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6년제 무엇이 문제인가?”

평화뉴스
  • 입력 2005.07.3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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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료진단 12] 김병준
...“의료계의 이권 다툼, 무능하고 무원칙한 정부”


2005년 7월 5일 오후 3시 대한의사협회는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열린 약대 6년제 공청회장 출입문을 봉쇄하고 연단을 점거했다. 행사장 주변에 배치된 경찰병력 10개 중대 중 150명이 장내로 투입되어 연단을 점거한 의사협회 회원들을 강제로 끌어냈고, 아수라장이 된 공청회는 의사협회 토론자 없이 속개되었다. 공청회 과정 중에도 양 진영간의 설전은 폭력적으로 변하며 도를 넘고 있었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공청회는 지난 6월 17일 예정되었으나 준비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출입문을 봉쇄한 의사협회의 반대로 7월 5일로 일차 연기되었던 바 있었다.

봉쇄, 점거, 투입, 강제해산...... 이 어휘들이 지니는 다급함의 중심에는 [약대 수업연한 연장에 관한 공청회]라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화로와 보이는 주제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평화로와 보이는 주제는 왜 이 땅에서는 그런 다급한 방식들을 파생시키는가?

약대 6년제 추진은 이미 1992년 초반부터 논의되어 오던 문제이다. 1992년 1월 교육부는 종합대 및 단과대 약학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별 행보가 없다가 1993년 3월 약사와 한의사 간 한약조제권분쟁이 촉발되자 6년제 연장방안은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아시다시피 한약조제권분쟁은 양진영의 잇따른 시위와 폐업이 연속되는 혼란을 겪다가, 한약사제도를 신설하고 약사에게 한시적 한약조제권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일단락되었다.

한약조제면허 시험이 추진 중이던 1995년, 대한약사회와 전국약대학장협의회가 건의한 약대 수업연한 연장안을 교육부가 받아들일 움직임을 보이자 한의사회는 또다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의사들의 반대 이유는 약대 6년제가 '통합약사 배출을 통해 한약을 탈취하기 위한 음모'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약대 수업연한 연장은 약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약사들이 침해하려는 한의사들 영역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와 부처들은 한약조제권분쟁의 재발을 우려한 나머지 숨을 죽였다.

그리고 7년이 흐른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자 6년제는 다시 볕을 보았다. 대통령직인수위와 김화중 복지부 장관이 6년제 추진에 적극적인 행보를 나타낸 것이다. 한의사회의 '강력 반대'가 재개되었고 일년 여 동안 밀고 당기기를 지속하던 중 급기야 2004년 6월 20일, 복지부와 한의사협회 및 약사회가 만나 ꡒ한약학과의 수업연한 동반 연장과, 한약조제권은 한약사만 가질 수 있도록 약사법에 명문화하기로" 하고 전격 합의 되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다음달 7월 6일 교육부는 '단체간 업무영역과 직무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6년제 안은 또다시 혼돈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교육부의 입장에 고무된 한의대생들은 '6년제 저지 총공세'를 표방하면서 시위를 벌였고 연말 대통령과 여당이 6년제 추진의 의지를 분명히 하자 주춤해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동안 조용하던 의사협회가 의사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 연장선이 글의 앞에서 전한 공청회장 풍경이다.

10여년 이상 추진되어 오던 약대 6년제 연장방안이 이토록 지루하게 부침과 진퇴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정부 부처들의 업무 능력의 한계와, 관련 직능간 첨예한 영역다툼에 있다. 국제구제금융의 위기 이후 관련 직능들 내부의 불안이 증가하면서 영역다툼은 더욱 첨예한 전방위전의 양상을 띠게 되고 그 전방위전을 설득할 능력이 없는 정부의 눈치 보기가 일을 지지부진하게 이끌어온 주된 이유이다. 또한 자주 입장을 번복하고 서로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는 부처들의 행보도 일의 추진을 방해해 왔다.

