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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금기 '시장'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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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경제읽기]
"시장의 광기에서 해방되는 출구 '사회적기업'을 위하여"


어느 사회이든 금기(禁忌)라는 것이 있다.
‘건드리면 다쳐’라고 사회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금기가 된다. 금기는 사람들이 대놓고 언급하는 것을 꺼릴 뿐 그 내용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일 경우가 많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발설한 아이는 금기를 깨뜨리는 무모한 역할을 얼떨결에 떠맡은 모양이 되었지만, 기실 금기는 누군가에 의해 그 말이 그냥 뱉어지는 찰나 성역을 벗어나 스스로 속화되어 버리는 속성을 가진다.

유신시대를 살아본 사람이면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대하여 객관화하여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공포를 동반하는지 잘 안다. 그러나 유신시대의 종말과 함께 유신의 정당성을 포함하여 정치적 논의는 빠른 속도로 일상의 토론 거리로 속화되어 버렸다.

대통령이 술자리의 작부처럼 희롱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만큼 그 대반전의 경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한 시대의 광기가 만들어 놓은 금기는 그 광기가 사라지고 말면 저자거리의 한갓 우스개 거리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시장은 무결함의 신격(神格)적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진화하는 세속적 제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금기는 시장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광기가 시장을 성역화하고 있다.
시장에 대한 일체의 비판적 논의가 억압된 채 시장 논리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가치가 되고 있다.
시장 논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 곧바로 반시장주의자로 몰려 혹독한 색깔론의 검증 대상이 된다. 유신 시대에 민주화를 주장하면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사회에서 격리되듯이, 우리 시대에는 시장의 폭력성에 대한 극히 상식적인 문제 제기를 하여도 사회주의자로 몰려 커밍아웃을 강요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시장은 성역화의 대상이 될 만큼 완전하지 않고 또한 절대적인 효율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시장 실패(market failure)는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듯이 시장이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방식은 나라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시장은 하늘에서 떨어진 무결함의 신격(神格)적 실체가 아니라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면서 끊임없이 조직되고 조정되면서 진화하는 세속적 제도이다. 시장은 존재(being)가 아니라 생성(becoming)되는 그 무엇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장을 절대시하여 논의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시장적인 태도임이 드러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경제적 쟁점이 있을 때마다 ‘시장에 맡겨두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사람들의 정체를 살펴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시장에 모두 맡겨두라?"

우리 사회에서 시장이야말로 경제적 활동을 조직하는 방식 가운데 최상의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고루한 경제학자가 아니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다. 경제학자가 시장을 말 할 때 그것은 엄격한 학문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고도로 추상화된 시장을 의미한다. 경제학자가 시장에 대하여 원칙론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대하여 현실을 모르고 떠드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그 자체가 엄연한 진실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에 시장에 맡겨두면 경제는 매우 잘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시장을 내세워 독점적 이익을 챙기려 드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말할 필요도 없이 독점이야말로 시장실패를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시장실패의 원인을 제공하여 시장에서 마땅히 퇴출되어야 할 당사자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두라고 외치는 것만큼 우리시대의 역설과 모순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은 없다.

시장이 성역화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역설과 모순을 은폐하고 위장하기 위함이다.
시장을 성역화하는데 성공한 이들은 시장에 대한 어떠한 비판적 논의도 불온한 것으로 취급할 뿐 아니라 색깔론을 동원하여 그러한 논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린다.


"미국은 FAIR(공정), 영국은 SOCIAL JUSTICE(사회적 정의)...우리의 시장은?"

시장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대안적 상상력조차 억압하려 드는 사람들이 모델로 떠받드는 것은 이른바 앵글로색슨형 자본주의 사회로 알려져 있는 미국과 영국에서 작동되는 시장의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시장은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가 시장을 통해 구현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미국 사회는 다른 어느 사회보다 유독 FAIR(공정)라는 개념을 중시한다. 영국 사회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SOCIAL JUSTICE(사회적 정의)라는 개념에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작동되는 시장은 굳이 따지자면 같은 시장이라고 할지라도 미국은 FAIR MARKET(공정한 시장)을 지향하고 영국은 MARKET FOR SOCIAL JUSTICE(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시장)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시장에서도 예외 없이 관철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공정성을 강조하는 미국에서는 독과점이 철저하게 시장에서 규제된다. 사회적 정의라는 잣대를 중시하는 영국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냉엄한 시장판의 한복판에서도 충분히 관철되도록 노력한다.

미국과 영국의 시장에서 기업의 자율성이 무한정 인정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독점적 시장주의자가 그것을 모범적 사례로 숭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들 나라의 시장은 공정(FAIR)과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라는 사회적 가치에 의해 매우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규율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장은 공정이라는 형용사에 의해 수식되지도 않고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 채 가히 무정부적이라고 할 만한 시장이 작동되고 있다. 승자 독식의 잔혹한 정글의 법칙이 이른바 시장 원리라는 미명에 의해 허용되는 것이 우리나라 시장이다.


대구경북 '사회적 기업 아카데미' 곧 출범..."시장의 광기에서 해방되는 출구를 만들 수 있기를"

시장이 한 사회의 고유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을 때 시장은 비로소 금기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를 위해 경제학자가 논리적 세계에서 건설해 놓은 고도의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시장을 속화라는 통과 의례를 밟도록 해야 한다. ‘정치를 바꾸자’라는 구호보다 ‘시장을 바꾸자’라는 구호가 우리 사회에서 더욱 절실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장을 바꾸자’라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는 시장에 대한 논의와 그 비판적 대안에 대한 상상력을 활성화시켜 우리 사회의 고유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탈바꿈된 시장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에 ‘사회적 기업 아카데미’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기업은 지역 공동체의 고유한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투입요소로 더욱 중요한 것은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보다 지역 공동체가 함께 축적한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기업 아카데미’에서 배출된 사회적 기업 전문가를 통해 지역에 사회적 기업이 성공적으로 창출되면 이는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장의 광기에서 해방되는 출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독점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이 작동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만으로 시장을 둘러싼 금기는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금기로 인해 억압되어 온 시장 기능의 일부를 이제는 사회적 기업으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만들어질 ‘사회적 기업 아카데미’를 통해 지역 사회에서 ‘시장을 바꾸자’라는 구호가 쉽게 통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김영철경제 읽기 10]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철 교수님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계명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과 [대구라운드]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과 내발적 지역경제론](2005), [지역은행의 역할과 발전방안](공저, 2004)과 [자본,제국,이데올로기](공저, 2005)를 비롯한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 글은, 2007년 3월 21일 <평화뉴스> 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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