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 땅의 질병, 그 아픔을 어떡하나?”

평화뉴스
  • 입력 2005.08.27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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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료진단 15] 추호식
...“이주노동자의 체계적인 의료 보장이 절실하다”

20대의 외국인 여자 환자!
개인병원 산부인과에서 진료를 받았다고 하는데, 수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장 통증과 같은 증상은 없어 급한 수술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수술비가 200만원정도 든다고 들었던 모양이고, 우리 무료진료소에서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산업연수생 신분인 것을 확인하고 건강보험증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회사에서 건강보험증을 만들어 주지 않느냐고 하자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공장에 산업연수생이 6명 있는데 인도네시아 2명(수술해야할 환자 포함)은 건강보험증을 만들어 주기를 원하고, 다른 국가 출신 4명은 건강보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한 달에 만 원정도의 의료보험료가 부담스러워서 그럴 것이다).

회사 사장은 건강보험 가입을 6명 모두 하겠다면 몰라도, 일부만은 할 수 없다고 하며 보험증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환자의 경우는 진료적인 측면보다는 건강보험가입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고, 성서공단노동조합에서 건강보험 가입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산업연수생의 경우 회사에서 100% 건강보험을 가입시켜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등록 노동자(산업연수생)의 경우에도 건강보험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회사에서 가입시켜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노동자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강제 가입하도록 규정이 되어있고, 다만 가입하지 않더라도 조치가 없는 것이 법이며 현실이다.

30대 후반의 여자 환자이다.
한눈에 병색이 짙다. 멀리서도 왔다. 경기도 어디 골짜기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도서 몇 시간 버스를 타고 성서 무료진료소 까지 왜 온 것일까? 과거 병력과 지금의 증상으로 보아 간이 많이 나쁠 것 같고, 당뇨도 의심되었다. 혈당 검사에서 당뇨는 당장 치료를 시작해야할 정도로 심하다. 간에 대한 검사와 그에 따른 조치도 필요할 것 같다. 당뇨병은 상태에 따라 처방을 조절해가면서 관리를 해야 하는데 경기도서 일하면서 성서 진료소에서 관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잘 아는 이주노동자에게 성서진료소에 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들었던 모양이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는 마땅히 검사나 치료를 받을 수 없으니 큰 마음먹고 우리 진료소까지 온 것이다. 내용을 설명해주고 돌려보내는데, 돌아서는 환자의 표정에는 걱정뿐이다. 경기도에서 어디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베트남 산모가 아기를 낳았다.
늘 많이 도와주시는 성서 모 산부인과에서 또 도와주었다. 첫 아이다.
애 키우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인데, 배꼽관리도 어렵고 처음 시켜보는 목욕도 쉽지는 않다.
이유 없이 울기도 하고 때로는 잘 안 먹기도 한다. 그 흔한 동네 아줌마도 옆집 할머니도 없다.

멀리 다른 나라까지 온 사정이 아니라면 동네에서 물어보고 간단히 해결할 문제도 어렵고 난감한 문제가 된다. 노동조합의 상근자가 분만 때부터 도와주고 있는데, 그이도 애 낳은 적이 없는 처녀이다. 그래도 큰 도움이 된다.

성서이주노동자 무료진료소가 만들어지고, 매주 수요일 10~20명의 환자를 진료해 온지 3년째다.
진료소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질환에 대해서는 달서구 의사회에서 도와주고 있다. 달서구 의사회에 소속된 병.의원에서 무료 혹은 적은 환자 부담으로 진료(검사, 입원, 수술, 분만 등)를 해준다. 첫해(2003년)에는 달서구 의사회에 의뢰한 환자의 30% 정도만이 2차 진료를 받았었는데, 요즘은 의뢰한 환자의 70%이상이 2차 진료를 받고 있다.

