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명 한국정치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랫동안 매서운 권력을 휘둘러온 사람들이 휘청거리며 여의도 자리를 맴돌고 있다. 국민심판을 받기에 부끄러워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탄핵이후 불어닥친 회오리바람으로 날려갈까봐 어정쩡한 자리잡기를 하느라고 그런 것 같다.. 기존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와 분노, 당리당략에 눈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철퇴가 겁나기는 하는가 보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철퇴가 철퇴로 보이는지 의문이다. 워낙 그들은 소위 “국민의 뜻”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여준 “국민의 뜻”은 대통령탄핵을 보는 국민여론이기도 했으며 국민들의 정치개혁에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그 작은 촛불로 구태의연한 정치, 낡은 틀의 정치를 바꿔야 한다고 국민들은 힘모아 말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기들 입장대로 이 촛불시위를 해석했다. 순수하고 다양한 여론광장이 정략적인 정치판으로 해석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국민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한 정치권이라는 비판속에서 기존의 정치판도는 균열되기 시작했으며 기성정치인들은 새 틀에 새정치를 하겠다고 나섰다.
새 판을 짠다는 정치권...“그러나,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이는 모습은 겉으로도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다. 분명 새사람으로 충원되었다고는 하나, 돈정치혐의로 탈락된 공천자가 버젓이 공천되고 선거법 위반자도 많고 과거 행적으로 보기에 깨끗한 정치를 할 사람으로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정치쇼에 대한 의구심도 없어지질 않고 끼워맞추기식 공천도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정당의 정체성문제이다. 어떻게 새판을 짜겠다고 하는 것인지 그 비젼과 정책이 정당간에 뚜렷이 읽혀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안보인다. 지역주의타파, 개혁, 깨끗한 정치, 국민소득 2만불, 민생살피기 등은 기회만 되면 누구 입에서든 나온다. 많이 외쳐지는 구호이지만 구체적으로 어찌하겠다는 건지, 정책의 구체적 차별성이 잘 안보인다. 긴 안목의 원대한 계획과 구체적 정강정책이 잘 안보인다는 얘기다. 그저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른 편가르기만 보인다..
정치인들은 이번에 새판을 짜잔다. 그렇다, 이번 선거에 냉혹하게 심판하자. 그러나 목전의 싸움에 휘둘리지는 말자. 길게 보자는 얘기다. 노무현정권이 그동안 보여준 교육, 환경, 외교, 통일, 노사관계 등에서의 긴 안목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하는 것은 이미 경험해 왔다. 그동안 국회는 일시적이고 일방적인 싸움에 몰두해왔지, 미래의 장기적 전망속에서 정책적인 싸움은 잘 해오지 못했다.
결국은 유권자, 시민사회의 몫...“삼보일배 같은 희생이 필요하다””
총선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국회의원만을 믿을 수는 없다. 여기에 시민사회의 역할이 있다.
작년의 삼보일배에서 우리는 배웠다. 문규현신부의 삼보일배를 성직자니까 하는 것, 세상모르는 이가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삼보일배적 희생은 생태계와 인간과의 조화에 대한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미래의 장기적 전망을 합리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토양, 그 토양위에 근본적인 합의를 일궈내도록 하는 토양을 이 시민사회에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최선을 택하되, 긴 호흡으로 지치지 말고 가자, 아직도 많은 삼보일배같은 희생이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에 필요한 세상이다.
김재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방송인.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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