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성(性) 고민을 아십니가?”

평화뉴스
  • 입력 2005.08.0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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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료진단 13] 이종우...
“존중받아야 할 인권 성(性), 그러나 우리의 성교육은?”

본인의 직업상 남성의 성문제를 주로 다루다 보니 남성들이 가지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대개의 성인 남자들이 그렇듯이 성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음란물을 통해서 먼저 성에 대해서 접하고, 부모님이나 성교육 전문가보다는 친구를 통해서 성에 관해 의사소통을 해왔던 과거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결혼 후에도 성상대자인 부인과의 대화는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이는 성에 대한 왜곡된 성 인식을 심화시키고 성기능 장애뿐만 아니라 나아가 왜곡된 성문화의 확산에도 일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성이라는 것은 사람사이의 관계를 기본 전제로 한다.
사람사이의 올바른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 즉 배려를 기본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관계의 이탈이 바로 인권 침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성을 매개로 한 성관계 역시 인간이라는 동등한 조건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소통해 나가는 것이 요체이며 거기에서 벗어난 행위는 타인에 대한 인권의 침해가 될 것이다.

최근 언론에 회자된 부부간 성폭력의 문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라 할 수 있으며 성이 소유의 개념에서 소통과 공유의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드러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남성 성기능 장애 환자들은 혼자서 외래를 찾는다.
소유의 대상-성상대자-에게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다가 신체적 갱년기가 시작되는 40대 중반이면 체력적 저하와 대화의 부재로 인한 메너리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고민 끝에 비뇨기과를 찾는다. 드물게는 더욱 강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아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잘못된 남성관에 의한 1차적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에 관한 한 상대방과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에 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매우 이중적이거나 모호하다.
지금까지의 성교육은 여성에 대한 순결교육 위주였다. 즉 순결하지 못한 여성은 인권 착취의 대상이 되어도 아무런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매매 단속 이후 집창촌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가 그러하다.
인권 탄압 및 성매매의 피착취자 개념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성매매자, 순결 포기자 정도로 바라보는 태도가 만연하다. 그들을 성매매로 내몬 우리 사회적 구조적 모순과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화시킨 잘못된 성교육을 점검함과 동시에 그들의 자활을 돕고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남성도 잘못된 성교육의 피해자...성에 관한 한 상대방과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성 범죄자에 대한 전자 팔찌...범죄자를 격리시키면 된다는 식의 보호관찰제도와 같은 인권탄압”


이성에 대한 교육과 상호 소통의 교육도 부재했다.
남학교에서는 남성의 생물학적 성과 기껏해야 자위행위 정도에 대해 교육하고 여성의 성과 성 반응, 그리고 성적 교통(交通)의 방법 등에 대해선 교육이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 지역에서의 집단 성폭행 같은 범죄가 나타나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예고된 것이었기도 하다.

그들은 가상공간을 통해 집단 성폭력을 경험했을 것이며 아마 큰 죄의식 없이 그와 같은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혼자 저지르는 것보다 집단적인 행위는 그들에게 공범 의식과 면죄부 의식을 동시에 부여했을 것이다. 1차적인 피해자는 여학생이지만 그들도 성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힌 이상 우리사회에서 올바른 길로 살아가기에는 매우 힘든 제 2의 피해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성 범죄자에 대한 재교육과 심리 상담 등이 전무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때 제2, 제3의 재범이 우려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 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국회에서 전자 팔찌가 제안되었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분석하고 대처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우선 범죄자를 감시하고 우리사회로부터 따로 격리시키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기인한 것이며, 형기를 다 마친 재소자에게 제 2의 감옥으로 보내는 인권 탄압의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다. 이제 폐기를 눈앞에 둔, 과거 군부독재 시절 만들어진 보호관찰제도와 같은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향락 산업과 음란물의 인터넷 범람, 날로 증가하는 성범죄는 더 이상 성교육의 문제를 방치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모든 것을 규제나 법으로만 해결하겠다는 전시 행정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민간에서부터 관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의 성문화를 올바르게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기고문은 우리 기성세대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성관계의 책임과 안전한 성관계에 대해서 교육할 것을 주문했다. 현재의 성교육은 학생들의 올바른 성 가치관 정립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장의 증언이었다. 현재의 성교육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으면 신문에까지 기고할 생각을 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우리 성교육, 올바른 성 가치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중 화장실에 주사바늘 박스를 놓아둔 호주...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필자도 수년째 성교육 강사를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고 있지만 우리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임을 자주 실감하곤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장 확실한 대안은 소아기 때부터 단계적으로 성교육을 시행하는 것이며 이는 제도권 교육뿐만 아니라 전문가 중심의 민간단위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성교육의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성에 대한 과학적인 지식을 교육하여야 한다.
특히 이성의 몸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성에 대한 반응의 차이도 교육하여야 한다.
같은 존엄한 인간이지만 신체적으로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며 이 차이를 인식할 때 상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아니라 배려가 전제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학교 교육에 민간의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학교 교육의 교과과정 속에 반드시 성교육을 포함시키고 상담 전문가, 의료인, 법조인 등이 자율적으로 학교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강당에 다 모아놓고 1회성으로 실시하는 성교육은 아이들을 더욱 소외시킬 뿐이다.

