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쉽지 않다면, 무엇으로 대표될까.
팔공산? 신천의 기적? 동성로? 패션? 섬유? 안경 산업? 컬러 풀? 아니면 오페라? 이제는 뮤지컬? 수성구의 바람?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팔공산이라는 집계가 나왔다고는 했다. 그러나 대구에서 나고 30년을 넘게 자랐어도 아직 모르겠다.
사물에 대한 식별이 가능했던 10대 때와 지금, 많은 것이 변했지만 무엇도 변하지 않은 것 같고, 낯익은 것도 낯설 때가 많은가 하면 낯선 것이 오히려 낯익을 때도 많다. 깊숙이 숨겨져 있는 것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만천하에 드러나 있기도 하고 드러나 있는 것이 되려 숨어있기도 하다.
조립을 해 보자.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나 마지막에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구멍 뚫린 바지도 바지고, 다리가 부서진 로봇도 로봇이다. 그러니 여기저기 부품이 모자라도 윤곽은 보이지 않을까.
그것조차도 실패한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얻게 된다. 2007년의 대구와 4년 뒤의 대구가 어떻게 같고 다를지.
그래서, 먼저 부지런한 수집가, 성실한 관상학자가 되기로 한다. 능숙한 조립공은 ‘우리’이길 바란다.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클 수도 또한 너무나 미세할 수도 있으므로.
2007년 5월 9일 수요일 낮 12시 35분.
5월은 5월이다. 늘 너무나 느리게 흘러가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달성 공원도 5월은 다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복작거리는 공원은 느림과 빠름의 다양한 속도로 생기가 돈다.
병아리 같은 유치원 아이들 삐뚜룸 줄 서서 종종 걸음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소풍 온 중학생 무리는 소풍 가방이 없다. 사자, 호랑이, 곰, 꽃사슴, 공작, 침팬지, 늑대, 물새, 원앙, 물개, 코끼리, 원숭이, 잉어 등이 있는 동물원을 들여다보고 환호하는 이는 아이를 안은 아버지들이다.
꽃사슴을 몇 번이나 보았어도 ‘박정희각하 꽃사슴기증’ 기념석은 처음 본다.
정면 입구 앞 광장의 가운데에는 엄격하게 구획된 화단에 팬지꽃이 피어있고 양쪽으로 조각 좌상처럼 노인들이 앉아 있다. 지그재그로, 시야를 만들며 그렇게 홀로, 홀로.
1. 직업
50은 넘은 게 분명했던 그녀는 160이 안 돼 보이는 키, 동그란 얼굴에 주름과 짙은 화장, 큰 꽃무늬가 그려진 짧은 스커트, 브이자로 깊이 파인 몸에 딱 붙는 반팔 셔츠, 그리고 가장 인상에 남았던 하얀 레이스 양산을 들고 있었다. 그늘아래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던 더운 여름, 그녀는 회화나무 아래 몰려 있던 노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30m도 채 되지 않은 곳에 있었던 나는 이후 그 얼굴을 잊은 적이 없다.
그 사이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녀를 7년이 지난 오늘, 다시 보았다. 치마는 길어지고 주름은 더욱 깊어졌지만 하얀 레이스 양산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대로다. 아직도 나는 그녀의 직업을 모른다.
2. 골목 I
건너편 골목은 여인숙, 여관, 장, 보살집, 이용소,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포장마차들이 있다.
작은 골목 골목에는 세명의 50대 여인이 서성이고 있고 가끔 다방 아가씨와 느림보 승용차가 지나간다. 여인들은 골목을 건너 나드리 다방까지 오고가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거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아직 전을 펴지 않은 “이 포장마차들은 언제 장사 시작하나요?” 물었더니 “보통 4시 반 이후가 되어야 장사를 시작한다”고 분홍색 바지를 입은 50대 아주머니가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나드리 다방 앞에서 또 만났다.
