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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기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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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칼럼 17]..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처신과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세간에서 어느 정도 유명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들은 말 가운데 장관 해 본 사람이 “장관 그거 한 번 할 만하더라, 단 국회의원만 없다면 이라고 하자, 국회의원이 받아서 국회의원 정말 한 번 할 만하더라 단지 기자만 없다면” 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말인 즉 우스개 소리지만 이 말 속에는 오늘날 우리 세태의 일면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는 촌철살인이 있다.

일부 기득권층의 권력관계의 양상, 아니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먹이 사슬의 양상을 보여주는 말인데 그 정점에 언론사 기자가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실 한 국가나 사회에서 근원적으로 권력은 구성원들의 위임에서 발생하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들의 권력은 형식논리상 일단 정당한 것이다. 그리고 장관도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임명하니까 역시 그렇다.

그러나 기자는 다르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법적 제한을 받지 않는 신분이라면) 당장 언론사를 차릴 수 있고, 또 기자가 될 수 있다. 국민 누구도 상업적인 언론에 자신의 권력을 위임한 사람이 없다. 있다면 구독료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언론에 봉사가 아니라 권력이라는 측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언론이 국민들의 헌법적인 권리에 속하는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국민들이 위임한 국가 권력이 부당한 횡포를 부리는지를 제대로 감시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흔히 언론사들이 즐겨 사용하는‘정론직필’일 때 스스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도 지방의 신생 일간지에서 기자 생활을 몇 년간 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자 사회에서 회자한 말 가운데‘큰 언론사 크게 먹고, 작은 언론사 작게 먹는다’라는 말이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몰랐지만 얼마 안 있어 이 말이 촌지 수수라든가 이권 개입에 큰 언론사가 유리하다는 뜻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큰 언론사가 부당이권에 많이 개입하고, 큰 언론사 소속 기자들이 작은 언론사 기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촌지를 수수했는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시절 이런 말들이 기자 사회 일각에 떠돌아다닌 것은 사실이다.

간혹 지명도가 떨어지는 신생언론사 소속 기자가 환경문제를 기사화 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부적절한 이권개입과 같은 명예롭지 못한 문제로 사이비기자로 몰려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도, 이들이 그야말로 언론사의 몸통이 아니라 깃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이들의 행위는 엄정한 사법처리를 받아야할 잘못된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만약 이들이 큰 언론사 소속 기자였다면 굳이 쩨쩨하게 협박하지 않아도 원하는 촌지를 얻었을 것이고, 이권 개입도 술술 풀려 이 같은 무리한 짓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근래 대구에 지역구를 둔 한 국회의원의 술병 투척 사건이 대구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망신살을 초래한 적이 있다. 사건 개요는 당시 각 매스컴에 대서특필된 바 있으니 생략하겠다. 당시 신문을 조금 유심히 본 독자라면 조금 색다른 기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같은 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동료 의원이 “사과하라, 네가 기자인줄 아느냐”라고 꾸짖자 문제의 의원이 엎드려 큰절을 하고 난동장소를 떠났다는 가십성 기사가 보인다. 실제로 문제의 의원은 서울 모방송사에서 해외 특파원까지 한 기자 출신이었다.

동료 의원의 멘트가 재미있지 않은가? 네가 기자인줄 아느냐? 이 말의 심층적 의미는 1. 기자는 행패를 부려도 용납된다. 2. 기자는 이런 회식자리에서 의례 행패를 부리는 존재이다. 3. 문제의 당사자가 기자일 때 주로 이런 류의 행패를 부려왔다는 등의 맥락으로 나에게는 읽힌다. 이 발언을 한 의원 역시 기자협회 회장까지 지낸 기자 출신이다.

문제의 의원은 이 사건 이후 자기 당의 몇몇 감투를 내 놓고 지역구민에게 큰절을 하면서 사태를 마무리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이 지역에서 졸업했다는 사실 이외에 지역 발전에 별다른 기여나 봉사를 한 바가 없는 백안의 무명 인사를 (아마)소속 정당을 보고 표를 주어 국회의원으로 뽑았을 지역민들에게 준 상처는 쉽게 치유하기 힘들 것이다. 혹자는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국회의원으로 뽑은 지역민들의 자업자득이라고 체념할지 모르지만 그러기에도 상처가 너무 크고 지역의 체면이 너무 구겨졌다.

이 사건 직후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
대구사람들 굉장하네. 얼마 전에도 대구출신 국회의원이 골프장에서 골프채로 사람을 치더니, 이번에는 맥주병 투척까지... 그리고 80년 전 아무개 대통령은 총칼로 국민을 때려잡고…, 이제 당신 서울 오더라도 함께 술은 못 마시겠네. 언제 술 병으로 칠지 모르니, 대구사람 너무 무서워..., 다분히 농담조였지만 언중유골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조크였다.

이와 더불어 또 지역의 관심을 끄는한 사건이 있다.
지역의 한 메이저신문 출신 전직 기자가 설립한 건설회사가 복지재단 이전과 관련하여 대구시와 시중은행으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정부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대구시에 이 복지재단을 고발하고 관련공무원을 징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감사원의 지시가 법적으로 타당한지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과연 배후에 얼마나 막강한 권력이 도사리고 있기에 대구시가 이토록 전전긍긍할까?

아직까지는 이 문제의 실체적 진실은 가려져 있다.
몇 언론이 이 문제의 일부를 기사화 했다가 언론중재위에 불려갔다느니 소송까지 갈 뻔하다 반론을 실어줬다느니 하는 소문도 들린다. 그럴수록 지역민들의 궁금증은 더 커간다.

21세기 후기정보화시대, 우리는 그 옛날 목숨을 걸고 사초(진실)를 기록했던 사관의 기개와 염결성을 오늘날 언론 종사자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이미 하나의 평범한 월급쟁이 정도로 전락(?)한 기자들의 처지를 굳이 이해하자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들에게만 특별히 정의감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인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 기자들의 정의감과 진실에 대한 불굴의 투지를 기대하고 있다.
사실 많은 직업을 제쳐두고 기자를 선택했다면, 앞 서 언급한 불굴의 정의감이나 진실추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도의 처신과 글을 써야하지 않을까? 글 쓴다는 자(記者)의 역사적·사회적 책무는 무엇인가? 적어도 '네가 기자냐?'는 이따위 허투른 비아냥은 듣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대구사회비평] 발행인. 경북외국어대 교수)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자치소리를 듣고 싶다>,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냈으며, 지금도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을 맡아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계간 <대구사회비평>을 펴내고 있습니다. 또, [경북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CBS대구방송]의 <라디오 세상읽기>도 매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7월 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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