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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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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우리 동네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작은 글을 하나 썼다. 아파트에 살다와서 보니 비교되게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아이들의 모습이 안스러워서였다. 또, 한 동네 한 골목서 이리저리 마주치며 살지만 이웃같지 않은 이웃으로서 서로의 자화상이 낯설어서였다.
없기 때문에, 서로가 부족해서 품앗이를 하면서 정을 쌓아가던 과거 가난한 시절의 따뜻한 이웃의 자화상이, 없기 때문에 움츠러들고, 줄 것 없어 관여하지 않으며, 남 귀찮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무정한 이웃들로 변해 가고 있는 듯 보였다.
‘가난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불편할 따름’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가 본 가난은 이웃들의 삶을 위축시키고 삭막하게 또 황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속에 끼여서 나 역시도 자그마한 실천조차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해 있는 모습이 답답해서 쓴 글이었다.
이웃같지 않은 내 모습이지만, 이웃 몇 분들은 그래도 날 도와주려고 열심이었다. 특히 김장때나 장 담글 때는 장보기부터 마지막 장독에 담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조언을 해주는지 모른다.
가난한 이들의 총선...“다 같은 도둑놈”



이 분들에게 며칠 전 이번 총선얘길 꺼냈다. 대답인 즉, “관심없다”는 얘기부터 시작해 “다 같은 도둑”이라는 얘기였다. 열심히 뽑아봐야 다 제 입만 챙긴다는 거다.
지금 정치권은 너나 할 것 없이 요란스럽게 총선을 얘기하고, 시민사회단체들도 깨끗한 정치를 위해 이런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다각도의 기준과 낙천대상들을 발표하지만, 내 이웃들은 이번 선거를 통해 희망을 주는 정치가 도래하거나 나아가 현재 누적된 사회문제들을 시원하게 푸는데 물꼬가 트일 것라고 거의 믿질 않고 있었다.
낙관보다는 비관이, 참여보다는 냉소가 지배적이었고, 희망을 주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혐오증만 불러일으키는 정치의 모습으로만 정치판을 보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탈정치화와 정치적 냉소주의는 새삼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또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바람”의 정도와 방향에 따라 새삼스럽게 적극적인 참여의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유권자...“피해자로서 항의도 않고 단념하면 안돼”


그러나 지금 내 이웃들은 선거가 그들의 주권을 행사하는 결정적인 수단이고, 그 결과 잘못 뽑으면 그들 스스로 국회로 보낸 정치인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관심해 보였다.
이들 유권자들이, 무책임하게 정치에 무관심을 보이고 냉소적인 비난만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선거때만 유권자를 찾고 당리당략에 따라 공허한 얘기만 남발해온 정치인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부패정치인들은 냉엄하게 심판하자고 얘기한다.
그러나, 내 이웃들은 그 심판행위에 대해 그저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으로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정치의 피해자가 그 피해자로서 항의할 생각도 하지 않고 단념하려 하는 것이다.
생활과 정치의 엮음...
"조소와 냉대를 넘어, 이웃과의 대화로 ‘개혁’과 '사회정의'를!"



만약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그들만의 정치”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 평범한 이웃들이 경험해온, 누적된 좌절에서 만들어진 정치혐오와 냉소의 들판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개혁’ ‘사회정의’ ‘깨끗한 정치’라는 반복된 구호보다, 내 이웃들에게는 오히려 “가진 게 없어서” 소외되고, 겉돌아야 되고 언제라도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현실이 더 시급해 보인다.
먼 정치인보다는 가까운 누군가가 있어 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어루만지면서 함께 문제를 고민해주는 이웃들이, 내 이웃들에게 이 땅의 정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생각을 넓혀보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먼저 내 이웃들과의 의사소통의 물꼬를 트는 것, 그리고 그 연결된 대화의 체계를 자그마한 물길을 터나가듯 보다 세밀하고 견고히 해나가는 것, 그 속에서 문제를 함께 공감하고 해결해나가려고 하는 데에서만이 ‘조소’와‘냉소’를 넘어서 실현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실천 속에 ‘개혁’과 ‘사회정의’와 ‘깨끗한 정치’가 제대로 녹아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총선은 코앞이고, 자그마한 생활과 정치와의 엮음은 너무나 요원해보인다. 허나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이르다고 하지 않는가? 길게 보고 실천할 때이다.

김재경(방송인.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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