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20년, 나는 교사이고 싶다”

평화뉴스
  • 입력 2005.10.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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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교사들의 고백14] 대구 임성무 교사...“경력이 쌓일수록 나는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려 한다”“점수 따기에 바쁜 교사들,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교장...그리고 획일적인 학생평가"

나는 올해 교직20년째를 맞고 있고, 전교조 해직교사의 경력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다.

아이들이 교사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는 무시하고 ‘한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이다.’라는 해병대 전우회 말을 패러디하여 아이들에게 말하고는 졸업한 제자들이 전화를 하지 않으면 내가 전화를 해서 한번 보자는 둥, 왜 전화도 안하느냐는 둥 제자들을 지겹게 만드는 교사이다.

요즘은, 아니 가끔은 내가 아이들을 너무 구속하는 것 아닌가 싶어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틈만나면 전화를 하는 그런 교사이다.

‘글은 곧 나 자신’이라는 이오덕 선생님 말씀대로 글로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하면 될 터이지만 혹시나 싶어 미리 나를 밝히고 글을 쓰는 것이 친절하겠다 싶어 나를 설명하면서 글로 시작한다.

며칠 전 한 선배교사가 전교조활동은 못하지만 조합원은 가입하겠다며 전화를 하셨다.
그러면서 “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시험을 많이 치게 해서 아이들을 잡느냐? 또 친다면 실기나 감각 중심의 예체능 지필평가를 굳이 칠 필요가 있느냐? 임선생은 왜 가만있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많이 타협하고 사는구나 싶었다. 요즘은 이렇게 묻는 사람도 없지만 몇 해 전만해도 신규나 전입교사들이 발령 나서는 전교조 골수인 임선생이 있는 학교가 뭐 이러냐면서 은근히 실망을 나타낸다.

나는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속이 상하기도 하고, 이런 길을 가면서 고생하는 내가 딱하기도 하고 싫기도 하지만 이게 내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한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선배의 이런 질문에 선배가 좀 하지하고 말하니 그래도 임선생이 말하는 게 힘이 있지 않느냐, 안되면 자신이라도 나서서 말하겠다고 했다.
"예체능마저 지필평가...평가는 자꾸 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그러나 교장은...모든 교사들의 생각이 교장 한명의 평가관 때문에 좌지우지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나는 교무회의 때 교사들에게 의견을 구했고, 대부분의 교사들이 ‘국어.수학.사회.과학’에 대해서만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후에 결재를 맡기 위해 교장실에 들렀다가 아이들을 위해서 평가를 줄이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교장은 “가르친 것이 있으면 평가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그야말로 당연한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순간 흥분이 되었다.
교사가 일반인에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장이 교사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아니 교사들이 언제 평가를 하지 않겠다고 했나? 아니 교장이 교사를 이렇게 대놓고 무시해도 되나? 20년 교사를 한 내게 어떻게 이렇듯 당연한 사실을 물을 수 있단 말인가?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하는 자리에서 평가를 왜 하려고 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나는 무엇인가?

결국 나는 ‘일제형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근본적인 대답을 했다. 평가는 가르치는 교사의 몫이다.
서울시는 교육감 하나가 바뀌었는데 지금까지 치르지 않던 일제평가(교사별 평가가 아니라 같은 문제로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획일적으로 치는 평가)가 부활하자 전교조 초등교사들은 일제평가를 거부하는 저항을 했다. 그런데 대구는 학교별 평가는커녕 교육청 평가문항이 유출되기도 여러 번이었고, 올해는 드디어 밑바닥까지 드러낸 일이 벌어졌다. 평가문항을 100% 베껴서 문제를 내면서 학교별 평가는커녕(교사별 평가는 꿈도 꿔보지 않고) 교육구청별 일제평가를 치는 웃기는 짓거리한 곳이다. 그래도 이를 지시한 교장은 여전히 교장이다.

너도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교사별 평가와 수행평가 중심의 평가라는 원칙을 잊어버리고 현실을 선택해 왔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면 할말이 없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모든 교사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데도 학교장 한명이 버티는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교육의 ABC라는 평가를 두고 일부교사도 아니고 모든 교사들의 생각이 교장 한명의 평가관 때문에 좌지우지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교사인 나는 무엇인가?

나는 선배교사들에게 “지금까지 선배들이 이렇게 좋은 게 좋다 식으로 살아왔으니 아직도 이렇게 교사가 통째로 무시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가르치는 교사들이 스스로 가르친 것에 대해 가장 알맞은 방법을 선택해서 평가를 책임지고 하자는 이 당연한 말이 왜 대구지역 학교에서는 이리도 힘이 들까?

왜 전교조는 안 그래도 힘든 교사를 더 힘들게 하는가라는 항의에, 나는 힘든 만큼 월급을 못 받았느냐? 월급 받은 만큼 힘들게 일하고 월급이 모자라면 월급을 더 달라고 해야지 않느냐고 말했다. 사실 초등교사들은 과도한 수업부담을 지고 있다. 여기다가 승진제도와 전보가산점제도 때문에 아이들 잘 가르치는 경쟁이나 협의가 아니라 자기 점수따기 경쟁에 내 몰리고, 점수를 많이 딴 교사들이 실력있는 교사인양 취급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힘든 수업부담을 줄이기 위해 수업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아이들 잘 가르치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 점수 따기 경쟁에 내몰리는 교사들"

혹시 승진한 이들 가운데 나는 충실히 했다고 말하는 교장이나 교감이 있으면 소개해 주기 바란다. 나는 가끔 굉장히 교육적으로 말하는 장학사 등을 만나면 ‘나는 당신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고 협박을 해 댄다. 이런 파행은 결국 교사의 본연의 일인 평가마저 힘든 잡무로 여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러다 보니 뜻있는 교사들 중에는 아예 교원평가를 해서라도 교사들을 걸러내자는 말을 해 버린다.
하지만 이미 줄서기가 만연하고 익숙해진 교사들에게는 백해무익이다. 아마 교원평가가 생기면 모두들 평가자들 앞에 한 줄로 서서 줄대기를 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장선출보직제가 최선의 방안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교사 스스로 교육의 본질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교사는 더 이상 교사일 수 없고, 민주적인 듯 보이지만 교육 본질이 지켜지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평가를 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평가를
하면 아이들 실력이 높아지면 아이들에게 뭐가 좋다는 말인가?
그동안 평가를 해서 뭐가 좋아졌지? 실력이 높아져서 좋아진 게 뭐가 있지?

