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노숙인, 어떻게 살고 있을까...”

평화뉴스
  • 입력 2006.07.2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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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의 고백 11] 서울 K사회복지사...
“자신을 성찰하면서 먼저 그들에게 다가 설 수 있어야”


2000.5.18일자로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하 기초법)이 시행되기 얼마 전 서울에서 영구임대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의 동사무소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비슷한 여건의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동사무소의 사회복지 업무는 공공부조의 최일선 행정기관이라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

내가 주로 하고 있는 일은 “기초법”을 토대로 최저생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최저생계 이하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실직자, 독거노인, 모자가정, 저소득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등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처음 동사무소에 배치 받고 어리둥절해 하던 때를 기억한다.
클라이언트들이 찾아와 정부지원금을 높여 달라고 호소하는 모습, 진지하게 상담하는 선배들의 표정 하나 하나가 그려진다. 짧지 않은 6년간의 시간을 풀어 보려니 참 많은 일들을 겪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생활고를 비관한 장애인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투신한 일, 술을 밥 먹듯이 하고 정신병원을 자기 집 드나들 듯 한 사람이 11층에서 술을 먹고 베란다 빨래줄에 매달려 자살 소동을 벌이다 119 대원들에게 가까스로 제지되어 병원에 실려간 일도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업무를 보고 있는 내 책상 앞에 버젓이 나타났을 때는 순간 놀라서 말문이 막혔었다.

어떤 때는 멱살을 잡힌 적도 있고, 술 취한 수급자가 주먹을 휘둘러 맞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모면하기도 하고, 술만 먹으면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전화를 해서 걸지게 욕을 하던 아주머니와 함께 어느 날 직원 몇 명과 파출소까지 동행하게 되어 진술서를 작성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말에 모두들 주저하다가 그만 두었던 일도 있었다.

발령받고 얼마 안 되어서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다가 심한 욕을 듣고는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집에 가서도 분에 못 이겨 내가 하는 일에 회의를 느끼곤 했다. 다음날 출근하기 조차 쉽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는 전에 근무하던 곳에서 부인이 가출하고 어린자녀 셋을 키우던 수급자가 분신을 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그 사람은 내가 직접 생활실태를 조사하고 수급자 선정을 했던 사람으로 평소에도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하여 마음이 더 쓰렸다. 심약하고 늘 고달픈 얼굴을 하고 있었고, 억지 삶을 사는 것처럼 하더니 어린 자녀들을 두고 결국은 절망에 못 이겨 이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다.

2005년도에는 우연하게 10월말부터 12월까지 “○○복지재단”에서 노숙인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거리노숙인 상담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2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2주에 1번씩 퇴근 후에 2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욕구를 들어주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역할을 했다. 가끔씩 기차역에서 오다 가다 부딪쳤던 사람들과 직접적인 대면을 하자니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조금은 걱정되고 한편으로는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고민이었다. 내가 직접 만나본 노숙인들은 따뜻하고 안락한 쉼터나 안정된 직장에 대한 욕구보다는 하루를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램들이 더 강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 중에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형제 노숙인이 있었다.
30살의 동생,그보다 10살 많은 형, 둘은 전라도 어디쯤에서 일찍 어머님은 가출하고 아버님도 돌아가신 뒤 친척집에 잠시 있다가 공사판을 전전했으며 결국 서울역 지하통로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형은 서울에 올라와 교통사고를 당한 뒤 망막파열로 시력을 점점 잃어 실명 위기에 처해 있었다.

노숙인 지원센타에 진료의뢰서를 발부 받게 하여 시립병원에서 응급 수술을 했고 그 뒤 영등포에 있는 임시 쉼터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어디론가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들은 지금 노숙을 탈피했을까? 내 근무처 전화번호를 알려줬는데 연락이 없다. 지속적으로 지지를 못해 준 것이 못내 아쉽다. 부디 잘 살아줬으면...

나의 고백은 여기까지다. 고백이라기 보다는 경험담을 늘어 놓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특히 내가 몸 담고 있는 공공복지 영역은 여러 가지로 부족한 곳 투성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복지 시스템의 부재, 열악한 정부예산 지원, 전달체계의 허술함 등등 아직 개선해야 할 과제들이 많기만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때론 지치고 힘들 때도 있고 자신의 부족함에 한계를 느낀 적도 많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겨 본 적도 없다. 다만 함께 더불어 사는 이 세상에서 조금은 사람들에게 행복해 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역할을 정말로 해보고 싶다. 복지친화적인 사고로 자신을 가다듬고 성찰하면서 내가 먼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 설 수 있도록...



서울 K사회복지사(사회복지현장 6년)




※ [사회복지사의 고백]은 <평화뉴스>와 우리복지시민연합(www.wooriwelfare.org)이 공동연재 합니다.
(이 글은, 2006년 7월 1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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