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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폭력교사였다”

“폭력없는 세상, '학교 체벌'부터 없애야”
2005년 08월 16일 (화) 10:23:07 평화뉴스 pnnews@pn.or.kr
[교사들의 고백12] 대구 박신호...“폭력없는 세상, '학교 체벌'부터 없애야”“나의 도덕적 잣대와 상황 논리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평화뉴스에서 [교사들의 고백]이라는 기획을 시작하면서 유기자로부터 강요 아닌 강요를 받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기획이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아 여러 선생님에게 나름대로 부탁을 드려 보았지만 선생님들의 반응은 그리 탐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나 자신도 얼마전 부탁을 정식으로 받고 막상 고백을 하자니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워낙 글재주가 없고 ‘고백할 것이 무엇일까’, ‘나 자신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20년여년이 지난 지금 가끔 지난 날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학생에 대한 과도한 체벌이 떠오릅니다.

교직에 들어와 선배로부터 들은 학생관에 대한 첫 훈계는 ‘많이 맞은 놈이 그 선생님을 오랫 동안 기억하고 나중에 많이 찾아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경험으로는 과거 학생시절을 떠올리면 그러한 선생님이 기억은 나지만 흔히 이야기하는 스승이라는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나쁜 선생’으로만 남는 것에 대하여 선배 선생님의 대부분은 왜 그러한 관념을 가지고 교직생활을 하실까 지금도 궁금합니다.

지금부터 하는 고백은 학생들에 대한 명확한 학생관과 교육철학 없이 가해지는 체벌은 그것이 사랑의 매가 되었던 교육적 체벌이 되었던 교사가 학생에 대하여 하는 폭력이라는 점을 시인하고, 다시는 그러한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제 각오와 이글을 읽는 분들에게 체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생각하면서 쓰고자 합니다.

특히 최근 발생하고 있는 학생들의 생활지도상의 불만을 가지고 자살에 이르게까지 한 언어 폭력과 두발단속의 인권유린의 측면에서도 다시 한번 고민해야할 필요성에 대하여도, 교육계가 반성과 새로운 생활지도의 패러다임을 정립할 필요에 대하여도 서로 공감을 하고자 합니다.

"많이 맞은 놈이 그 선생님을 오랫 동안 기억하고 나중에 많이 찾아 온다?"

교직에 몸을 담은지 벌써 20년을 넘어 섰습니다.
6개월만 해보고 다른 직업을 갖겠다는 어리석은 각오로 교단에 첫발을 들여 놓은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의 교직관이 의심스러움을 느낍니다. 하기야 그 당시에 대기업에 취업이 잘되던 터였고 원래 교직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대학 진학이였기 때문에, 교직에 대하여 뜻한 바가 전무한 상태에서 발령을 받은 탓이 컸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금도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령 통보를 받고 어떻게 교직생활을 하면 될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어떠한 선생으로 잠시 있을 교직생활을 할까 고민 중 내가 12년 동안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의 선생님하고는 다른 선생. 그것은 나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내가 경험했던 선생님들의 잘못된 점이라고 각인되었던 부분에 대하여 반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첫 발령 학교는 신설된지 2년째인 남자 중학교.
학교를 가면서 생각했음니다. 중학생 같으면 나와 얼마의 나이 차가 날까.
신설 2년째니까 2학년이면 15세, 1학년이면 14세. 나와 띠동갑인 그들과 한 학교에서 생활 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나는 실업계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칠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교직원회의 시간에 담임발표와 업무분장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2학년 담임에 학생과 교외생활 담당. 이 얼마나 청천벽력의 소리인가. 내가 학창시절 가장 싫어했던 학생과 소속 교사라니...그 당시에 초임자가 업무분장 발표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할수 없다. 팔자려니 하고 6개월만 하고 가자. 재미있게 교직 생활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교실에 가니 얼마나 마음이 떨리는지.
교실에 처음 들어서자 아이들이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무섭게 생겼나. 웃겨 볼래도 말투가 다른 나의 말이 신기한가 침묵이 흐릅니다. 조회 시간에 나의 사무분장을 이아이들은 기억하고 벌써 겁부터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을 보는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아 나의 조카와 나이가 같구나. 아이들을 조카라고 생각하고 생활 하면 생활 지도에는 문제가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학급에서의 도난 사건이었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처음으로 봉착한 교사로서의 생활지도 난관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당하니 과거 학창시절 한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습니다. 그 선생님이 하던 방식으로 눈을 감게 하고 설교 비슷한 것을 하고 윽박도 지르고 그러나 범인이 나올 턱이 있겠습니까. 괜히 시간 낭비에 폼만 구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옛날 경험과 다른 교직생활을 한다고 각오하고 시작했는데, 다른 방법을 찾을 겨를도 없이 닥친 상황에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모릅니다.

