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기사 1면, '파격'과 '오버'(07.2.27)

평화뉴스
  • 입력 2007.03.0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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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 대구일보 '영문기사+자랑'
...독자 보다 실사단에게만 잘 보이면 된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실사가 시작된 지난 22일부터 대구지역신문들은 실사단의 행보를 주요면에 비중있게 다뤘다. 실사단이 머문 3일간 대부분의 지역신문은 실사단과 관련된 기사를 1면톱으로 올리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대구유치에 힘을 실어주었다.

특히 대구일보는 실사단이 방문한 첫날부터 3일간 아예 1면톱 기사를 영문으로 제작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실사단이 방문한 지난 22일부터 'Welcome to Daegu! IAAF EVALUATION TEAM'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23일자 ‘Outstanding', 24일자 ’2001 IAAF World Athletics Championships in Daegu!'라는 제목으로 1면 톱기사를 영문으로 올렸다. 말 그대로 ‘파격’이다.

대구일보 2월 23일자 1면
대구일보 2월 23일자 1면


다만, 대구일보의 ‘영문기사’가 과연 ‘바람직한 파격’이었는지 의문스럽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대구에 반드시 유치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영문기사를 올린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이 독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가장 큰 원칙이 이 영문기사에는 빠져있다. 독자의 정서와 요구를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 이성적 판단과 성찰에서 비롯된 정보를 가장 알기 쉽고 명쾌하게 전달해야 하는 것이 1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일보의 영문기사에는 그러한 고려가 잘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읽거나 말거나 오직 실사단에게 잘 보이면 된다’는 식이다.

특히, 22일자 1면의 경우, 영문기사와 번역에 해당하는 한글 기사를 쓴 기자가 다르다. 같은 내용의 기사를 2명이 각각 영문과 한글로 나눠 쓴 셈이다. 23일자 1면에는 번역내용을 찾을 수 없다. 다음 날 24일자 1면에는 ‘번역5면’이라고 알렸다. 영문기사를 싣더라도 바로 옆이나 아래, 적어도 같은 지면에는 번역문을 싣는 게 맞지 않을까.

영문기사를 아침에 받아든 독자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영문기사를 읽어야 하는 수고스러움도 만만치 않지만 ‘실사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도 든다. 주는 것과 원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구일보의 영문기사는 그 ‘불일치의 면적’이 크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공급자가 수요자를 무시하고 ‘오버’한 셈이다.

‘대구일보의 오버’는 23일자에도 보인다. 이날 이 신문 1면에는 ‘ooo기자 단독인터뷰’라는 부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이 기사의 요지는, 대구일보의 A기자가 대구공항에 도착한 디겔 부회장을 ‘통역없이 단독인터뷰’를 했다는 것이 주요 팩트다. 일반적으로 ‘단독 인터뷰’라고 할 때는 그 만한 비중있는 내용을 싣게 마련인데, 이 기사에는 ‘통역없이 단독인터뷰’한 사실만 부각될 뿐이다. 게다가, ‘인터뷰’한 기자가 아닌 또 다른 기자가 ‘인터뷰 했다’는 내용을 기사로 썼다. 때문에, 과연 이 기사를 1면에 올릴만큼 뉴스 가치가 있는 지 생각해 볼 문제다.

대구일보 2월 26일자 3면(뉴스 in 뉴스)
대구일보 2월 26일자 3면(뉴스 in 뉴스)
신문에서 1면은 그날 하루치 컨텐츠 중 가장 핵심만을 골라 전시하는 ‘정보의 쇼윈도’이다. 즉 독자의 요구에 가장 공감가는 알짜만을 골라 좌판을 벌여놓은 것이 1면이다.

그런 기본적인 관점에서 볼 때 과연 ‘OOO기자 통역없이 단독인터뷰’가 1면에 실린 만한 기사인지 의문스럽다. 이 기사는 마치 ‘대구일보에는 통역없이 인터뷰가 가능한 영어 잘하는 기자가 있다’고 자랑하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자화자찬'식 기사는 또 있다.
대구일보는 26일자 3면 하단에 ‘대구일보 영문제목-기사내용 화제’라는 박스기사를 내놓았다. 대구일보 영문기사가 언론전문지 ‘미디어오늘’에 소개돼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는 소식과 실사단 숙소에 영문기사가 담긴 대구일보가 전달되었다는 소식을 2단 크기로 전하고 있다.

대구일보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성과 일 수 있지만, 무엇으로 독자의 마음을 끌 것인가에 대한 노력보다는 ‘이번에 우리가 한건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수요자인 독자는 없고 공급자의 권위와 오버가 엿보인다.


신문은 엄격한 내부 잣대가 필요하다.
이성적 판단과 소신, 그리고 합리적인 뉴스가치 판단기준이 있어야만 독자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대구일보의 영문기사와 관련된 일부 기사들을 보면서 문제를 냉철하게 살피는 내부의 눈과 잣대가 그 순간에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평화뉴스 매체비평팀>
[평화뉴스 매체비평팀]은, 5개 언론사 7명의 취재.편집기자로 운영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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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과 관련해, 해당 언론사나 기자의 반론, 지역 언론인과 독자의 의견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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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2월 27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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