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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 그래서 떠났습니다”
[사회복지사의 고백]
이창열...“나를 억누른 정체됨.관료화, 불안한 고용..”
2006년 11월 07일 (화) 16:05:36 평화뉴스 pnnews@pn.or.kr

   
난 처음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기도 전에 종합사회복지관이란 곳에 사회복지사로 취업을 하였다. 졸업식날 희비가 엇갈리는 졸업 동기생들 사이에서 난 약간의 우쭐함과 부모님에 대한 당당함으로 졸업식장을 누비벼 사진을 열심히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새 사회복지사로서 사회복지관에서 일을 한지 10년째가 되었고, 3일간의 고심 끝에 더이상의 고민 없이 새로운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학부 4년, 종합사회복지관에서 5년, 노인복지관에서 5년, 석사과정 3년.....
사회복지사가 나의 천직으로 생각했고, 주위의 누구도 내가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팎으로 봐도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래서, 준비도 열심히 했다. 열심히 일 하고 다양한 경험도 하고, 야간 대학원도 다니면서 MBTI 일반강사 자격까지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 사회복지계에선 짧지 않은 필드 경력이다.
그리고 어느 분야에서나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의욕과 업무역량을 인정받는 시기가 이때 쯤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의아함 속에서, 특히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내가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 건 한마디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음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정을 하기까지의 시간은 쉽지 않았다. 사람에겐 누구나 ‘결정적 계기’와 ‘장기적으로 누적된 계기’가 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난 처음부터 내가 시작한 동기와 그동안 해 왔던 많은 일들(자랑하고 싶은 것, 실수하여 숨기고 싶은 것)을 되짚어 보게 되었고, 그동안 바쁘고 여유가 없어서 돌아보지 못했던 나 개인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면서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장기적으로 누적된 계기는 사회복지사들의 삶은 한마디로 고단하다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는 요구되어 지는 능력이 많다. 가장 기본적으로 샐러리맨이다. 거기다 자칭 전문가, 자원활동가, 연구자, 학습자, 기획자, 관리자로서 요구 받았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다양한 활동에 대한 요구들을 스스로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것이고, 그러다 보니 사회복지관의 일 외에는 거의 경험이 없는 ‘우물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떠나온 지금 더 많이 실감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많은 조직의 특성상 남성성이 많이 발휘되기 어려웠던 점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너무 추상적이며 비개념적이지만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결정적 계기는 나의 남은 인생을 걸어볼 만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난 운이 좋은 놈인 것이 틀림없다. 누구에게나 3번의 기회는 찾아온다고 하니 준비하면서 기다려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사 다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사회복지계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이상이 깨어지면서 받은 상처는 또 하나의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고 본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조직의 정체됨과 관료화 되어 가는 모습, 정치력, 불안한 고용구조 등이 나를 억눌러 왔다.

고용구조에 대해서는 사회복지사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민간기관도 아닌 것이 공공기관도 아닌 것이 애매한 체계 속에서 박쥐처럼 상황에 따라 편승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너무 짜증스러웠다. 3년마다 재 위탁, 수시로 이루어지는 지자체의 시비성 관리감독, 경쟁을 통한 성장이라는 미명의 평가제도는 언제나 고용의 불안과 심리적 스트레스로 다가 온다. 특히 고급 관리자가 될수록 그 무게는 더할 것이며, 더 심화되면 되었지 별로 개선될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에선 그런 시스템을 더욱 충실히 따라 줌으로서 실무자들에게 스트레스를 더하고 있었다. 지금은 피해 버린 입장이라 할 말은 없지만, 참으로 답답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처우의 개선이 현실화 되지 않았다.
내 개인이 처한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사회복지사로서 제일 궁금해 하면서 줏대없이 한 일이 한 가지 있다. 대학원을 간 일이다.
내가 왜 공부해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석사자격이 필요해 공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내 정도의 경력이면 석사자격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 것이다. 참 바보 같았지만 난 아무 생각없이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지금은 그것이 왜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난 그 시간과 비용이 아깝지 않고 기꺼이 학비대출금을 갚아 나가고 있다.

사회복지는 실천학문이다. 그러니까 학교에서는 가벼운 이론과 SKILL을 많이 가르친다.
그래서 난 소시 적에 MBTI에 홀딱 빠져서 거금을 들여 일반강사 자격까지 2년간이나 투자하여 공부하였다.
그 공부가 끝날 때쯤 나에겐 또 다른 지적 욕구가 꿈틀 거렸다. SKILL은 유행을 타는 것이고, 깊이가 부족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낡은 것 같아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래서 다들 현장에서 3~4년 정도 지나면 뭔가 허전하여 대학원을 가고 싶어 하지만, 막상 다녀본 대학원에서는 학부때 보다 더 배울 것이 없다. 그냥 계속 공부 중이라는 심리적 위로가 다 일뿐이었다.

그래서 난 사회복지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그 기본 바탕이 튼튼하면, 그 위에 실천기술은 얼마든지 새롭게 쌓으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들을 위해 철학 강좌가 생겨나길 개인적으로 고대해 본다. 이런 사회복지계의 학력 인플레이션 현상은 참 아이러니한 현상중의 하나였다. 우리사회가 학벌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정리해 두지만, 사회복지사들에게는 ‘박사’란 바람이 또 한번 불어오고 있는 것 같다.

결혼 전 난 지금의 가족과 약속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결혼기념일에 가족 여행을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하고 8년동안 결혼기념일에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로 한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모든 게 핑계라고 대충 넘어갈 수 있지만, 적어도 난 그것이 핑계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성실한 편이며, 배려심이 많고 사람을 사랑할 줄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8년동안 한 번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드디어 난 9년 만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철학에 대한 책을 한권 읽고 있다.
새로운 직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완전히 생소한 분야에서 신입시절의 기분으로 청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난 10년동안 사회복지현장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일반 조직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은 일을 잘 하는 편에 속하는 것 같다. 혹시 고민하는 사회복지사가 있다면 자신감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신념으로 삼고 있는 경구로 끝을 맺고자 한다. 「거짓없이 깨끗한 마음을 가져야 밝은 뜻을 펼 수 있고,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을 가져야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


   

[사회복지사의 고백 15]
이창열(대구. 前 사회복지사. 사업)





※ [사회복지사의 고백]은 <평화뉴스>와 우리복지시민연합(www.wooriwelfare.org)이 공동연재 합니다.

(이 글은, 2006년 10월 24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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