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의 윤리적 딜레마”

평화뉴스
  • 입력 2006.02.2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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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고백 3>...
“나와 직장의 안위를 위해선 ‘적절한 타협’이 미덕?”

사회복지사로 일을 시작한지도 어언 9년이 되어 간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데 정말 이번처럼 진지하게 지금까지의 내 모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면서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별의별 일을 다 겪었으며, 다양한 종류의 고민과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건만, 이렇듯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어쩌면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다행이고) 새삼 발견하고는 부끄럽기까지 하다.

사실 나는 가톨릭신자로서 비신자들보다는 좀 「고백」이라는 것에 훈련이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최소한 1년에 2번이상은 고백성사를 보아 왔다. 고백성사를 위해서는 지나온 날에 대한 성찰과 회개가 전제되어야 하기에 나름대로 훈련이 되어 왔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고백’의 내용들을 돌이켜보면, 내 직업과 관련해서 최소한의 ‘직장인으로서의 나’ 수준 외에는 별다른 성찰을 해 보지 못 했던 것 같다. 즉, 사회복지사로서의 고백은 처음이라는 뜻이다.


‘누구’를 위해 여기에 있나 - "합리화, 누구로부터 특별히 처벌받거나 비난받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의 성찰을 하다 보니 결국은 궁극적인 부분, 가치적인 부분에 귀결됨을 느꼈다.
내가 누구를 위해 이 길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분명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혹은 나를 포함한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이 길을 선택했음에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오로지 나 또는 우리 직장’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다반사다.

설령 그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나와 직장의 안위를 위배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이 그들에게 최고의 서비스가 될 수 있음에도 혹은 지역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선택이 무엇인지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나와 직장의 안위’를 위배할 요소가 있다면 적절한 타협을 하는 게 나와 직장 동료에게는 미덕으로 비쳐지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는 다양한 도구와 명분들이 사용되어 합리화시킨다. 사회복지사 개인의 자율성 보장보다 전체 사회복지계를 위해서나 직장을 위해 따라가야 한다거나 적극적 서비스제공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그리고 비효율성 등등은 합리화의 주된 소재가 된다.

나와 우리가 분명히 저소득층을 위해 무엇을 한다고 여기에 있다면, 그리고 그들의 모든 어려움을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할망정(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분명히 그들에게 ‘희망과 미래’를 줄 수는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그 ‘희망과 미래’를 전함에 있어 상황에 따라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줘야 함에도 안 주었을 경우, 특별히 문제되거나 처벌받지도 않았다. 비난도 받지 않는다. 비록 그들 중 몇 명이 문제를 삼을 지라도, 역시 다양한 도구와 명분들로 막아낼 수 있었다. 이런 경우가 여러 번 되풀이되면, 사회복지사의 윤리적 딜레마나 양심 등도 내 자신을 위로하는 차원으로 전락되곤 한다.


‘누구’와 함께 일하는가 - "독단, 불리할 경우 자기 방어벽을 세우거나 시간에 맡겨버린다"

사회복지사로서 개인적 가치를 굳건히 잘 지키면서, 그 가치들이 풍성한 삶으로서 채워지는 모습을 누구나 그리지만 혼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혼자서 지켜나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또는 함께 일하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가치를 지켜내기에도 벅찰 것으로 보인다.

그런 노력을 해 왔는가? 어떻게 해 왔는가? 이 역시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 사회복지기관에서 중간관리자로서 있으면서 여러 형태의 갈등 상황을 접한다. 주민조직들과의 갈등, 지자체와의 갈등, 상위자와의 갈등, 동료직원들과의 갈등 등등등... 이때마다 골치도 아프고, 내 맘같이 않은 표현방식이나 요구방식에 대해 속으로는 힘겨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적절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으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혼자만의 고민과 선택이었을 경우가 훨씬 많다.

그 고민의 결과물이라는게 나름대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다행이지만, 대부분 상당히 복잡하고 다변적이며 더딘 속도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과정을 수차례 겪다보면, 그 갈등상황조차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하게 되고 심지어 시간에 모든 걸 맡기는 경우도 많아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절한 자기 방어벽은 세워두고 말이다. 같이 뛰어들어 해결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나와 우리의 입장을 세우느라 급급하다.


“사회복지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그러나. 비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며 후회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다 나은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동료직원 혹은 기타 관계인들과의 가치공유나 협의에 의한 판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절차도 그들과의 상호 신뢰감 있는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할 때 더욱 효과적임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 전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평상시 생활하다 보면 수시로 동료들이나 그 사안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비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서 후회하는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동료 직원들에게는 몇 년 선배라는 이유로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있었을 거고, 지역주민들에게는 그들이 우리에게 불리한 주장을 할 경우에는 협의의 대상에서조차 아예 배제하는 경우도 있었을 거다. 다른 조직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우리 사회복지조직에서는 사람과 사회의 문제인만큼 어떤 사안에 있어서도 관계된 사람들과의 개방적인 논의가 필요하며 함께 고민하는 절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이 비슷하게 고민하는 부분들을 나도 역시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통의 문제고, 공동의 대응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복지사의 고백」란을 통해 그런 고민들을 공유하고,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 같이 논의하고 대응하여 보다 적극적인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을 세워나가길 희망한다. 여기에는 모든 복지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고민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나 부터라도...

대구 J사회복지사(사회복지현장 9년째 근무)

(이 글은, 2006년 2월 10일 <평화뉴스> 주요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 [사회복지사의 고백]은 <평화뉴스>와 우리복지시민연합(www.wooriwelfare.org)이 공동연재 합니다.

<사회복지사의 고백 1>..."NO라고 말할수 없는 복지 현장"(1.16)
<사회복지사의 고백 2>..."사회복지사에게 복지는 없다?"(1.20)
<사회복지사의 고백 3>..."사회복지사의 윤리적 딜레마"(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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