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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에도 ‘의료생협’이 있다면...”
[인의협의료진단 17] 김선희
..."환자 스스로 주인 된 병원, 의료생활협동조합"
2005년 09월 20일 (화) 14:14:04 평화뉴스 pnnews@pn.or.kr

진료실 문을 열고 환자가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그런 환자를 의사는 웃으며 반긴다.

“안녕하세요... 요즘 너무 덥죠? 밤에 잠은 잘 주무십니까?”
“아니 글쎄... 하도 더워서 에어컨을 밤새 켜놓고 자서 그런가... 아침에 목도 칼칼하니 따갑고 코가 맹맹하니 막혀서... 이거 감기 같아서 이렇게 왔습니다.”

“어디 봅시다. 목이 좀 붉네요. 단순한 감기인 것 같습니다. 물을 좀 자주 드시구요. 에어컨은 온도를 너무 낮추지 마시고 장시간 쐬지 마세요. 많이 힘드시면 약을 좀 드릴테니 드시고 괜찮으면 더 이상 드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참... 요즘 「어머니는 잘 지내시나요? 당뇨가 있으니 식이요법과 운동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셔야되는데 가족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야 되는 거 아시죠?”」

   
이것이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 병원에서 본 모습이다.
언뜻 보기엔 다른 개인의원의 진료실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는 매우 가까워 보인다. 의사가 환자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환자는 현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해서 의사와 의견을 공유하는 등 의사가 그 환자의 건강상태나 현 상황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음으로해서 굳이 약이나 주사가 아닌 몇마디 전해지는 말속에서 충분히 그들의 신뢰감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이러한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는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우리나라 의료는 민간부분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고 공공부문에서도 경쟁과 효율의 원리를 적용해 민영화해 나가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경제의 바탕 위에서 의료활동이 이뤄지지만 정작 소비자 보호와 참여 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그 동안 우리 국민의 건강관리는 질환예방과 건강증진보다는 치료위주로, 진찰과 상담보다는 최첨단 기술에 의존하여, 1차의료보다 3차의료에서 해결하려는 특징을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건강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인권임에도 불구하고, 의료의 공공성이 강화되기보다는 시장 경제의 논리에서 비롯되는 의료의 상품화로 의료의 형평성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건강증진, 지역중심의 일차의료, 상담과 교육, 자기관리(self-care) 등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건강관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바탕 위에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연대하여 의료생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의료생협은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그들의 건강, 의료와 관련하여 생활상의 문제를 다루고자 조직된 주민의 자발적인 협동조직이다. 조합원들이 내는 1만원이상의 출자금으로 만들어진 의료생협에서는 주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하는 의료기관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역주민이 환자로서 진료만 받는 일반 의료기관과는 달리 가족의 건강관리에 필요한 상담 및 치료 등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족주치의사업, 방문진료 및 간호, 만성질환자 교육 및 관리, 보건예방학교 및 체조교실 등을 포함한 활동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 지역 주민은 조합원으로서 의료기관의 이용이나 경영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또한, 의료생협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스스로 건강을 계속 유지하고 증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사회의 각종 제도와 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환경과 복지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도 중요시한다. 의료인만으로 해결하기 힘든 만성병의 관리나 예방, 생활습관의 변화, 건강한 마을 만들기 등의 활동을 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어 소모임을 만들어 시행하고 생생한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본 조직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렇듯 의료생협은 협동조합의 근본이념인 조합원이 주인인 비영리조직으로서 의료생협에서 시행하는 병원 운영을 포함한 모든 사업은 구조적으로 조합원(지역 주민, 의료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이윤보다는 공공의 이익과 주민의 건강 증진이 최우선 과제가 되며 의료생협에 근무하는 의료인들도 이윤창출이라는 부담감에서 다소 벗어나 소신진료를 할 수 있게 되어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간의 믿음은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의료생협은 조합원들의 자발적이고 협동에 기초한 건강 지키기 활동을 가장 중요시하고 지원하며 가능하게 하는 조직이다. 더 나아가서 의료 소비자로서 지역의 보건이나 복지, 환경과 관련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역 주민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을 운영하고 있는 의료생협은 안성, 인천, 안산, 원주, 대전, 서울 등 총 6곳이며, 그 외 청주, 전주, 오산, 북촌, 도봉등 여러 지역에서도 의료생협 준비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의료생협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1948년 소비생활협동조합법이 산업조합법에서의 분리를 계기로 생협의 의료활동이 시작되어 현재 의료생협수가 136개, 참여하는 조합원수가 170만을 넘을 정도이며 활발한 조합원들의 활동뿐만 아니라 의대생 장학금제도나 의사연수제도를 갖추어 수준높은 의료진을 확보하는 등 그 활동이 활발하다.

