의 도언(道彦)이라는 사문(沙門)은 그의 저서 <전등록(傳燈錄)>에 석가(釋迦) 이래 조사(祖師)들의 법맥(法脈) 계통과 수많은 법어(法語)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 아닌 마음으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문관(無門關)>이나 <육조단경(六祖壇經)>에도 같은 이야기가 있으며, 특히 송나라의 사문 보제(普濟)의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석가 세존(世尊)이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그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는데, 세존은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말없이 집어 들었다[拈華]. 제자들은 세존의 그 행동을 알 수 없었으나, 가섭만이 그 뜻을 깨닫고 빙그레 웃었다[微笑]. 그제야 세존도 빙그레 웃으며 가섭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제일법(第一法)을 너에게 주노라" 이렇게 하여 불교의 진수는 가섭에게 전해졌다. 이심전심은,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였다고 한데서 유래한다.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연기법(緣起法 - 인연의 일어남에 따른 법)을 통하여 부처에 이르는 것을 보여줌과 아울러 뭇 중생들에게 부처에 이르는 법을 설파한 것입니다. 시끄러움과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고 있는 지금, 눈앞의 현실과 즐거움에 취하여 사자후(獅子吼) 같은 부처님의 진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때입니다.
사자후(獅子吼) : 무섭고 사나운 사자의 울음소리와 같이, 석가의 설법은 그 위엄이 사자가 짖는 것과 같으며, 우뢰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데에서 온 말. 열변이나 웅변을 토하다 라는 말로도 쓰인다>
[참고]
1. 염화시중(拈華示衆)
拈 : 집을 념
華 : 꽃 화
示 : 보일 시
衆 : 무리 중
염화미소(拈華微笑)와도 같은 뜻을 지닌다. 선종에서 선(禪)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로서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기록되어 있다.
영산(靈山)에서 범왕(梵王)이 석가에게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바치자,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으나, 가섭(迦葉)만은 참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고 이에 석가는 가섭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한 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와 미망에서 벗어나 진리를 깨닫는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생멸계를 떠난 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깨닫는 마음) 등의 불교 진리를 전해 주었다.즉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으로, 선 수행의 근거와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화두이다.
2. 가섭(迦葉)과 삼처전심(三處傳心)
석가가 가섭(迦葉)에게 세 곳에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했다는 말.
불교 선종(禪宗)의 근본적인 선지(禪旨)인데, 이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①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다자탑은 중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 북서쪽에 있다. 이 탑은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깨달은 뒤에, 그의 아들딸 60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석가가 그곳에서 설법하고 있을 때 가섭이 누더기를 입고 뒤늦게 오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얕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석가는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 절반을 가섭에게 양보하여 거기 함께 앉도록 하였다. 이것이 첫번째로 마음을 전한 것이다.
②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拈花微笑)
석가가 중인도 왕사성(王舍城) 북동쪽 10리 지점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석가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제자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가섭만은 빙그레 웃었다. 이에 스승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포하였다.
③ 사라쌍수곽시쌍부(雙林涅槃槨示雙趺)
석가가 북인도 쿠시나가라성[拘尸羅城] 북서쪽의 사라수(沙羅樹) 여덟 그루가 둘씩 마주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涅槃)하자,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가섭이 스승의 관 주위를 세 번 돌고 세 번 절하자,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밖으로 내밀어 보였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를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유일한 근거라 하여 매우 중요시한다.
그 중에 영산회상염화미소는 염화미소가 실린 경전에 선종(善種)의 4대교의(敎義)라고 일컬어지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중의 2개가 처음으로 실려있어 더욱 중요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 서예가 청봉(靑峰) 이정택 선생님의 글입니다 -
* 1960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청봉(靑峰) 이정택 선생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과 <한국 서협 대구지부>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청봉의 고사성어>를 통해 옛 성현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5월 15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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