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서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평화뉴스
  • 입력 2005.08.0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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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행복은 아이들에게 있는데...”

[교사들의 고백 10] 경북 영양 K교사...“교사의 행복은 아이들에게 있는데...”
“나를 존재하게 하는 아이들...그러나 나의 행복은 편한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가게에 들어서면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는 주인이 있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대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병원에 가면 친절한 의사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앞에 앉은 환자가 얼마나 아플까 하고 감정이입까지 하는 의사는 정말 드물다.
의사들을 존재하게 하는 사람이 환자인데도...

교사인 나는 어떠한가?
늘 큰 학교에 있다가 몇 년 전 이 작은 시골 중학교로 오고나서 나는 참 행복하게 지냈다.
교장 선생님도 합리적이셨고, 몇 안되는 동료교사들과도 이런저런 관계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편안하고 즐거웠다.
어쩌다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생겨도 함께 싸워줄(?) 마음맞는 선생님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순하고 착하기 그지 없었다.
가정 환경이 어려운데도 아이들은 마치 자연이 사람의 심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퇴근 무렵 교복 윗옷과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둔 아이들이 버스가 올 때까지 해가 지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모습은 이곳에 와서 만난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였다. 일요일에 눈뜨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진정이 담긴 농담을 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그런데 한두 해를 지나면서 스스로 묻게 되었다.
내가 학교에서 느끼는 행복과 평화의 근원은 무엇일까?
교사인 나는 당연히 아이들 때문에 행복해야 하는데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그것은 모든 것이 무난하고 무던한 데서 오는 것이었다.
동료들이나 학교 운영 방식에서 큰 부딪침이 없어도 되는 데서 오는 평화였다.
수업 시수가 적은 데서 오는 편안함이기도 하고 수업 시간마다 아이들 때문에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데서 오는 안일함이기도 하였다. (그 밑바닥에는 별다른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가지고 있는 전교조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있기도 하였다.)

그것은 아이들과의 관계나 아이들의 변화를 발견하는 데서 오는 교사로서의 기쁨과는 별개였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아이들과 좀더 부대끼려고 새로이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매일 매일 마주치는 이 아이들을 나는 얼마나 반갑게, 진실하게 대하고 있을까?
처음 근무했던 학교의 거친(?) 아이들과는 정말 달라 업어주기까지 하고 싶었던 이 아이들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불평들을 하고 있음을 본다.

“~이는 어떻게 저렇게 의욕이 없을까?”
“이 반은 도대체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요?”
“이 녀석은 잠시 도시에 있었다고 얼마나 시건방진지”
“~이는 정말 낭창(여유있다 못해 아무 걱정을 안 해서 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하지요” 등등등...

그렇다고 그 아이에 대해 정말 걱정하고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저 아이는 가정 방문을 가보아야겠다, 부모님과 이야기를 한 번 해야 할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은 그 말로 걱정을 대신할 뿐이다. 1학년 입학 후부터 부모 상담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3학년이 되어 결국은 문제를 일으키고 난 다음에야 학부모를 만나게 되기도 하였다.

전교생 수가 한 반 아이들 숫자 밖에 안 되는 여기서도, 아이들 한명 한명에 대해 진지하게 그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기 보다는 방관자로서 이야기를 할 뿐이다. 작은 학교가 좋다는 말은 결국 내가 편해서라는 말이지 않은가?

단순한 보따리 장사꾼이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부당한 일에 항의해야 한다고, 잠시 잠시 만나는 학교장의 취향에 따라 교사가 달라져서는 안 된다고 자부해 왔었다.

그러나, 정작은 여러 개의 내가 가진 이름 중에 어쩌면 가장 중요한 교사로서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 아이들에 대해 나는 참 부끄럽고 미안하다. 아이들과 좀더 가까워지기 위해 맡았던 업무도 칭찬과 상담을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한 번만 더 그러면 알지!”라고 엄포를 놓는 자리로 만들어버렸다.

어느 사이에, 마주 서서 기뻐하고 염려해 주기 보다는, 순진한 녀석들 위에 군림할 수 있어서 편안해 하는 교사인 나를 보는 듯하다...
<경상북도 영양군 중등학교 K교사>

K선생님은 20여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40대 후반의 중등학교 여교사로,
글을 쓰기까지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셨다고 합니다. 글을 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7월 2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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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1> - 대구 초등 L교사 ... "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교사들의 고백 2> - 구미 중등 L교사 ... "게으른 나를 탓한다"
<교사들의 고백 3> - 포항 중등 K교사 ...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들의 고백 4> - 영주 초등 A교사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교사들의 고백 5> - 대구 중등 H교사 ... "잘못된 부교재 관행, 이젠 바로잡아야"
<교사들의 고백 6> - 목포 초등 B교사 ...“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교사들의 고백 7> - 진주 중등 K교사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충실해야만 한다”
<교사들의 고백 8> - 안동 중등 J교사 ... "교사는 반성하는가?“
<교사들의 고백 9> - 울진 초등 Y교사 ... "교사가 학교를 살려야 한다"
<교사들의 고백 10> - 영양 중등 K교사...“교사로서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글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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