“내 스스로의 도덕적인 잣대와 상황 논리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후 학생과로 형사가 나를 찾아 왔습니다.
우리 반의 변모 학생을 조사할 일이 있다고.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학교 생활 잘 하고 있다고 그러나 형사의 말은 벌써 수차례의 절도 혐의를 갖고 있다고. 그것도 백화점에서... 순간 나의 머리를 스치는 것은 지난 번 학급에서의 절도 사건 이었습니다.

이성을 잃은 나는 마침 나의 수업이 나의 학급이라서 교실로 가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몽둥이를 들고 말입니다. 덩치도 너무나 작은 그 아이를 한시간은 조금 과장이고 30여분을 팬 것 같습니다. 그것도 고상하게 칠판에 그 아이를 매달아 놓고서 말입니다. 속은 좀 풀립디다. 그래놓고 교무실에 와서 가정 조사서를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모학교 교사, 어머니는 이상하게도 아버지와 나이 차가 많고 여동생은 늦동이 라고 보기에는 다소 이상한 나이 차를 보이는 6살 아래. 이것에는 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러한 사건을 아시냐구. 어머니는 놀라지도 않습니다.
아 뭔가가 있구나. 조금 후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퇴근 후 잠시 만나자고.
만났습니다. 아버지도 대수롭 않게 이야기 합니다. 술을 몇잔하고 나니 자기의 집에 가잡니다. 갔습니다.
온 식구를 다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새어머니였고 이 아이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 말로만 듣던 결손가정을 처음 경험했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 오며 혼자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그 어린 아이들에게 수업 시간에 전두환을 이야기하며 광주를, 박정희를 이야기하며 폭력이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던 내가 미웠습니다. 내 딴에는 과거 폭력교사라고 경험했던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과거 학교와 군대에서의 폭력이 이 시대의 더 큰 폭력으로 재생산 되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폭력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앞으로 20년안에 폭력이 없는 진정한 민주화된 세상을 같이 만들어 가자고 강요하였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이 학생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고 학교는 포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은 정신 질환에 의한 절도 습관을 모르고 내 스스로의 도덕적인 잣대와 상황 논리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학생은 이미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으리라 생각하며 지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 일이 있고 3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또 폭력교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중학교 한군데를 더 거쳐, (행복하게도 3년 동안 2학교를 근무했음) 가고 싶어 했던 실업계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은 것입니다. 중학교 학생을 보다 고등학생을 보니 이것은 또 다른 기분이었습니다.

“악에 받쳐 정신없이 패고 나니 60대...도대체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나를 가르친 교사들이 체벌을 하지 않았다면...폭력없는 세상을 만드는 길은 학교 체벌부터 없애는 일"


실업계에 오니 분위기 자체가 폭력이 난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매일 매일 교무실은 몽둥이로 타작을 하고 교실과 실습장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선배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실습이 위험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게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군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군기, 여기가 군대입니까 군기를 찾게...

