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관계적 우위’에 서 있지 않았나?”

평화뉴스
  • 입력 2006.06.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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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고백 9] 대구 K사회복지사...
“낮은 곳에서 찬찬히 살피고, 입장의 동일함으로 함께 실천하며 살아가야”


우리 사회를 들어다보면, 사회 속에서 거부당하기만 하는 삶의 모습이 얼마나 많은가?
도시개발의 미명아래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쫓겨나야만 하는 철거민, 주민등록도 없이 일자리와 먹거리를 찾아 전전하는 노숙자들, 7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술과 폭력 속에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

일찍이 남편을 잃고 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를 대비해 정신지체인 딸을 위해 평생을 모아온 돈, 그러나 먼저 세상을 등져버린 딸 그 아픔을 뒤로하고 이제는 노동능력이 없음에도 모아둔 돈 때문에 수급권자에서 탈락하게 된 할머니, 공장에서 일해서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는 꿈을 가진 청소년, 정신장애로 혹은 오래된 지병으로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집에만 거주해야 하는 사람들...

화려하고 거대한 한국사회의 이면에 숨어있는 소외된 이들의 삶. 그들의 삶의 언저리에 바로 우리들이 있다.
아니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회복지사로의 사명이 아니던가? 또한 그들의 삶이 사회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음을, 그 삶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삶이 항상 불행하기만 하고 슬프기만 했던가! 단연코 아니다. 사회복지현장에 발 딛은지 7년, 그들의 삶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운다. 사람사이의 정과 관계, 그리고 행복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나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평택 대추리로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5조 5천억원이라 한다. 4조 7천억원이면 무상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생각했다. ‘그래 저 돈이면 병원비가 없어서 복지관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저 돈이면 비만 오면 전화가 걸려오는 정신장애인이 좀 더 편안해 질지도 모르겠구나, 저 돈이면 가난하다고 병원가서 무시와 모멸은 덜 당하겠구나, 저 돈이면 수술비 없어 거부당하지는 않겠구나’라고....

사회복지의 경제적 부족함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사고의 문제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양극화의 문제를 국정 최우선과제로 생각한다던 현 정부가 이 땅의 수많은 힘들고 어려운 삶들에 관심을 갖지 못하고, 미군의 안락과 편안함을 위해(국방의 문제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그 만큼 들이 붓는 그 사고의 바탕 말이다.

아마도 ‘양극화 문제 해결’이라는 구호는 빚 좋은 개살구인 듯하다.
국익을 위해 소수국민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국익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민주적임을 자처하던,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참여정부” 아닌가! 그런 정부에서 대추리 주민의 이야기와 요구를 겸허히 들었던 적이 있는가? 그리고 경찰력으로도 모자라 군대를 투입하다니...

국가와 국민간의 이런 관계성! 과연 이것은 정상적인 관계일까? 아닌 것 같다.
잘 알고 지내는 한 선생이 “관계의 정상성”과 “입장의 동일함”이라는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사회사업에 있어서의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나아가 동일한 입장을 확보하는 것의 중요성과 가치를 이야기 했었다. 사회복지사와 ct와의 관계, ct와 자원봉사자․후원자와의 관계, 사회복지기관과 정부기관과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CT : client - 사회복지계의 클라이언트는 ‘사회복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사회복지대상자’를 말한다)

우리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ct의 삶에 개입한다.
그 개입의 과정에 그들의 삶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일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관계적 우위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한 때라도, 우리는 그들을 대변하고 이해시키고 함께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통해 만나게 되는 후원자․자원봉사자와의 관계도 동등해 질 수 있다. 새로운 관계, 보다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 질 가능성이 있다.

이 관계성은 사회복지기관과 정부기관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최근 사회복전달체계개편과 관련하여 지역복지협의체를 통해 민과 관이 동등한 입장에서의 협력체계를 만들고 실천계획 수립하겠다는 참으로 바람직한 방향의 실천계획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가능할까? 이런 의구심은 그대로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비단 지역복지협의체 뿐만 아니라 정부 기관과 사회복지기관과의 평소의 관계에서도 이런 관계의 정상성은 전혀 확보되지 않는다. 정부기관의 공무원은 사회복지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복지기관의 입장을 대변하고 함께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사회복지라는 공공영역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바로 국가이다. 최소한의 운영비를 국가기관에서 받고 민간 사회복지기관들이 사회복지서비스를 공급하는 최일선의 주체가 되어 있는 것이 한국의 사회복지시스템이다.

그러나 국가로부터의 최소한의 운영비(이는 당연한 국가의 책임이다)는 사회복지기관을 민과 관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항상 정부기관이 관계적 우위에 있게 된다. 그들은 항상 지시하고 자료를 요구하게 된다. 감사권한을 가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 관계에서의 혹은 사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 특히나 평택과 같이 국가와 국민간의 갈등이 문제가 되었을 때, 과연 사회복지기관들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ct의 고통과 아픔을 감싸안고 잘못된 권력과 맞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니던가! 현재적 관계에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여기까지가 현실 사회복지의 한계인가?

사회복지가 진정으로 소외된 이들의 삶을 돌보고 함께 행복하기 위해, 국가권력의 콩고물이 아니기 위해 관계의 정상성 회복은 너무도 절실한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은 다시금 내 삶을 되돌아 보게 한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한 법입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대추리 주민들의 입장,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ct의 입장, 지역주민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보다 대승적으로 입장의 동일함을 견지하는 것! 그것은 사회복지사로서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물과 같은 역할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살아갈수록 더 순수해지고 살아갈 수록 더 아름다워지는 것, 높은데서 굽어 살피며 살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 찬찬히 살피며, 서로간의 입장의 동일함으로 함께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 2006년 평택의 대추리를 바라보며 사회복지사로서 되돌아보게 되는 내 삶이다.


대구 K사회복지사




※ [사회복지사의 고백]은 <평화뉴스>와 우리복지시민연합(www.wooriwelfare.org)이 공동연재 합니다.

(이 글은, 2006년 5월 26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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