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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
<인의협의료진단 4>
윤창호...."주치의(단골의사) 제도의 필요성“
2005년 06월 05일 (일) 12:03:59 평화뉴스 pnnews@pn.or.kr
<사례 1>

30대 직장인 A씨는 3살배기 딸의 칭얼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제부터 콧물과 기침이 시작되더니 오늘 아침엔 열까지 나서 집 근처 소아과에서 감기약을 받아 먹인 터였다. “여보, 열이 많이 나는 거 같아요. 어쩌죠?” 근심어린 아내의 말에 체온계를 챙겨든 A씨, “음... 38도가 넘는데... 저녁약도 먹이고 잤는데... 어쩌지?”
문득 쳐다본 시계는 12시 30분을 지나고 있고... 두 사람은 할 수 없다는 듯 애기를 업고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한참의 기다림 후에야 소아과 당직 선생님을 만날 수가 있었고 가슴 사진과 피검사, 소변검사 등을 시행한 후 주사까지 맞았다. 딸애의 열이 완전히 떨어지고 검사결과에 아무 이상이 없으니 그만 퇴원하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으로 온 A씨, ‘벌써 5시가 다 되어가네. 잠자기는 글렀고 출근준비나 하자.’며 피곤한 몸을 움직였다.

<사례 2>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인 B씨는 진료기록부에 기록된 신상명세를 슬쩍 쳐다보며 환자에게 물었다.
- ‘51세 여자환자...’ “어디가 불편하셔서 오셨습니까?”
= “선생님, 지가요 협심증이 있어요. 그래서 이 병원 심장내과에 유명한 박사님이 계시다고 하셔서 진료 보러 왔어요. 그리로 좀 보내주세요.”
- “네, 그러셨군요. 협심증 진단은 언제 받으셨어요?”
= “진단을 받은 게 아니구...”
환자는 흉통이 있어 협심증이라는 자가진단을 내린 후 여러 개인병원과 다른 두 군데의 대학병원에서 심초음파와 운동부하 심전도 등의 검사를 다 받았지만 모두 괜챦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하였다. “아니 의사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환자는 이렇게 아픈데 다들 괜챦다는 소리만 하니...” 전공의 B씨는 병력청취를 다하고 나서 환자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전형적인 의사장보기(Doctor shopping) 환자군. 폐경기증후군에 심인성 흉통 같은데... 설득을 해야 되나? 그냥 원하는 대로 보내드릴까?’

<사례 1에 대한 가정>

A씨의 친한 친구들 중에 소아과 의사가 있다. A씨의 딸은 그 친구에게 진료를 받았다.
사례1과 같은 상황에서 A씨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일이다.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해. 지금 애가 다시 열이 나고 보채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 “열이 얼마나 나는데?” “38도가 좀 넘어.” “오늘 낮에 진찰해 보니 다른 건 아니고 단순한 감기였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 준 약 중에 빨간약 있지. 그게 해열제이니 한번 더 먹이고 미지근한 물에 수건 적셔서 몸을 닦아줘. 괜챦을 거야.” “그래, 고맙다. 언제 술 한잔 하자.”

<사례 2에 대한 가정>

사례 2에서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사위가 전공의 B씨라고 가정을 해보자.
처갓집에 저녁 먹으러 온 B씨에게 장모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내가 자네가 소개해 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그러데. 근데 나는 협심증이 있을 거 같은데 말이야” “장모님 걱정 마세요. 제가 오늘 그 병원 선배님하고 통화를 해 봤는데요, 검사결과가 괜챦아요. 저도 그렇고 그 선배도 그렇고 장모님 증상은 폐경기증후군에 신경성으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사위가 말하니 믿어도 되겠지?” “네. 저 믿고 그 선배님한테서 받은 약 좀 드셔 보세요. 괜챦아지실 겁니다.”

   
의사들의 수가 8만 명이 넘어가고, 길을 걷다보면 교회의 십자가만큼이나 흔하게 보이는 것이 병.의원인 이 시대에, 몇 사람만 건너면 주변에 아는 의사 하나쯤 있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도 대학생 친구가 있다면’ 이라고 갈망했던 전태일처럼, 친한 의사 친구 하나 있다면 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의대에 보낼려고 하거나 안되면 의사 사위라도 하나 봤으면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집안에 믿을 만한 의사 하나쯤 있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모든 사람이 고등학교 때부터 의대 갈려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야 되고 모든 부모들이 자식들 공부 열심히 시켜서 의대에 보내거나 딸자식 이쁘게 키워 의사에게 시집 보내야 할까?

당연하게도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 집안의 문제를 속속들이 알고 건강을 책임져 주며 언제라도 전화해서 급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의사, 어떠한 결정을 내리더라도 항상 신뢰가 가고 그 결정이 나의 병을 낫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든든한 아들 혹은 사위 같은 의사. 이런 의사를 누구나 가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치의 제도를 통해서이다.