당시와의 차이는, 요즘은 봉사자(한국인)이 의뢰한 병.의원에 환자를 직접 데리고 가는 '도우미'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봉사자)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꼭 가기도 하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위치를 모르거나 말이 통하지 않아서 잘 안 갔을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회사에서 병원 간다는 것을 잘 허락하지 않다가도, 노동조합사람하고 병원 같이 간다고 하면 쉽게 보내주기도 했을 것이고,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혼자서 병의원을 찾아가기는 두려웠을 것이다. 든든한 우리편(?)과 동행이라면 진료 받으러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을 것이다.

이주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젊은 편으로 질병발생이 적은 나이이다.
진료소에 오는 환자들은 대체로 감기와 같은 가볍고 일시적인 질병, 일과 관련된 근골격계 문제, 위장병 등이 관련된 경우가 가장 많았다. 그 외에는 임신과 분만문제, 피부과 질병, 안과 질병 등이 많은 편이다. 전체적으로는 중한 질병보다 가벼운 질병이 훨씬 많은 편이다. 큰 병이 어려움이 더 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작은 병이라도 걱정이 되는 것이고, 그 걱정을 해소할 수 없다면 큰 어려움이 되는 것이다. 진료소에서 처방하는 몇 봉지의 약보다는, 환자들의 걱정을 해소 주는 말 한마디에 더 밝은 얼굴을 대하게 된다.

그래도 가장 곤란한 경우는 입원이나 수술 등이 필요한 경우이다.
특히 응급 수술을 하여야 하는 경우가 가장 힘들다. 병의 고통과, 이국땅의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살다 보면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는 법이다. 질병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지 않는가? 자원봉사 형태의 진료가 있기는 하나 극히 적은 부분만 해결이 가능하다.

체계적인 보장이 절실하다.
건강보험의 권리를 갖고도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이가 없어야 하겠고, 건강보험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보장책이 있어야 한다. 이주 노동자의 회비(보험료)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희년의료공제회 등은 좋은 대안의 한가지 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대한 건강보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도록 같이 노력해야하고, 건강보험이 없는 이주노동자를 위한 체계적인 보장책이 널리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심과 노력이 절실하다.

추호식( 대구경북인의협 사무국장. 내과 전문의).
* [인의협]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줄임말로, 5월부터 시작한 평화뉴스 <인의협의 의료 진단>은, 대구경북인의협 회원들이 의료정책과 의료계 관행, 건강 문제 등을 매주 돌아가며 짚어줍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8월 2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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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 의료진단>

<인의협의 의료진단 1>- 김진국...“창궐하는 암과 정부의 책임” (2005.5.2)
<인의협의 의료진단 2>- 이상원...“사회적 약자에겐 질병도 가혹하다”(2005.5.14)
<인의협의 의료진단 3>- 노태맹...“병원 주식회사?"(2005.5.21)
<인의협의 의료진단 4>- 윤창호... "내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2005.5.29)
<인의협의 의료진단 5>- 김건우..."생명에 대한 위험한 유혹”(2005.6.4. 일반외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6>- 김건우..."의료사각지대, 쪽방 거주자와 노숙인..."(2005.6.12. 진단방사선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7>- 송광익..."정부와 의사는 환자 앞에 겸허해야"(2005.6.19)
<인의협의 의료진단 8>- 김은경..."자살공화국, 대책은 없나?“(2005.6.26)
<인의협의 의료진단 9>- 이정화..."알레르기 질환과 모유수유권“(2005.7.3)
<인의협의 의료진단 10>- 박기수..."종합건강검진, 제대로 알고 하자(2005.7.10)
<인의협의 의료진단 11>- 김진석...“강자와 약자, 뽑는 자와 뽑히는 자”(2005.7.17)
<인의협의 의료진단 12>- 김병준...“약대 6년제, 무엇이 문제인가?”(2005.7.24)
<인의협의 의료진단 13>- 이종우...“남성의 성(性) 고민을 아십니까?”(2005.7.31)
<인의협의 의료진단 14>- 김성아...“일하면 아픈게 당연한가?”(2005.8.7)
<인의협의 의료진단 15>- 추호식...“이국 땅의 질병, 그 아픔을 어떡하나?”(200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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