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낄 수만 있어도 감사해요”

평화뉴스
  • 입력 2006.02.20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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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필화가 박정(32)씨...
“축구선수에서 전신장애, 그리고 화가로"...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 박정(32)씨...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 박정(32)씨...

“느낄 수 있고, 입으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전신장애의 아픔을 딛고 구필화가의 꿈을 이뤄가는 한 장애인의 삶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오는 17일 대구대를 졸업하는 구필화가 박정(32.미술디자인학부)씨.
박씨는 졸업에 앞서 오는 14일 교육인적자원부가 주관하는 ‘21세기를 이끌 우수 인재상’을 받는다.
1급 지체장애를 안고 사는 박씨는, 자유롭지 못한 손 대신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로서 대학시절 50여차례 작품 전시회를 하며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줘 ‘예술체육특기자’ 분야 수상자로 뽑혔다.

17일 대학을 졸업하는 박정씨.
17일 대학을 졸업하는 박정씨.
고등학교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박씨는, 지난 1991년 고교 2학년 때 불의의 사고로 팔 다리가 마비되는 전신장애의 불운을 겪었다.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머리를 다쳐 휠체어를 떠날 수 없게 됐다. 박씨는 그러나, 사고 3년이 지난 ’94년부터 구필화가로 또 다른 삶을 시작했다.

구필화가의 꿈을 키운 지 7년. 박씨는 2000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입상하며 화가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2002년에는 대구대 회화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전시회를 50여차례나 열었다.

특히, 월드컵 경기가 열렸을 때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에게 입에 붓을 물고 페이스 페인팅 봉사활동을 해 국내외 언론에서 눈길을 끌었다. 또, MBC TV 프로그램‘느낌표’의 '길거리 특강'에 출연한 것을 비롯해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진솔한 강의와 작품 전시회로 큰 희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잃어버린 부분은 내 것이 아니라는 남편...감사하며 사는 삶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장애를 딛고 선 박씨의 삶에는 아내 임선숙(40)씨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기독교 신자인 박씨는 한 선교지에 글을 썼는데, 그 글이 두 사람을 부부의 연으로 맺어 주었다.

“비록 장애를 겪고 있지만, 느낄 수 있고 입으로라도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너무 감사하다”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인천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하던 임씨는, 애잔한 이 글에 이끌려 서울에 사는 박씨를 찾아갔고 이들은 1999년 부부가 됐다.

박정.임선숙 부부...
박정.임선숙 부부...
아내 임씨는 남편 박씨의 대소변 받는 일을 비롯해 하루 24시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씨의 어떤 인터뷰에도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 자신이 더 고맙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가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도움을 받는걸요. 잃어버린 부분은 내 것이 아니라는 남편의 생각, 그리고 늘 감사하며 사는 삶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같이 사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해요”

그래서인지, 박씨는 '수상' 소감을 물어도 아내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제가 이렇게 학교에 다니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준 대학과 정대수(회화과) 교수님을 비롯한 주위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박씨 부부는 대학측의 배려로 학내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직장을 다닐 수 없는 형편이라, 박씨가 활동하고 있는 ‘세계구족화가협회’의 지원금과 대학 장학금, 그리고 국가지원금과 주위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인공수정’을 해야 하는데 성공률이 낮아 여의치 않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입양’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충청남도 당진군에 작은 화실을 마련했다.
그 곳을 보금자리 삼아 ‘구필화가’ 박씨 부부의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느낄 수만 있어도 감사하다는 박씨. 그리고 그런 남편에게 더 감사하다는 아내.
쉽지 않은 삶. 그러나 힘겨움에 지친 이들에게 큰 힘을 전하고 있다.
적어도 기자에게는 ‘느낌’만으로도 감사하다.

박정씨는 졸업 후 충청남도 당진군에 마련한 새 화실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박정씨는 졸업 후 충청남도 당진군에 마련한 새 화실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글.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사진. 박정(32)씨 미니홈페이지(www.cyworld.com/pjeong) / 대구대학교

(이 글은, 2006년 2월 12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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