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에서 ‘금융기관 공익성 제고에 관한 법률’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그곳에 진술자로 지목이 되어 국회를 갔다 온 적이 있다. 금융기관의 공익성을 제고시킬 법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설명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금융기관의 공익성에 관한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반대하는 사람도 발언을 하였다. 그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금융기관에 대해 공익성을 요구하는 까짓 촌스러운 일에 왜 국회가 나서 법석이냐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금융기관의 공익성 관련 법률 제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금융기관이 이미 엄청난 액수의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며 법제화 요구를 묵살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대하여 필자를 포함한 찬성론자들은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이 펼치고 있는 사회공헌활동은 영업활동을 통해 번 수익의 사후적 배분에 불과한 것이며, 이는 금융기관의 공익성과는 별개의 개념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중점적으로 강조하였다. 찬성론자들은 금융기관이 수익성을 추구하되 금융기관의 고유한 영업활동 과정에서 공익적 활동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금융기관의 수익성, 서민의 금융경색..."한쪽은 넘쳐서 문제, 다른 한쪽은 부족해서 난리"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금융기관이 돈을 버는 영업활동 가운데 사전적으로 공익적 목적을 달성할 프로그램을 도입하여야 하는 것이 찬성론자의 입장인 반면, 반대론자는 금융기관이 어떻게 돈을 벌든 상관없이 사후적으로 번 돈을 공익적 목적으로 잘 활용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반대론자는 금융기관이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자’는 기조를 용인하고 있다면, 찬성론자는 금융기관의 특수성을 들어 그렇게 하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외국계 자본이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 시중은행은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명분하에서 소비자 금융을 크게 확대시켰다. 단기적 영업성과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주주 자본주의의 행동주의가 이러한 방향으로의 진전을 부추겼다.
시중은행의 무분별한 가계대출 증대는 2002년의 카드 대란과 최근의 2006년의 부동산 열풍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반면에, 지역의 중소기업과 담보능력이 없는 가난한 서민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심각한 금융경색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한쪽은 넘쳐서 문제이고 다른 한쪽은 부족해서 난리인 이중구조가 현실화된 것이다.
금융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서민들이 고금리의 대부업체를 이용하게 됨에 따라 최근 들어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돌출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수익성 제고를 위주로 영업활동을 한 금융기관의 수익성은 크게 향상되었다. 최근 우리나라 시중은행의 수익성 지표는 미국과 유사한 정도로 개선되었으며, 금융기관 종사자들은 가히 ‘신의 직장’이라 할 만큼 높은 급여수준을 보장받고 있다.
금융기관의 공익성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 다양한 금융서비스 수요 계층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또한 금융과 경제의 거시경제적 정합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돈벌이를 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사적 금융기관에 공익성 운운하면서 영업활동에 간섭을 하는 것이 세계화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촌스러운 발상에 불과한 것인지가 논쟁의 중심이다.
헤지펀드 운용자 '소로스'..."투기꾼이 돈을 번다는 건 규칙이 잘못됐다는 증거"
금융기관의 공익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를 여기에서 반복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서 줄인다. 다만 거의 같은 맥락의 논의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소로스'라고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헤지펀드 운용자의 입을 통해 매우 진지하게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소로스는 그 스스로가 ‘자본주의의 악마’인가 혹은 ‘세계적인 박애주의자’인가에 대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인물이다.
소로스는 교활한 방식의 외환투기 수법을 활용하는 등 세계금융자본주의 허점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은 매우 검약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 금융시장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그는 현대판 ‘카네기’로 불리기도 한다.
소로스는 그가 돈을 번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이익을 얻기 위해 환투기를 한다. 그것은 더 큰 선(善)을 행하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경쟁자와 규칙 제정자로서의 행동은 별개다. 경쟁자로서 규칙 안에서 돈을 많이 번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투기꾼이 돈을 번다는 것은 규칙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나는 자본주의 시장 규칙의 변경을 옹호한다.”
그리고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장에서 경쟁자로서의 역할과 시민 및 규칙 제정자로서의 역할은 구분해야 한다. 시장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집단적인 이익에 대해서는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그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점차 불안정하고 부당해지도록 방치하는 셈이 된다.”
소로스의 말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자본주의 시장은 크게 잘못되었다. 그 시장의 허점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자신에 대해서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 시장은 크게 잘못되었다. 이러한 자본주의 시장은 공익적 이익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소로스가 보인 행동의 전력에 비추어보아 이러한 논법을 전개하고 있는 그에 대하여 완전히 수긍할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자본주의 시장이 공익성 제고를 위해서 개혁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한 것은 누구보다도 소로스 그 자신이 주장하고 있기에 그 말의 정당성과 진정성이 확고히 담보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자본주의 천박함은 '시장의 결함'에 대한 성찰성의 부족에서 비롯"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자’라는 말에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우리나라의 시장주의자와 세계화론자들은 소로스의 말을 다시 한번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시장에서 ‘개처럼’ 돈을 버는 행위를 정당화하고 ‘정승처럼’ 사회공헌사업에 많은 돈을 쓰는 점에서 소로스와 외견상 닮아있다고 자부심을 느끼며 스스로 세련된 자본주의자라고 자위할지 모르지만, 소로스와 결정적인 차이점은 소로스는 시장에서 자신이 돈을 버는 것이 시장의 결함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점이다. 이 차이는 자본주의의 외형상 드러나는 그 모든 동질성을 뛰어넘는 하늘과 땅 만큼의 간격이다. 한국자본주의가 여전히 천박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로스가 보이는 각성의 태도는 이미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ISO26000의 도입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에 대한 자율적 시장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경쟁자조차 이미 시장의 공공성에 대한 자율적 규제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을진대, 우리나라의 경우 시장의 규칙 제정자조차 시장경쟁자의 이윤추구활동에 대한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을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세련된 규범으로 여기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금융기관의 공익성에 관한 공청회가 그 극명한 현실을 드러내보여 주고 있었다. 이는 결국 전도된 가치체계가 만들어 놓은 시장에 대한 허구적 신화가 만든 현실적 결과이다. 한국자본주의 천박함은 시장의 결함에 대한 성찰성의 부족에서 비롯되고 있다. 시장에 관한 가치체계와 관련하여 모든 세련됨이 촌스러움으로 격하되고, 또한 모든 촌스러움이 바로 세련됨으로 승화할 수 있는 조건은 우리사회에서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까.
[김영철의 경제 읽기 11]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철 교수님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계명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과 [대구라운드]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과 내발적 지역경제론](2005), [지역은행의 역할과 발전방안](공저, 2004)과 [자본,제국,이데올로기](공저, 2005)를 비롯한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 글은, 2007년 5월 21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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