교사는 사기꾼일 수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착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것만을 가르치는 것은 사기이다.
어디 세상이 성실하고 착하면 잘 살 수 있는 세상인가? 더 근본적으로는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의 경제력과 학력, 직업이 아이의 경제력과 학력, 직업을 결정지우는 것을 뻔히 아는 교사들이 이미 불가능한 아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은 사기 아닌가?

더 이상 많은 것을 소유하고, 편리하게 산다는 것이 결국은 지구환경을 파괴하는 생명과 평화의 위기시대를 살면서 아무런 가치나 설명도 없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으로 내 모는 것은 사기 아닌가?
"나는 그동안 무망한 목표를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무작정 아이들을 내몰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는 좀더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현실에 적당하게 안주하려고 하고 있다..."


진정 아이들을 위하는 교사라면 세상을 바꾸어 놓던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세상을 바꾸는 힘을 길러 주던지, 그것도 아니면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 주던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무망한 목표를 아이들에게 제시하고 무작정 아이들을 내몰고 있지는 않았는가?

나는 첫 제자들 나이가 벌써 서른둘이나 되었다.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만 해도 벌써 600명이 훨씬 넘었다. 중고등 교사라면 훨씬 더 많겠지? 내가 가르친 제자들 대부분은 노동자가 되었다. 서울대를 간 제자가 한명이고, 의사가 된 아이들이 2명이 다다. 교사가 된 제자들 6명은 다들 노동조합을 하지만 생산 현장에 간 제자들 가운데 노동조합 일을 하는 제자는 없다. 내가 살아보니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합이 최고의 힘인데 나는 그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이다. 다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이들 앞에 놓인 비정규직의 벽으로 고생하는 제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진정 제자들의 고민이나 고통을 헤아려주지 못한 채 그저 내 앞에서 착하고 성실하기만 바란 꼴이 되었다. 제대로 된 길을 가르쳐 주지 못한 것이다. 요즘 내가 생명과 평화에 대해서 떠들고 다닌 덕에 환경운동을 돕는 제자나 지역문화행사에 자원봉사를 하는 제자들이 생긴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나는 제자들을 만나면 내가 잘 못 가르친 것에 대해 사과한다.
지금 내가 다시 가르친다면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라며 틈만 나면 다시 고쳐 가르치려고 한다.

나는 경력이 쌓일수록 좀더 교육의 근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내 몸의 편함이나 작은 이익을 위해서 현실에 적당하게 안주하려고 하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 도원초등학교 임성무(43) 교사>

임성무 선생님은 20년째 교편을 잡고 계시며, "나는 교사이고 싶다”는 이름으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평화뉴스.


(이 글은, 2005년 9월 28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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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의 고백 1> - 대구 초등 L교사 ... "교사라고 말하기 부끄럽다"
<교사들의 고백 2> - 구미 중등 L교사 ... "게으른 나를 탓한다"
<교사들의 고백 3> - 포항 중등 K교사 ...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
<교사들의 고백 4> - 영주 초등 A교사 ...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교사들의 고백 5> - 대구 중등 H교사 ... "잘못된 부교재 관행, 이젠 바로잡아야"
<교사들의 고백 6> - 목포 초등 B교사 ...“학부모에게 접대받는 교사들”
<교사들의 고백 7> - 진주 중등 K교사 ...“교사는 가르치는 일에 충실해야만 한다”
<교사들의 고백 8> - 안동 중등 J교사 ... "교사는 반성하는가?“
<교사들의 고백 9> - 울진 초등 Y교사 ... "교사가 학교를 살려야 한다"
<교사들의 고백 10> - 영양 중등 K교사...“교사로서 나는 무엇으로 행복한가?”
<교사들의 고백 11> - 상주 중등 Y교사...“지각생 박군의 이야기..."
<교사들의 고백 12> - 대구 박신호 교사...“나도 한때는 폭력교사였다"
<교사들의 고백 13> - 칠곡 중등 S 교사...“선생님, 교육목적이 뭔가요?”
<교사들의 고백 14> - 대구 임성무 교사...“교직 20년, 나는 교사이고 싶다”

“교사를 찾습니다”

평화뉴스는 2004년 한해동안 [기자들의 고백]을 연재한데 이어,
2005년에는 연중기획으로 [교사들의 고백]을 매주 수요일마다 싣습니다.
교육의 가치는 ‘학생’에게 있으며, 교사는 사람을 가르치는 ‘성직’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 교무실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연들.
그리고, 우리 교육계와 학부모, 독자들이 함께 고민해봐야 할 ‘교사들의 글’을 찾습니다.

남을 탓하기는 쉽지만, 스스로 돌아보고 남 앞에 고백하기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백들이 쌓여갈 때 우리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 믿으며,
대구경북지역 현직 초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독자들께서 좋은 선생님들을 추천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을 쓰신 분의 이름은 실명과 익명 모두 가능하며,
익명의 신분은 절대 밝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의 : 평화뉴스 (053)421-151 / 011-811-0709
글 보내실 곳 :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PN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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