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한포, 김치 한통이라도...”

평화뉴스
  • 입력 2006.07.1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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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고백 10]
K사회복지사...“클라이언트에게 너무 실망하지 맙시다”

몇 년전 후배 사회복지사들과 상대하기 어려운 클라이언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후원물품을 받지 못할 경우 복지관을 찾아와서 눈물로 호소하다가 급기야는 큰 소리를 내며 항의하는 재가복지서비스 대상자를 사회복지사들은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저 역시 갖고 있습니다.

복지관이 위치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는 소문이 쉽게 나는 데다 특히 겨울 김장김치를 나눠 줄 때, 쌀 등 주요 생필품을 다량으로 후원 받아 나누어 줄 때 특히 이런 상황은 피할 수 없곤 합니다.

여기에 대처하는 사회복지사들의 대응방법도 매우 다양합니다.
아예 인적이 드문 늦은 밤 혹은 새벽을 이용하여 후원물품을 몰래 전달하는 기가 막힌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알고 왔는지 결국은 후원물품 지원에 민감한 지역주민들의 레이더에 걸리고야 맙니다.
받지 못한 분들은 "왜 나에게는 지원되지 않느냐", "이 아파트에 내가 안 받으면 누가 받느냐" 혹은 "동사무소에서는 주던데 복지관에서는 와 안 주노" 하시며 꼬치꼬치 따지다가 사회복지사가 설득을 할라 치면 "여기 책임자가 누구냐, 높은 사람 만나서 이야기 할란다"시며 사무실을 쓰윽 한번 둘러 본 후 부장님 책상 쪽으로 혹은 관장실로 갑니다.

그리고 드물지 않게 후원물품의 여분이 있을 경우 그 분에게 지급하라는 상급자의 지시가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재가복지담당 사회복지사들은 이런 경우를 막기 위해서 후원물품 선정 기준표를 통해 대상자를 선정합니다만, 이럴 경우 허탈해집니다. "도대체 이렇게 하려면 왜 선정 기준표를 만들었냐"고 감정이 폭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돕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클라이언트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하며, 때로는 사회복지를 직업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 약간은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회복지사들은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을 영원히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복지사가 아무리 많은 자원을 개발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구조를 살펴 볼 때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이러한 상황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른 이야기를 하나 소개합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둔 과거의 상계동 강제철거현장으로 돌아가 봅니다.

참고로 당시 상계동철거민들은 어려운 사람들의 인정이 살아 있는 공동체였으며, 대정부 투쟁을 통해 결속력이 특히 강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상계동 철거현장에서 대학생으로 반대운동에 함께 했으며 지금은 독립영화를 만드는 김동원 감독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상계동에서 한참 싸움이 절정일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을 봤다. 옷가지가 들어오면 같이 모여 나누어야 할텐데 몰래 먼저 좋은 걸 빼 간다든지, 라면 들어온 걸 누가 하나 더 가져갔네 해서 싸움이 나고, 그런 다툼으로 회의가 개판이 되고 그랬다. 내가 잘못 판단했나 잘못 믿었나 하는 좌절감이 들었다. 그런 고민을 내가 소속한 천주교 도시빈민회 신부님들에게 털어놓으니 그러더라. 그런 모습들이 비굴하고 추악하게 보이겠지만 중산층이나 부자들은 사기를 친다거나 도둑질을 하는 것도 점잖은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안 드러날 뿐이다. 그런 면은 사람한텐 다 있는 거다. 차라리 솔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면이 누구에게나 잠재해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어린 아들을 둔 나도 만약 복지관에 후원물품이 많이 들어 왔다면 특히 그것이 멋진 장난감이라면 마음 한 구석에는 "월급도 적게 받는데, 우리 아들 장난감도 제대로 못 사주는데, 하나쯤......"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 것입니다. 참 부끄러운 이야기지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취약한 분들에게는 쌀 한 포, 김치 한 통이 이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치열한 생존 투쟁의 차원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후배 사회복지사들에게 이렇게 당부하곤 합니다.
“우리 클라이언트에게 너무 실망하지 맙시다.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이를테면 선정기준표-을 만들고 더 향상시키는 노력과 더불어 그때마다의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주민들의 긍정적인 힘을 믿고 인내를 갖고 기다리며, 주민들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봅시다. 희망은 주민들과 함께 할 때 찾을 수 있습니다.”



대구 K사회복지사(사회복지현장 10년)




※ [사회복지사의 고백]은 <평화뉴스>와 우리복지시민연합(www.wooriwelfare.org)이 공동연재 합니다.
(이 글은, 2006년 6월 1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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