아직까지 생소한 이름의 의료생협이 정착해 나가기까지는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주인의식을 바탕으로 한 자발적인 참여나 의료인들의 충분한 이해 없이는 의료생협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가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생협은 다른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그 근본에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 의료체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 의료 운동으로서의 위치를 갖게 된다. 이는 지역 주민, 즉 의료 소비자의 건강 지키기 운동을 통해서 의료인과 의료 소비자의 신뢰 관계 회복과 의료 소비자의 합리적인 각성이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건강한 지역 사회를 만들고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는 일은 제도나 체계 탓으로 돌리고 방치하기에는 너무나 시급한 문제이다. 어차피 모든 운동은 현실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하고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는 것이라면 의료생협도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 속에서 지역사회에서 접근 가능한 한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본다.
김선희( 대구경북인의협 회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 [인의협]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줄임말로, 5월부터 시작한 평화뉴스 <인의협의 의료 진단>은, 대구경북인의협 회원들이 의료정책과 의료계 관행, 건강 문제 등을 매주 돌아가며 짚어줍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9월 10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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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협의 의료진단>

<인의협의 의료진단 1>- 김진국...“창궐하는 암과 정부의 책임” (2005.5.2)
<인의협의 의료진단 2>- 이상원...“사회적 약자에겐 질병도 가혹하다”(2005.5.14)
<인의협의 의료진단 3>- 노태맹...“병원 주식회사?"(2005.5.21)
<인의협의 의료진단 4>- 윤창호... "내게도 '의사 친구'가 있다면..."(2005.5.29)
<인의협의 의료진단 5>- 김건우..."생명에 대한 위험한 유혹”(2005.6.4. 일반외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6>- 김건우..."의료사각지대, 쪽방 거주자와 노숙인..."(2005.6.12. 진단방사선과)
<인의협의 의료진단 7>- 송광익..."정부와 의사는 환자 앞에 겸허해야"(2005.6.19)
<인의협의 의료진단 8>- 김은경..."자살공화국, 대책은 없나?“(2005.6.26)
<인의협의 의료진단 9>- 이정화..."알레르기 질환과 모유수유권“(2005.7.3)
<인의협의 의료진단 10>- 박기수..."종합건강검진, 제대로 알고 하자(2005.7.10)
<인의협의 의료진단 11>- 김진석...“강자와 약자, 뽑는 자와 뽑히는 자”(2005.7.17)
<인의협의 의료진단 12>- 김병준...“약대 6년제, 무엇이 문제인가?”(2005.7.24)
<인의협의 의료진단 13>- 이종우...“남성의 성(性) 고민을 아십니까?”(2005.7.31)
<인의협의 의료진단 14>- 김성아...“일하면 아픈게 당연한가?”(2005.8.7)
<인의협의 의료진단 15>- 추호식...“이국 땅의 질병, 그 아픔을 어떡하나?”(2005.8.21)
<인의협의 의료진단 16>- 한동로...“안락사, 어떻게 볼 것인가?”(2005.8.28)
<인의협의 의료진단 17>- 김선희...“우리 지역에도 '의료생협'이 있다면...”(200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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