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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와 약자, 뽑는 자와 뽑히는 자”
[인의협의료진단 11] 김진석
...“채용 신체검사의 남발과 기업의 인사관행”
“목적이 수상한 신체검사, 신체 조건 가리
2005년 07월 24일 (일) 13:27:43 평화뉴스 pnnews@pn.or.kr
   

최근 각종 언론에는 서울대와 교육부간의 통합형 논술시험에 관한 논쟁이 뜨겁다. “본고사부활이다, 아니다.....” 교육에 전문가가 아닌 필자는 문제의 정확한 진실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 문제의 핵심이 ‘본고사 부활이냐’ 아니면 ‘교육부의 대학 자율성 침해냐’가 아니라, 학생선발에 관한 권한을 대학이 주도적으로 가지느냐, 아니면, 기존의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따르느냐 하는 문제라고 한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 싶어하는 서울대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오로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누가 우수한 인재인지를 가리고자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 혹은 너무 잘난 자들의 오만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감정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서울대의 태도가 가능한 최고 품질(?)의 근로자를 선발하고자 하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 특히 사전 채용신체검사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노동력만을 선발하고자 하는 일부 기업들의 채용인사 관행과 유사함을 느끼고 착잡함을 느끼게 되었다.

한번이라도 일정정도 규모의 기업에 취직이란 것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입사하기 전에 채용신체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노동자를 신규로 채용하는 때에 채용시 건강진단이란 것을 실시하게 되어 있다. 채용시 건강진단은 원래 사업주의 비용부담으로 근로자 건강보호를 위하여 사전 건강자료 확보 및 적정배치를 위해 실시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행해지고 있는 이 채용시 건강진단, 혹은 채용신체검사라는 것의 목적이 수상하기 짝이 없다. 본래의 목적은 간 곳 없고,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노동력을 가려내기 위한 검열도구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은 고용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그렇다면, 원칙적으로 채용시 건강진단을 근거로 적정배치 혹은 배치의 보류는 있을 수 있어도, 채용의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금지되어야 한다. 엄격히 말하면, 아직 채용도 안 된 사람에 대해 신체검사를 시행하는 것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일단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B형간염 검사, 요추방사선 검사, 색신검사...이러다 우성유전자 뽑기 위한 DNA검사도 하지 않을까?“

보다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기업의 의지는, 더러는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의학적 근거조차 희박한 검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근골격계 질환이 문제가 되니까 요추방사선 촬영이나 근력측정 등을 받으라고 하고, B형간염검사를 필수항목으로 요구 하는가 하면, 심지어 매독이나 AIDS검사도 시행한다. 이런 추세라면, 멀지 않은 미래에는 우성유전자를 가진 사람만을 선별하고자 하는 DNA검사도 추가하고자 할 것이다.

요추방사선 검사라는 것이 그 근거가 의학적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많은 산업의학자들이 이 검사가 향후 요통발병을 예측하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검사인데도 굳이 그걸 검사항목에 넣고는, 경미한 이상의 소견이 발견되기라도 하면 무턱대고 탈락시키기 일쑤다. 게다가, 그 소견이란 게 대부분 향후 요통발생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B형간염검사도 그렇다.
B형간염의 전염은 수혈, 출산, 성관계 등 보균자의 혈액이나 체액이 직접적으로 상대의 혈액으로 들어갈 때 이루어지고 통상적인 사회관계로는 전혀 전염의 위험이 없다. 수십 년 간 의사들이 목소리 높여 떠들어온 이야기이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기업체의 인사관행은 간염보균자를 거부한다. 간염보균이라는 사실만으로 입사를 제한하는 것은, 그 회사가 무슨 윤락업종이 아닌 이상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또한, 채용 시 건강진단에서는 색신검사를 시행하는데, 이 색신검사 역시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 낸다. 아시다시피 운전면허에는 삼원색 식별이 가능하면 합격이다. 정밀한 색감각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이상 색약과 같은 색각이상은 일상생활은 물론 사회활동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아직도 경찰 공무원 등 많은 특수직 공무원과 대기업에 응시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단지 색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원천적으로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많게는 젊은 남성의 5%정도가 색각장애자이며, 전 국민의 5%가 B형간염보균자로 알려져 있다.

