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에 핀 들꽃처럼..."

평화뉴스
  • 입력 2006.10.2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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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 이용호의 만만사] 대구경북 인터넷신문 평화뉴스 유지웅 편집장



'고백시리즈'로 대안언론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유지웅(37) 평화뉴스 편집장. 공교롭게 그를 만나러 간 날(9일), 북 핵실험 보도로 나라가 떠들썩 했다. 인터뷰의 반이 북핵관련 '좌담'이 됐을 정도로 그날의 기억이 뚜렷하다.

정확히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 온 언론인으로서 몇몇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군대에서 불침번을 서는 날엔 빨간 백열등 밑에서 육군수첩에 하루를 기록했고, 술에 '떡이 된' 날도 '일기행진'은 한번도 쉰 적이 없단다. 유년시절부터 항상 고민을 달고 살았다는 유 편집장.

"가끔 그 일기장을 들춰 봅니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았는지, 세상의 고민은 다 짊어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럼, 가장 행복했던 날을 어떤 날로 기록되어 있는지요?"
"음... 아마도 지금의 제 집사람한테 프로포즈 한 날일 겁니다. 그리고 방송기자로 입사했을 때. 세번째가 평화뉴스 창간 했을 때... 대략 그 정도죠."

9년 전 모 종교방송사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개국 멤버였다. 안정된 월급에 그의 말대로라면 '마지막 성역'이라는 틀 안에서 남부럽지 않은 인생설계를 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사표를 던졌다. 기자인 아내의 극구 반대에도 "딱 1년만 해볼께, 딱 1년!". 그렇게 그는 황무지에 평화의 씨앗을 심었다.

"말도 마세요. 더구나 이 바닥 현실을 누구보다 더 잘아는 '기자 아내'를 둔 덕에 무지하게 애 먹었어요. 2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한 설득'은 안 된 상황입니다. 그냥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는데...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왜 그런 힘든 길을 택했을까?
"뉴스보도에서 종교적 가치가 우선될 때 보도의 한계를 느끼곤 했었어요. 문제도 분명히 있구요. 그러다 보니 현안에 대한 심층보도가 어렵더군요. 또 한 가지. 닫혀있는 지역사회의 새로운 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정치적 가치관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작은 틈의 필요성을 느꼈던거죠."

그 일환으로 창간 초기 '기자들의 고백'이란 화두를 던짐으로써 지역언론에 반향을 일으켰다. 대구경북 언론사 기자 40명의 '고해성사'를 연재했다. 2002년 대구지하철참사를 계기로 모이게 된 '대구젊은기자 모임'의 동료들의 도움도 컸다고.

"본인의 반성만이 아니라 언론의 반성이었죠. 그만큼 외부에서의 압력도 거셌어요. '너희들만 순수하고 깨끗하냐'라는 항의죠. 그러나 오탈자 이외엔 손댈 수 없었어요."

이후 '교사들의 고백'을 연재했고, 현재는 '사회복지사의 고백'을 연재 중이다.

테이블 옆에 눈길을 끄는 안내판이 보였다. '전교조, 교육개혁에 걸림돌인가?' 글귀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9월29일에 있었던 '작은 토론회'의 시작이다. 거대 담론이 아닌, 또한 극단적 비판이 아닌 서로의 허심탄회한 속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려는 유 편집장의 새로운 시도다. 앞으로 두달에 한번씩 지역사회의 현안과 의제를 중심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내고 싶다고.

"교사들 역시 개혁의 주체임이 분명하죠. 민감한 주제지만, 골수 '좌측 사람', '우측 사람'이 아닌, 적어도 서로의 좌우를 쳐다보려 하는 패널들의 토론을 듣다보면 희망이 보이더군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법대를 졸업했다. 89학번이다. 교지편집위원회 기자출신이다. 전경들한테 돌멩이도 꽤 던졌다고. 법을 '편식'했던 유 편집장. 국가보안법, 집시법 등 '악법'들만 공부했단다.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고.

"제 짧은 견해지만, 법이 논란의 소지가 되거나 해석이 모호할 때, 그 법은 최하 '개정'입니다. 국가보안법이 그 대표적인 예죠."

'87년 체제의 껍데기를 벗어 던져야 한다'는 그. 386과 진보언론, 노동계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포스코 사태'에 대한 미디어오늘의 보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미디어오늘은 민주노총 기관지가 절대 아니며, 아니기를 바랍니다. 진심입니다."

평화뉴스의 '매체비평'은 그런 취지 하에 시작됐다. 지난해 3월이다. 현직 기자 7명으로 구성된 '매체비평팀'은 매주 모여 지역일간지에 '메스'를 든다. 보수성향의 기자, 진보성향의 기자들이 모였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 '언론의 정도를 가자'라는...

팀원 기자의 기사마저 메스를 피해갈 순 없다.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다보니 "뭘 제대로 알고 쓴거냐?", "우리 회사 기자가 그 팀에 있느냐?"라는 항의에도 전혀 굽힘이 없다. '매체비평'의 예리함은 지역일간지에겐 아픔이다.

1년만 하기로 했던 게 벌써 2년 8개월이 넘었다. 테이블 유리 밑엔 250여명의 후원인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매달 그들의 5000원, 1만원이 지금의 평화뉴스를 만들었다. 광고에 안절부절 못할 일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없을 것 이라는 그. 대안언론이라면 경영방식도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토론회 하면 돈 많이 들 것 같죠? 패널들 섭외비, 공간대여비 등등... 근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성만 있다면 없는대로 되더군요."

가치, 명예, 돈 중에 '돈'을 버린 지 이미 오래란다. 가늘고 길게 평화뉴스와 함께 하겠단다. '절대 망할 수가 없는 매체'라며 씨익 웃음을 짓는다.

가슴아픈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힘들거나 아쉬운 게 있다면요?"
"솔직히 없다면 거짓말이죠. 하나 말씀드리자면 사이트개편 비용이 없어 창간 당시의 인터넷 지면을 아직도 개편하지 못하고 있는 거, 그거 하납니다."

'평화와 통일', '나눔과 섬김', '지역공동체'. 바로 평화뉴스가 내건 기치다. 평화 없는 통일, 통일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유 편집장.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최우선적인 행복의 가치가 바로 '평화' 란다.

황무지에 핀 들꽃이라 했는가? 그는 이렇게 들꽃향기를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글.그림 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 이용호 연재작가(200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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