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난 후, 요즘 많이 거론되는 얘기중의 하나가 우리사회의 보혁갈등의 대립과 그로 인한 국론분열이다. 소위 보수와 혁신,개혁 세력간의 갈등이라는 거다.
그러나, 정작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지에 대해서 합의된 바는 없다. 다만, 양측 모두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지하는 듯하고, ‘보수안정과 변화개혁’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그래서, 대충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세력’은 진보이고, 우리 사회가 보여준 ‘성장중심의 자본주의체제’를 옹호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보수라고 하는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혁구도가 공개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대선후보 선거전략이 짜지는 과정에서 소위 “보혁대결” “세대대결”“지역대결” 등이 회자되면서였다. 특히 한나라당측에서, 급하고 불안한 세력과, 안정적이고 합리적이며 경험과 경륜이 있는 세력으로 구분하면서 지지층을 얻기위한 한 전략으로 보혁대결을 부각시키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보면 보수와 혁신 개혁이라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그러나 우리나라의 여론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혁신 개혁’이라는 진보 노선이, 정작 내용적으로 어떤 개혁이었는지에 대한 질문과 검증도 있기 전에 무조건 ‘빨갱이‘ 이미지로 채색되어 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이라는 민족상잔의 비극과 그 아물지 않은 역사적 상흔속에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역사적 운명속에서, 또 생존을 위해 전국민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체제속에서 한국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평은 우편향으로 치우쳐져 온 것이 우리 현대사의 이념적 판도였다.
우리사회의 개혁세력...“‘좌’라기 보다는, 사회 병폐를 없애고자 하는 시민세력의 성장체”
탄핵안에 대한 반대 여론...“대국민 책임성을 잃은 국회에 대한 ‘시민적 불복종’”
80년대 말 권위주의적 정권이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민주적인 정권으로 바뀌어가면서 그동안 응축된 사회문제가 곳곳에서 분출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한 대안모색도 다각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분배, 노동, 복지, 여성, 장애인 등이 거론되고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의 현주소에 대한 반성적 시각도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왜곡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선거과정에서의 정경유착, 중요한 잇슈의 왜곡, 풀뿌리정치의 퇴화, 이익집단의 거대조직화 등이 사회문제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또 재작년엔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살사건이 터지면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의 요구와 함께 자율적인 정치단위로서의 한미관계와 실질적 주권에 대한 요구들이 터지기도 하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나라 개혁세력이 제기한 주요한 흐름이었다.
그 주장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개혁세력은 ‘좌’라고 보다는 대의미주주의의 실행과정에서 나타난 병폐들을 없애고자 하는 ‘시민세력의 성장체’로 보여진다. 이번 탄핵안 반대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국회가 대국민 책임성을 상실한 부분에 대한 국민들의 ‘시민적 불복종’이라고 이해된다.
물론 서구적 의미의 좌파 우파세력을 그대로 견주어 우리사회의 정치적 지평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리사회는 성장보다는 노동에 아직은 많은 가치를 두고 사회정의를 얘기하는 서구의 좌파와는 달리, 한국의 진보세력은 그 지향점이 대의민주주의의 토착화에 놓여있다고 필자는 보고 싶다.
“민주주의는 좌우의 날개로 지탱된다”...서로 인정하는 가운데 비판과 경쟁
“‘좌’다 ‘우’다 편가르기 보다, 직면한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전망과 대안을 찾아야”
독일의 국회에는 독일을 상징하는 대형의 독수리상이 걸려있다. 그러나 이 독수리상은 약간 날개가 기울어진 비대칭의 불균형을 보여준다. 이 독수리상이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는 좌우의 날개로 지탱된다는 것이다. 즉, 좌의 사상과 우의 사상이 서로 상생하면서 민주주의가 지탱해 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때때로 우쪽으로 기울수도 있고 혹은 좌측으로 기울수도 있지만 상호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건강한 경쟁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의 개혁세력은 아직은 서구적 의미의 좌파는 아니다. 오히려 중도시민세력의 성장체일 뿐이다. 단지 전쟁과 군사독재 또 민족분단이라 구조적 여건속에서 지배적 신념이 된 우편향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오히려 중도세력을 좌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우파세력 중 다른 이념적인 지향을 허용하지 못하는 극우와 우익의 존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약간의 좌파적인 성향도 인정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복잡다단한 계층을 대변하고 다양한 사상의 자유속에서 민주주의는 꽃핀다. 아직은 우리의 이념적 편식이 지배적이지만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를 꿈꾸면서 관용과 타협의 상생의 정치를 만들어보자. 좌다 우다 편가르기를 할 것이 아니라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다양하고 합리적인 전망을 모색하면서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가자.
국론분열로 가지 않도록 이번에는 제대로 된 미래의 전망을 세우자. 그리고 만약 그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그동안의 이념적 틀로 채색한 자신의 몰지각, 순응, 타협의 궤적을 반성하고 시작하자...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리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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