“신체검사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우등인종을 가려내기 위한 신체검열이 돼선 안돼”
“신체적 조건을 이유로 한 고용차별. 기업의 독단적 채용.인사관행...인권위마저 침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물론, 마약중독자가 버스운전을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건강진단을 통해 제한하고, 단체 급식을 담당하는 자가 전염병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건강진단을 통해 가려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건강진단이 가진 본래의 의미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사회의 모든 과학 기술들이 그렇듯이, 누가 어떤 목적에서 그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본래의 의미가 변질되고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현상이 되풀이 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특히 힘 있는 자들이 아무런 제어장치 없이 이러한 도구를 사용할 때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100대 1이라는 경쟁률이 말해 주듯이 취업 희망자가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신체적으로 티끌만한 흠도 없는 건강한 신입사원을 확보하고자 하는 기업들을 누가 탓할 수 있을 것이며, 전국에서 최고의 인재만을 가려 뽑고자, 독자적인 시험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하지만, 우리가 감히 그 논리를 오만과 편견의 논리라고 비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힘 있는 자의, 혹은 칼을 쥔 자들만의 논리이며, 반대편에 서 있는 수 많은 힘없는 자들, 뽑아주기만을 갈구하는 자들의 심정을 철저히 배제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일생의 소원인 대기업 입사가 그까짓 아무것도 아닌 색약 때문에, 혹은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달라붙은 B형간염바이러스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나도 알지 못했던 사소한 내 몸의 이상 때문에, 합격의 문턱에서 좌절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좌절은 누가 보상할 것이며, 가문의 영광 서울대 합격을 위해 수년간 노력해온 고등학교 시절의 교과는 뒤로 제쳐두고 이제부터는 새로 통합형 논술이라는 새로운 괴물과 씨름하기 위해 밤마다 학원가를 헤매야 할 우리 가여운 아들딸들의 청춘은 누가 또 보상해 줄 것인가.

채용시 건강진단은 말 그대로 건강진단이다. 그러므로 채용신체검사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고, 신체검열을 통해 우등인종을 가려내기 위한 절차가 되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그러한 검열기준이 전문가인 의사들의 의견도 묵살된 채 오로지 검열의 칼을 쥔 일부 기업들의 독단적인 인사관행에 따라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당국과 노동부는 수수방관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침묵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김진석( 대경인의협 회원. 산업의학 전문의).
* [인의협]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줄임말로, 5월부터 시작한 평화뉴스 <인의협의 의료 진단>은, 대구경북인의협 회원들이 의료정책과 의료계 관행, 건강 문제 등을 매주 돌아가며 짚어줍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7월 1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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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 의료진단>

<인의협의 의료진단 1>- 김진국...“창궐하는 암과 정부의 책임” (2005.5.2)
<인의협의 의료진단 2>- 이상원...“사회적 약자에겐 질병도 가혹하다”(2005.5.14)
<인의협의 의료진단 3>- 노태맹...“병원 주식회사?"(2005.5.21)
<인의협의 의료진단 4>- 윤창호... "내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2005.5.29)
<인의협의 의료진단 5>- 김건우..."생명에 대한 위험한 유혹”(2005.6.4. 일반외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6>- 김건우..."의료사각지대, 쪽방 거주자와 노숙인..."(2005.6.12. 진단방사선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7>- 송광익..."정부와 의사는 환자 앞에 겸허해야"(2005.6.19)
<인의협의 의료진단 8>- 김은경..."자살공화국, 대책은 없나?“(2005.6.26)
<인의협의 의료진단 9>- 이정화..."알레르기 질환과 모유수유권“(2005.7.3)
<인의협의 의료진단 10>- 박기수..."종합건강검진, 제대로 알고 하자(2005.7.10)
<인의협의 의료진단 11>- 김진석..."“강자와 약자, 뽑는 자와 뽑히는 자”(200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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