뿐만 아니라, 제도를 추진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 모두는 문제들을 자신들의 시각 속에서만 바라보려 하며 그 시각들은 자신들의 입장 속에 갇혀 있음으로 해서 공감대 발견에는 원초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약사 측은 6년제 연장 명분으로 1)의약분업 하에서 약사들의 임상능력 향상, 2)신약개발 등 제약산업의 국제 경쟁력 증강, 3)소위 글로벌 스텐다드에 적합한 교육제도 개선 등을 주장하지만, '영역침범 음모'라는 의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선명한 이유들을 제시하지 않은채 그럴 이유가 어딨느냐며 모호한 반문만 던지고 있다.

6년제 추진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이나 문제점들도 충분히 검토되지 못한 편이다.
6년제의 방식이 2+4년제냐 4+2제냐에 관한 의견들이나, 커리큘럼 조정문제, 6년제가 정착 되었을 때 의약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지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도 되어 있지 않다. 음모론을 주장하는 의사들의 반대는 직능간, 또는 정부에 대한 골 깊은 불신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관련 부처나 직능단체의 문제들은 고스란히 남아서 더욱 첨예해지기만 한 상황이니 문제가 풀려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제도들은 단체의 입장이나 정부나 당의 입장을 따지기 전에, 그 제도를 통해 의약계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또 그 제도가 국민들에게 얼마만큼 득이 될 것 인지부터 광범위하게 그리고 꼼꼼히 따져 보는 것이 순서이다. 그 따져봄이 의미로와질 때 그제서야 업권이나 부처의 입장이 드러날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의 접근로는 항상 그 반대였으니 골만 깊어지고 일은 풀려나가지 않는다.

약대 6년제 추진의 길고 긴 과정을 바라보면서 국민의 한사람으로 느끼는 소회는 여전히 무원칙하고 무능한 정부와 여전히 이권에 집착하는 직능들의 갈등을 바라보는 답답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동반발전을 해도 발 빠른 국제사회를 따라갈까 말까한 상황에 관련 직능들이 서로 싸우고 정부가 그 조절할 능력을 잃었다면 한국 의약계의 발전이란 불 보듯 뻔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금만 더 거시적으로, 조금만 더 이타적으로,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바라보고 추진하는 역량들이 성숙되기를 바랄 뿐이다.
김병준( 내과전문의, 대구경북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자문위원, 前 상임대표).
* [인의협]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줄임말로, 5월부터 시작한 평화뉴스 <인의협의 의료 진단>은, 대구경북인의협 회원들이 의료정책과 의료계 관행, 건강 문제 등을 매주 돌아가며 짚어줍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7월 2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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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 의료진단>

<인의협의 의료진단 1>- 김진국...“창궐하는 암과 정부의 책임” (2005.5.2)
<인의협의 의료진단 2>- 이상원...“사회적 약자에겐 질병도 가혹하다”(2005.5.14)
<인의협의 의료진단 3>- 노태맹...“병원 주식회사?"(2005.5.21)
<인의협의 의료진단 4>- 윤창호... "내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2005.5.29)
<인의협의 의료진단 5>- 김건우..."생명에 대한 위험한 유혹”(2005.6.4. 일반외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6>- 김건우..."의료사각지대, 쪽방 거주자와 노숙인..."(2005.6.12. 진단방사선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7>- 송광익..."정부와 의사는 환자 앞에 겸허해야"(2005.6.19)
<인의협의 의료진단 8>- 김은경..."자살공화국, 대책은 없나?“(2005.6.26)
<인의협의 의료진단 9>- 이정화..."알레르기 질환과 모유수유권“(2005.7.3)
<인의협의 의료진단 10>- 박기수..."종합건강검진, 제대로 알고 하자(2005.7.10)
<인의협의 의료진단 11>- 김진석...“강자와 약자, 뽑는 자와 뽑히는 자”(2005.7.17)
<인의협의 의료진단 12>- 김병준...“약대 6년제, 무엇이 문제인가?”(200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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