나의 군대 생활이 생각납니다. 병기 부대 군기 알아 주거든요. 나중에 분석해보니 기름밥 곤조(일본말)라 하나요, 병기학교에서의 야간 폭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자대에 배치되어서 보니 모든 공구가 폭력의 도구였습니다.

“나는 폭력을 반성했으니 아무리 험해도 폭력은 쓰지 말자”고 맹세를 했습니다.
하지만 2년차에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학교 폭력입니다. 같은 동급생에게 돈을 빼앗고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알았습니다. 우리 반 한 학생이 소위 일진회의 2학년 대장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그것도 내가 학생과 생활지도 담당이요, 폭력은 안된다고 그렇게 강조를 했는데...

교무실로 불러 내렸습니다. 덩치도 크지 않습니다. 집이 김천이고 기차통학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손에는 곡괭이 자루만한 몽둥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용서 못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맞을 것인가 물었습니다. 대답이 없습니다. 일단 엎드려 해놓고 맞는 숫자를 세라고 했습니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 정도 몽둥이면 아무리 맞아도 10대를 맞으면 잘못했다고 할줄 알았습니다.

하나 둘 셋........... 10대를 넘기니 오기가 생깁디다. 그래 네가 잘못했다고 하나 내가 포기를 하나.
정신없이 패고 나니 나의 귀전에 들려오는 소리는 악에 받친 60이라는 숫자였습니다. 옆에는 학생과 선생님께서 걱정스럽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박 선생 잠깐 쉬라” 하시고 학생을 보고 “야 이놈아 잘못했다고 해라” 하셨습니다. 순간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내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거의 이성을 잃은 나 자신을 보면서 이러면 안되는데 라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하고 뒷감당도 될 것 같지 않아 그냥 교무실로 들어오고 말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봄 소풍때에 그 학생 담임에게 그 학생의 사고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풍 전날 패싸움을 하다가 칼로 상대방을 찔러 경찰서에 구속 수감되었다고 말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학생은 벌써 김천 지역에서는 알아 주는 조직의 행동대원이었다는 것입니다. 학생생활지도가 학생 개개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한 사건이였습니다.

20년 전에는 학생생활지도에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교육적으로 하여 왔었던가를 생각합니다.
지금은 철이 조금 들어 그러한 체벌은 하지 않습니다. 체벌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군대를 가지 않았더라면 폭력이라는 경험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학창 시절 나를 가르치셨던 많은 선생님께서 체벌을 하지 않으셨더라면 나 자신 어떠한 경우에서도 남의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처음에는 자기가 결혼하면 절대 자기 부인에게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어릴적 보아온 경험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자신도 똑 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폭력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 길은 학교에서부터 체벌을 없애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교사들이 먼저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인권을 보장해줄 때만이 대한민국은 인권이 존중 받는 참다운 민주사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일에 우리 모두 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박신호(전교조 대구시지부장)

처음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실명으로 싣습니다.
어렵게 글을 써 주신 박신호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8월 10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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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1> - 대구 초등 L교사 ... "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교사들의 고백 2> - 구미 중등 L교사 ... "게으른 나를 탓한다"
<교사들의 고백 3> - 포항 중등 K교사 ...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들의 고백 4> - 영주 초등 A교사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교사들의 고백 5> - 대구 중등 H교사 ... "잘못된 부교재 관행, 이젠 바로잡아야"
<교사들의 고백 6> - 목포 초등 B교사 ...“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교사들의 고백 7> - 진주 중등 K교사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충실해야만 한다”
<교사들의 고백 8> - 안동 중등 J교사 ... "교사는 반성하는가?“
<교사들의 고백 9> - 울진 초등 Y교사 ... "교사가 학교를 살려야 한다"
<교사들의 고백 10> - 영양 중등 K교사...“교사로서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교사들의 고백 11> - 상주 중등 Y교사...“지각생 박군의 이야기..."
<교사들의 고백 12> - 대구 박신호 교사...“나도 한때는 폭력교사였다"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글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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