3. 골목 II
블록 내부 골목으로는 대부분이 ‘보살’이라는 이름을 단 점집으로 한 평이 안 되는 작은 공간에서부터 가정집이나 두 평이 넘는 점포 등 다양하다.
‘철학’은 대부분이 남성, ‘보살’은 대부분이 여성으로 ‘보살’님의 경우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4. 정문 앞 담벼락
포장마차의 주인아주머니는 거리를 향해 앵글을 잡는 나에게 화난 목소리로 식별이 어려운 욕설을 퍼붓는다.
그녀의 분노는 무엇을 향한 것이었을까. 두 시간 뒤 그곳을 지나칠 때 그녀는 나른한 오후 햇살을 피해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중간 중간 오토바이도 있다.
달성공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친환경, 건강, 환경보호를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아직은 이곳에서 자전거를 탄 젊은이는 본적이 없다.
담 아래 나머지는 모두 주차장이다.
빈자리가 더 많은 공영주차장으로 한 시간에 2500원. 그 후 10분에 500원이다. 1시간 50분을 주차하면 5000원. 종일 주차 요금도 5000원이다. 어떤 계산법에 의한 것일까.
5. 노인 사교계
사교계는 몇 가지로 분류된다. 주계는 소주/새우깡, 소주/삶은 계란, 막걸리/두부로, 투계는 선수/훈수, 훈수/구경꾼, 좌식 구경꾼/직립 구경꾼, 혼성/단성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분류의 기준은 빈부 차에 있다. 이러한 차이는 점심시간의 식사 형태, 옷차림, 모자, 자전거, 오토바이 등으로도 극명히 드러나며 그러한 차이에 따라 노인 또래집단이 형성된다.
그러나 달성공원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 홀로 노인은 어느 계나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다.
물론 가족단위의 노인은 제외다.
6. 나 홀로 노인
유행, 패션, 연애
어깨 뽕이 들어간 재킷의 여인을 보며.
일대의 사건. 어깨에서 팔뚝으로 물 흐르듯 부드럽게 떨어지는 곡선의 단아한 여인들이 어느 날 어깨를 넓히고 힘을 넣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서둘러 공장이 정비되고 어깨 힘주기 용 뽕 수천 수 만개가 만들어진다. 여인들은 곧 있는 힘껏 동여매던 가슴을 풀어 헤치고 큰 가슴에의 욕망에 사로잡힌다.
공장은 더욱 바삐 기계를 돌려 뽕 브라를 만들어 낸다. 곧 이어 머리카락을 사자처럼 부풀리고 노란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푸른색, 보라색 눈동자를 욕망한다.
어깨 뽕 유행이 지나 간지는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수 천 개의 뽕들이 세상에 나돌고 있다.
유행은 기차처럼 지나간다. 이제는 롤러코스터처럼 지나간다. 그 자리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 개성? 소풍가방 없던 여중생들의 하나같이 똑 같은 사자머리는 기차? 혹은 롤러코스터?
연 핑크색 재킷, 한 벌 세트로 갖추어 입은 연 핑크색의 디스코 배바지. 꽃분홍색 양산의 여인. 완벽한 댓구를 이루는 슬램덩크 캡 모자에 주름 청바지, 군복 조끼의 남자. 최고의 여성스러움과 최고의 남성미로 무장한 연인. 복장은 성과 구체적으로 결탁되어 있으며 여기서 패션은 유지됨과 동시에 유행은 무자비하게 극복된다.
분수가 솟아오르는 잉어장 앞에서 두 번째로 보았을 때 여인의 손에는 중간 크기의 페트 병 사이다가 들려 있었고 각자가 매우 분주하게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얼굴이 마주치면 웃음도 없이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그 얼굴에는 불만의 기미가 가득하다. 모든 것을 극복한 최고의 여성미와 남성미가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의 바로 뒤에 상화 시비가 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싯구를 이름 모를 새 한 마리만이 오래토록 음미하고 있다.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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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5월 1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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