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의 치르코 막시모 대 경기장 가까이에는 “진실의 입”이라는 대략 직경 40cm 정도의 대리석 판이 있다. 여기에는 플르비우스 신(강의 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그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플르비우스가 손을 삼켜버린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문에 로마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이 대리석 판의 입에 손을 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오드리 헵번이 나온 “로마의 휴일” 때문에 유명한 곳이 되기도 한 이 “진실의 입”은, 그러나 전설 이상의 오욕의 역사를 갖고 있다.
중세 때에 일부 악덕 영주들이 자신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게 하고는 뒤에서 몰래 자르도록 했다는 거짓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진실을 앞세워 거짓을 자행한 유감스러운 실례이다.
총선 공정보도?..."부끄러운 역사부터 엄격하게 성찰해야"
총선을 앞두고 각 언론매체마다 공정한 보도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나름대로 객관성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도움을 얻어 총선에 제대로 된 사람을 뽑을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단다. 과연 언론매체들의 보도태도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총선을 끝낸 뒤 평가해봐야 할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다들 “진실의 입”이라고 표방하면서 총선보도에 매달릴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보도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면서 국민들이 공정한 심판하는데 본연의 역할을 잘 해주길 바란다. 그러나 다른 한편 걱정스러운 부분은 이 “진실의 입”이 그동안 보여준 권언유착의 역사, 분단과 경제발전을 빌미로 정부의 잘못과 사회의 정당한 요구들을 “공적으로” 묵살한 역사의 평행선상에서 얼마나 올곧게 자기변신을 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젠 민주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언론자유도 있고 소신대로 보도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그동안의 언론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으며 여전히 사회기득권층의 이해와 특권을 합리화시키는데 한몫을 해온 것도 사실이 아니가.
그들은 “진실의 입”을 가지고 경제발전이나 국가안보라는 명분아래 입을 열지 않거나 듣기좋은 말로 기층권력을 합리화시켜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사회시스템을 지탱하고 재생산하는데 언론의 “부끄러운” 역사가 한 몫해온 것이다.
이제 국민이 주인되는 참된 민주주의 국가를 위해 제대로 된 사람을 뽑자고 말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사람을 뽑기 위해서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정직하게 정치하는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보여줄 장이 필요하다. 이런 장이 언론이어야 할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 자신을 엄격하게 성찰하면서 사회저변의 공공선을 지향하는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중앙이든 지방이든 기성언론이 보여주는 모습은 이러한 변화에의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지역언론의 정체성을 찾아야"
지역언론은 더 큰 과제에 직면해있다. 지역언론의 몰락만을 얘기하면서 생존의 당위성만을 강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에 합당한 지역언론 정체성의 문제인데, 이는 어느 새 뒷전인 감이 든다. 지역이 살아야 한다면서 중앙에서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지만, 지역의 고착화된 고질적인 비합리적인 정치, 경제, 사회구조를 접근하는데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하다.
이제 중앙에 의존하지 않고 지역이 자생력을 갖고 역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 중앙에 추파를 던지면서 밟아온 구태의연한 언론의 길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진지하게 돌아보고, 드러내 말하고, 어떻게 고쳐나갈 건가를 함께 고심해야 한다.
지역의 아름다운 정체성을 살리고 또한 언론의 새로운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면서 말이다.
지역의 자그마한 인터넷언론매체가 대안언론임을 얘기하면서 뜬단다. “평화와 통일” “나눔과 섬김” “지역공동체”를 지향하면서 말이다. 이 세 가지는 결코 분리된 주제가 아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에서 단절된 이웃과 서로 나누면서 분열과 갈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정치적으로 고질화된 지역갈등와 “끼리끼리” 문화, 경제적으로 빚어진 빈부격차와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갈등의 문제를 구석구석 드러내, 사회내부에 깊이 자리한 차별과 장벽들을 허물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는 장을 만들면서 어우러지는 공동체로의 희망을 일궈나가길 바란다. 그래서, 작지만.. 다양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애환을 말하는 “진실의 입”이 되길, 또 끝까지 초심을 지켜주길 바란다.
김재경(방송인.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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