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찌감치 나서면서 부득불 택시를 타야했다.
택시를 타자마나 기사가 하는 말이 “고맙습니다” 였다.
새벽 2시 반에 교대해 그 때까지 (새벽 6시 30분) 10000원을 못찍었다는 것이었다. 앞서 교대했던 택시기사도 사납금을 내지 못했단다. 오늘 하루 공칠 것같다면서 15년 택시기사노릇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대구시의 무책임한 택시정책에 대해서도 한마디하면서 택시기사일을 그만두고 나가봐야 대안이 없는 자신의 무능에 대해서도 지나가는 말로 책하였다. 서울에서 올린 택시요금의 여파가 지역에 오면 더 안될거라는 거, 주5일근무제가 실시되면서 주말엔 아예 공치는 답답한 현실 등을 내뱃듯이 던졌다.
공무원이나 월급쟁이들이야 주5일근무제 하면 돈이라도 들어오면서 쉬지만, 자신들 같은 사람들은 금요일부터 답답하단다.
주5일 근무제가 이제 공공기관까지 확산되면서 토요일, 일요일의 주말은 거리가 한산하다. 다들 떠나는 것이 정착되고 있는가 보다.
그런데 우리 동네의 샤시집 트럭, 행상트럭과 사설학원차, 승용차 등 주차해 놓은 차들은 별로 이동이 없다. 그리고 보면 주인들은 집 안에서 그냥저냥 “방콕”하고 있는 듯 싶다. 애꿎은 TV만 하루종일 켜놓고...
지난 6월 25일은 6월 마지막 토요일이자,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학교휴업일이었다.
몇 번의 휴업일을 지낸 아이들은 이제 활동계획을 자발적으로 꾸리는 듯 보였다.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필자의 둘째 딸아이 역시 그 전날부터 친한 학급아이들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저희들 끼리 열심히 통화하면서 시간계획을 짜고 있었다.
잠깐 들어보니, 한 아이의 어머니가 근무하고 있는 시내의 한 백화점에 가서 그 근처의 상가를 돌아보며 아이쇼핑도 하고 나눔장터도 보고 공연도 하면 구경하자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들이라고 벌써 남녀 "사귀는" 아이들도 있고, 남친, 여친들과의 100일도 따지는 아이들이니만큼 서로 짝을 맞추어 구경가자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시내에서 놀 생각을 하는 아이들의 구상에 좀 개운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학교에서는 이미 1주일 전에 휴업일에 갈데없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 올 아이들은 신청하라고 신청서를 보냈으나, 딸아이와 어울리는 친구들 누구도 그것을 작성해서 내지는 않았다. 6명 가운데 집에 어른이 있는 곳은 우리 집 뿐이었고, 집에 종일 혼자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의례히 혼자 있어왔기 때문에 할 일이 없더라도 학교에 갈 생각은 전혀 하질 않고 있었다. 그리곤 저희들 끼리 돌아다니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가끔 시내에 가면, 몰려다니는 초 중 고등학생들을 자주 본터라, 난 잠시후에 나름대로의 제안을 했다.
대구박물관에서 “사람과 돌”이라고 하는 석기시대이후의 유물전시회가 있다고 하니까 그것을 보자고 말이다. 배우면서 놀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득하였다. 이번에 가서 보고 다음기회에 가서 직접 만들어보자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그 뒤의 어린이 회관에 가서 놀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같이 가는 아이들이 여섯명이니 함께 버스도 타보고 찾아가보면 괜찮을 것이라고 하면서 인터넷으로 버스노선을 검색해보고 일정을 잡아보라고 하였다.
딸 아이는 열심히 버스 노선검색을 했고, 가는 길을 익히면서, 대구박물관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무엇을 볼 건지도 기록하였다. 약간의 돈과 메모지, 물, 모자 등을 챙겨주고 당부도 하면서 난 흐뭇하게(!) 내 할일을 시작했다. 난 자유롭게 내 일을 하고 아이들은 배우면서 놀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자위하면서 말이다.
저녁에 딸아이가 6시 넘어 들어왔다. 뭘 보았느냐고 물어보니, 딸아이는 박물관을 가지 않았으며 어린이 회관에 가서 놀이기구 타고 게임하고 놀다 왔단다. 왜 박물관을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딸아이 왈, 아이들끼리 만나기로 한 학교앞에서 박물관가는 버스를 타려면 약 300m가량을 걸어야 되는데 다들 귀찮아했고, 박물관엔 몇 번 가 보아 볼 것이 없으며 -박물관 관계자들이 이 말을 들으면 할 말이 많으실거다-, 그래서 놀기 좋은 어린이회관을 가자고 의견이 모아져서 놀고 왔단다. 초등학생들끼리 시내를 헤맨 것보다는 훨씬 낫다 싶어 잘했다고 말했으나 내심 씁쓸했다.
아이들은 휩쓸리기 쉬운 존재이다.
아이들의 민감한 시기에 누구로부터 따스한 정을 배우고 좋은 것을 경험하는가 하는 것은 평생을 두고 남는 아름다운 재산이 될 기억들이다. 그냥 놔두면 건강하게 잘 클 거라고 생각하기엔 이 사회의 상품시장의 폭력과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 아이들을 놔두면 이성적인 사고와 착한 성품이 북돋아지기는 커녕, 타고난 성품도 제대로 보존하기 힘들 것 같은 어려운 조건들이 학교안 교육을 비웃듯이 학교밖에도 너무나 산재해있다.
당분간 시간이 허용되는대로, 갈 곳없는 딸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넷째 토요일은 어디든 나가야겠다. 자연을 만나든, 아님 좋은 전통이 있는 어디든 데리고 나가 신나게 놀고, 자연과 세계의 싱싱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받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수 밖에 없을 듯 싶다. 주5일 근무제에 따른 준비안된 휴업일을 책임져야 할 듯싶다.
어차피 난 팔자에 “역마살”이 끼었다고 하니까 겸사겸사 잘 되었지만, 휴업일을 지내는 방식도 빈부격차가 너무 드러나는 것 같아 답답하기만 주말이었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 1960년 서울에 태어난 김재경 박사는, 2001년부터 대구MBC 라디오 프로그램 '김재경의 여론현장'을 매일 아침 진행하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김재경의 세상보기'에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5년 7월 8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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