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우직하게 바른 길 걷는 마음의 심지"(06.06.16)

평화뉴스
  • 입력 2006.06.17 18: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6년 6월 16일자 신문 지면PDF
2006년 6월 16일자 신문 지면PDF


신문 2006년 6월 16일자 인터넷판
신문 2006년 6월 16일자 인터넷판


“우직하게 바른 길 걷는 마음의 심지”
121권.라면상자 3개 분량...누가 볼까 밀봉...‘10년 일기 쓰면 성공’ 말 듣고 쓰기 시작

[이사람] 만 20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 쓴 유지웅씨



유지웅(36)씨에게 지난 9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고교 1년때인 1986년 6월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마음 먹은 뒤 하루도 빼놓고 않고 손으로 또박또박 일기를 써 지난 9일 만 20년이 됐던 것이다.

그동안 쓴 일기는 모두 121권, 라면상자 3개분량으로 유씨는 ‘남이 볼새라’ 테이프로 밀봉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처럼 일기장 제목도 많이 바뀌었다. 20년전 첫 제목은 일기장을 순 우리말로 풀어쓴 ‘날글터’. 학생운동에 열심이던 대학시절엔 ‘역사 앞에서’ ‘해방공간’ ‘전사의 맹세’등으로 달라졌다. 사회에 뛰어들어서는 ‘길’등 내면을 돌아보는 내용이다가 라디오방송 기자생활을 그만두고 대안언론의 길로 접어든 요즘 일기장엔 세파를 의미하는 ‘맞바람’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그의 일기쓰기는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문학소년의 첫 미팅을 주선한 선배 누나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 계기가 됐다. “10년동안 일기를 쓰면 성공한다더라!” 그렇게 시작한 일기는 예민하던 고교시절, 입시 스트레스나 진로에 대한 불안 등 다른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가 됐다. 해를 거듭하며 일기는 양치질처럼 습관이 됐다. 유씨는 “20년이 지나 일기장을 펴보니 시골에서 올라와 촌놈이라 불리던 시절, 촛불 켜놓고 시 쓰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 나도 모르게 미소지었다”고 했다.

그는 “첫 10년 동안에는 그 누나 말처럼 10년 후 내가 뭐가 되어 있을까 기대하며 일기를 썼는데, 20년이 된 지금에는 앞으로 30년이 변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외적 성공보다 내면의 성숙이 더 중요하며 그것이 20년간 일기가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유씨는 여긴다.

사춘기 시절부터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일기의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질문이었고, 그 해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올바른 길을 찾아 우직하게 걸어가는 심지를 마음에 심게 됐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힘들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도 일기쓰기가 준 선물이었다.

유씨는 “20년 되던 지난 9일 허허로운 마음 한 켠에 제일 중요한 게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며 “살아서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만도 큰 축복”이라고 했다. 유씨는 새로운 시각으로 언로를 트기 위해 2004년부터 인터넷신문 <평화뉴스>(www.pn.or.kr)를 운영하고 있다.


글.사진 한겨레 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2006.6.16)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