셋째,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 참여 토론식 수업을 지향하여야 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겠지만 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은 그 어떤 교육보다 효과가 클 수 있다.

넷째, 현재의 성과 관련한 제반 문제를 인식하도록 하여야 한다.
단순한 충동에 의한 성폭력이 타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교육하고 이를 통해 이성을 배려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하여야 한다. 성행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름을 교육하고 안전한 성관계의 방법을 교육하여야 하며 성행위는 사랑의 육체적 행위임을 자각하도록 하여야 한다.

필자가 호주 연수 중 경험하였던 충격적인 사례를 전하면서 끝맺을까 한다.
호주 멜버른의 공중 화장실에는 작은 플라스틱 박스가 하나씩 있다. 그 용도는 주사바늘을 변기나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따로 모으라는 것이다. 감염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마약류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함이란다. 우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매우 선진적인 의지로 필자에게는 받아들여졌다.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성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호주의 예처럼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병은 자랑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기 진단이 완치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성의 문제를 음지에서 다루지 말고 우리 실생활의 양지로 끌어올려 치부를 드러내고 처방을 고민하여야 한다. 더불어 올바른 성교육의 확립을 위해 많은 이들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이종우( 대구경북인의협 회원. 포천중문의대 구미차병원 비뇨기과).
* [인의협]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줄임말로, 5월부터 시작한 평화뉴스 <인의협의 의료 진단>은, 대구경북인의협 회원들이 의료정책과 의료계 관행, 건강 문제 등을 매주 돌아가며 짚어줍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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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 의료진단>

<인의협의 의료진단 1>- 김진국...“창궐하는 암과 정부의 책임” (2005.5.2)
<인의협의 의료진단 2>- 이상원...“사회적 약자에겐 질병도 가혹하다”(2005.5.14)
<인의협의 의료진단 3>- 노태맹...“병원 주식회사?"(2005.5.21)
<인의협의 의료진단 4>- 윤창호... "내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2005.5.29)
<인의협의 의료진단 5>- 김건우..."생명에 대한 위험한 유혹”(2005.6.4. 일반외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6>- 김건우..."의료사각지대, 쪽방 거주자와 노숙인..."(2005.6.12. 진단방사선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7>- 송광익..."정부와 의사는 환자 앞에 겸허해야"(2005.6.19)
<인의협의 의료진단 8>- 김은경..."자살공화국, 대책은 없나?“(2005.6.26)
<인의협의 의료진단 9>- 이정화..."알레르기 질환과 모유수유권“(2005.7.3)
<인의협의 의료진단 10>- 박기수..."종합건강검진, 제대로 알고 하자(2005.7.10)
<인의협의 의료진단 11>- 김진석...“강자와 약자, 뽑는 자와 뽑히는 자”(2005.7.17)
<인의협의 의료진단 12>- 김병준...“약대 6년제, 무엇이 문제인가?”(2005.7.24)
<인의협의 의료진단 13>- 이종우...“남성의 성(性) 고민을 아십니까?”(2005.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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