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생 박군의 이야기...”

평화뉴스
  • 입력 2005.08.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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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찬 관심과 사랑만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교사들의 고백 11] 경북 상주 Y교사..."줄기찬 관심과 사랑만이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나는 13년째 사립고에 근무하는 교사이다.
13년 동안 근무를 하고 있지만, 내가 과연 올바르게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의문을 가진다.
그 중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기억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1학년 담임을 하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우리 반에서 유별나게 지각을 하는 박○○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 아이는 누가 깨워주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루 온종일 잠만 자는 자기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져 있었던 아이였다.

처음 입학식 후 첫날부터 지각을 하였다.
그런데, 생활습관이 그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용모는 아주 준수하였으며,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는 매우 잘 어울리는 누가 보면 아주 모범생답게 행동하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각을 해 가정 방문을 가보니, 아버지와 이혼하고 어머니 혼자 술집을 경영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이었다. 집에 들어 가보니 1층은 술집을 하고 다락방처럼 생긴 2층이 박 군이 자는 방이었다. 내심 아이가 왜 매일같이 지각을 하는지 가정방문을 통하여 알았다.

그래서 그 후 줄기차게 아이를 내가 학교에 출근하는 날 집을 방문하여 데리고 왔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후 아이는 서서히 생활리듬이 등교시간에 맞추어서 돌아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방학이 되고 다시 개학을 하게 되면 다시금 반복되는 지각에 나는 짜증스러웠다.

매일 타이르고 웃음으로 대하던 내 모습은 짜증스러운 표정과 감정 섞인 목소리는 높아만 갔고, 매일 출근 때만 되면 데리러 갔던 발걸음이 조금씩 그 수는 적어졌으며, 그 자리는 반장이 대신하였다.

그래서 인지, 박 군의 생활 습관은 좀처럼 나아지지를 않았다.
심지어 술집을 경영하는 어머니를 상담이라는 미명아래 계속해서 학교를 오게 하고, 상담을 하면서 박 군의 학교생활에 대한 나쁜 점만을 어머니에게 얘기를 했다. 또한, 가정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아이의 습관이 고쳐지질 않는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 자신의 우월감과 자기 합리화가 아니였는가 생각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아이는 한 학년을 진급하였다. 나도 같은 학년에 담임을 하였지만 다른 반이라는 생각으로 전혀 그 아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진급 후 얼마가 안 되어 그 아이는 학교를 전혀 나오지 않았고, 결국 한달 후에 그 반 담임은 박 군을 자퇴 시켰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엄청난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만약 박 군을 조금 더 사랑으로 감싸주고 줄기차게 데려오고 했었으면, 그 아이의 생활 습관은 조금은 변화되었을 것이라는 것과 왜 내가 같은 학년에 올라가면서 그 아이를 내 반에 두고자 하지 않았었는 가, 또한, 옆 반에 있는 아이를 내 반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너무 무관심하였다는 아쉬움과 후회감, 미안함, 죄책감등 이었다.

지금 그 아이는 어머니 뒤를 이어받아 술집을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 술집에 가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 때문에 그 아이를 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중등학교 Y교사>

Y선생님은 13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30대 후반의 중등학교 교사로,
“줄기찬 관심과 사랑만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글을 주신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8월 3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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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1> - 대구 초등 L교사 ... "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교사들의 고백 2> - 구미 중등 L교사 ... "게으른 나를 탓한다"
<교사들의 고백 3> - 포항 중등 K교사 ...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들의 고백 4> - 영주 초등 A교사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교사들의 고백 5> - 대구 중등 H교사 ... "잘못된 부교재 관행, 이젠 바로잡아야"
<교사들의 고백 6> - 목포 초등 B교사 ...“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교사들의 고백 7> - 진주 중등 K교사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충실해야만 한다”
<교사들의 고백 8> - 안동 중등 J교사 ... "교사는 반성하는가?“
<교사들의 고백 9> - 울진 초등 Y교사 ... "교사가 학교를 살려야 한다"
<교사들의 고백 10> - 영양 중등 K교사...“교사로서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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