[주치의(혹은 단골의사) 제도]란, 한 사람의 의사가 특정 지역사회의 일정한 수의 세대를 맡아 포괄적이고도 지속적인 의료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포괄적인 의료'라는 것은, 나이나 성별, 장기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건강상의 문제를 돌보아 준다는 의미와 함께, 병이 생겼을 때 치료해 주는 치료의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을 해 주는 예방의학적인 측면까지도 포함한다.

또한, '지속적인 의료'라는 것은 병이 있을 때만 치료하는 일회적인 진료(episodic care)가 아니라, 건강할 때조차도 지속적으로 건강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며, 한 사람의 환자를 놓고 보면 어릴 때부터 시작하여 그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적인 의사-환자 관계를 형성하는 시간적인 의미도 포함한다.

이러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의료의 결과로서 한 사람의 주치의는 그 환자에 대해 기본적인 병력, 가족력, 사회경제문화적인 배경뿐만 아니라 사소한 습관이나 취미 등, 이른바 그 환자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다. 환자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잘 형성된 의사-환자 관계는 그 자체로서 치료적인 효과를 가지게 되는 바, ‘의사가 약이다(Doctor is Medicine)'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자기의 건강문제를 속속들이 아는 의사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안심과 위약효과(placebo effect)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한 '의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일차의료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좋은 접근성(accessibility)을 의미하는 것으로, 직접 진료를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전화 상담이나 왕진 등의 다양한 형태로 의료에의 접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치의 제도의 장점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국가적 차원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볼 때도 비용효과적인 진료가 가능하게 해준다.

먼저, <사례 1>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A씨는 병원까지 가는 차비, 접수비(여기에는 응급실 수가로 좀 더 많이 책정된다), 불필요한 검사비(한 가지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자면, 애기의 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검사일지라도, 애기의 상태나 병력을 잘 모르는 응급실 당직의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검사일 수 있다), 여기에다가 응급관리료 3만원까지 들 비용을 전화 한 통화를 함으로써 야간 전화 상담료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더구나 <사례 2>의 경우와 같은 의사장보기 환자는 주치의와의 굳건한 신뢰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불필요하게 되는, 고가의 정밀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된다.
한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계에서 형성된 폭넓은 지식과 이해는, 주치의로 하여금 환자가 가지고 있을 다른 문제에 대해 확인하기 위한 기본 검사와,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혹시나 숨어있는 심각한 질병에 기인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행하는 정밀검사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해준다. 또한 질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예방하거나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시행함으로써 의사나 환자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의료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점도 있다.

이러한 비용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차의료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 '의료의 접근성'이 좋아질 수 있고 환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더 좋은 치료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장점 등도 있다.

주치의 제도의 단점 중 하나로 얘기될 수 있는, 환자에 의한 의사의 선택권이 박탈된다는 점은 제도의 시행방법, 즉 국가가 한 지역의 세대를 특정한 의사에게 주치의로 지정하는 형식으로 할지 아니면 여러 의사들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의사를 주치의로 선택하게 할지 등에 따라 해결될 수도 있다.

또한 '의사장보기' 현상이 만연하고 일차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고 바로 3차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행태가 다반사인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이러한 선택권의 제한은 오히려 ‘고비용, 저효율’의 의료자원 낭비를 막을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환자들의 선택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해 주치의와의 계약을 일정 기간마다 갱신하게 한다든지의 방법 등도 따라야 하겠지만 말이다.

의료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일차의료의 강화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이며 그 방법 중 하나인 주치의 제도는 미국,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주치의 등록제’란 이름으로 이미 1996년 서울시 서초구, 경기도 파주시 및 안성군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하였으나, 참여를 원하는 의사가 없고 국민들의 요구도 없어 추진 자체가 무산된 바 있다. 이후 ‘단골의사제도’로 명칭을 변경하고 세부사항을 개선하여 재시도를 하였으나, 의약분업에 따른 의료대란의 여파로 시행이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주치의 제도가 시행되지 못하는 이유에는 일차의료인력의 부족과 의사들 간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도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국민들의 주치의 제도에 대한 이해 부족과 그로 인해 국민들의 요구가 없음으로써 정부가 이를 강력히 추진할 계기를 찾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크다 할 수 있다.

친구 같은 의사, 아들, 사위 같은 의사, 바로 우리 가정의 건강을 책임지는 주치의가 그런 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요구할 때, 주치의 제도의 첫걸음이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대통령만 주치의를 가진다는 법이 있나, 나한테도 주치의가 있어.”

윤창호(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회원. 경북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임상교수)

* [인의협]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줄임말로, 5월부터 시작한 평화뉴스 <인의협의 의료 진단>은, 대구경북인의협 회원들이 의료정책과 의료계 관행, 건강 문제 등을 매주 돌아가며 짚어줍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5월 29일 <평화뉴스> 주요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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