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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그러나 변하지 않는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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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문화시선]...
'최고.최상' 수성아트피아, 그리고 어제 '박문옥' 공연


젊은 엄마들의 모임

늦은 낮, 주차장에서 정면 쪽으로 향하는 툭 트인 마당은 미세한 쿠션감이 느껴지는 나무 단으로 분리되어 있고 질감에 의해 시각적 공간적 경계를 지시하는 그곳에 한 떼의 젊은 엄마들이 서 있다. 게을리 하지 않은 화장에 표시 안 나게 갖추어 입은 그녀들은 모두 선 채로 무언가 이야기를 열심히 주고받지만 결코 아이에게 눈을 떼는 일이 없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여지는 그녀들은 일일이 쫓아다니며 아이를 보호해야하는 시기를 지내고 이제는 눈길만으로도 아이에 대한 보호가 가능해진 시기를 맞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엄마들이다.

이제 겨우 위태로운 걸음을 떼기 시작한 아이나 아직 걷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더욱 어린 아이들의 엄마들은 아이와 엄마 단 둘이서 점점이 흩어져 있다.

뒤뚱 뒤뚱 걷는 아이는 절대로 예측하지 못할 방향 선회를 구사하고 젊은 엄마는 그를 뒤따르느라 바쁘디 바쁘다.
그녀들은 아이처럼 뒤뚱거리지만 아이보다 더욱 불안정하다. 또래집단은 연령에 상관없이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뛰어다니는 아이들

아이들은 툭 트인 마당에서, 그것 외에는 어떤 놀이 도구도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모습으로 뛰어다닌다. 마치 뛰어다니는 것 외에 육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처럼 보여 질 정도다.

간혹 완전 무장한 인라인스케이트 계집아이나 자전거 홀로 소년이 더욱 빠른 속도로 달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하나 아니면 둘이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며 온 동네 골목을 누비던 유년시절의 ‘동네 오빠, 누나, 동생, 친구들’이 아닌 학교나 학원, 때로 아파트 3층과 5층 친구 사이다. 연령과 사회적 테두리 속에서 구성되는 아이들의 또래집단은 오래된 공식 그대로이지만 규모는 축소되었다.


분수, 경계를 허물다
이제 분수는 커다란 용기 안에 담긴 커다란 장식품이 아니다. 용기는 사라지거나 최소한의 기능으로 존재한다. 분수대 앞에서 브이자를 그리며 사진을 펑펑 찍는 대신 침투하고 만지고 젖는다.

광장의 분수는 50 종류의 연출이 가능한 바닥분수다.
거침없이 공중으로 뿜어 오르는 물줄기는 약한 바람에도 물 입자를 흩트리고, 엄마들 혹은 성인들은 한 발짝 물러서지만 아이들은 결코 그런 법이 없다. 땅속에서 샘솟아 홀로 신화를 만드는 분수는 현대적 신화를 위해 변신, 변태, 변용되어 재가동되었다.


오, 그리스는 영원하다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주 공연장은, 지구라트 위의 성전처럼 우뚝 서서 날개를 달고 상승, 비상한다. 파르테논 신전의 삼각 페디먼트는 뒤집어져 하늘을 향해 열려 있고 위엄을 가진 기둥들은 하얀 강철로, 더욱 날씬한 자태로 솟아있다. 지구라트로 오르는 앞 광장은 밑둥만 남은 열주랑이 방향과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찔끔 찔끔 눈치를 보며 도입된 그리스는, 그러나 대한민국에 수두룩하다. 그리스에서 벗어날 방법은 아직, 특히 대한민국 관 건축에서는 없다.

최고, 최상
“최고, 최상의 맛을 드립니다.”
“최고, 최상의 공연을 보여드립니다.”

대중에게 있어 가장 불붙기 쉬운 감정은 증오이다. 증오는 화르르 타 올라 바짝 태워버리지만 마음의 위안은 주지 않는다. 이러한 사고는 어쩌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존재했던 시대의 정신에 고착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위험한 사고일 수도 있다. 모든 기준은 강남에 있고 모두가 강남 주민의 정신으로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명품운동

‘문화도시락 운동'을 아십니까?
[문화도시락 운동은 독지가와 기업이 단체로 티켓을 구매하고, 수성아트피아에서 각 티켓 제공자가 원하는 수혜 대상자를 찾아 연결해주는 일종의 문화복지 프로그램. 먹는 도시락이 육체적인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문화 도시락은 정신적인 성숙을 위한 자양분인 것이다.
이 운동은 부모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가 없다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수준 높은 클래식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여기에 문화 소외계층인 소년소녀가장이나 불우한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층을 주 대상으로 삼았다.](5월 17일 매일신문)

운동은 변화한다. 주체에 있어서나 방법에 있어서나 목적에 있어서나.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가 문화 예술을 집어삼켜도 ‘클래식’에 따라붙는 구호들이며, 지구가 폭파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계층이다.


방침과 강조

[오는 4월 30일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작업에 한창인 김성열 수성아트피아 관장은 "대구는 전국 어느 도시보다 많은 공립 공연장을 갖추고 있지만, 상당수가 대관 위주의 구민 회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어, 대구의 문화예술을 선도할 수 있는 명품 공연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따라서 "수성아트피아는 상업성이나 흥행성을 떠나 중·소형의 '좋은 작품'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지역 문화예술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운영하겠다."는게 김 관장의 방침이다.

....김 관장은 "결국 예산과 행정지원 시스템 등 수성아트피아가 구립 문화예술회관이 지닌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향후 성패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문화예술에 대한 공직사회와 지역민의 더 높은 이해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3월 16일 매일신문)

개관한지 한 달이 되었다.
“개관 기념 명품 페스티벌에 들어간 자금이 벌써 10억이다.”, “기획실이 클래식 부분에는 많이 약하다”,“조수미, 패티김 공연이 그나마 대박이었다.” 등, 시작 즈음이면 으레 터져 나오는 카더라 통신들이 사석에서 오고 간다. 소리 없는 수레가 어디 있던가.


2007. 5. 30. 7:30pm 무학홀 박문옥 콘서트

박문옥..
박문옥..
소공연장인 무학홀은 클래식 전용 극장이다.
음향은 핀란드산 자작나무가 맡고 있다. 소리확산이 크다.

공연 시작 20분 전.
약 320석 규모의 공연장 안은 웅성웅성하다.
30대에서 50대가 대세. 간혹 60대 어르신도 눈에 띈다.
허리 굽혀 악수, 허리 굽혀 인사, 명함이 오고가고 귓속말이 이어진다. 상호 인사가 필수인 어르신들의 대거 집합.

박문옥은 1977년 제 1회 대학가요제에서 <저녁무렵>이라는 노래로 동상을 받았던 트리오 ‘소리모아’의 한명이었다. 그때 <나어떡해>가 대상을 받았고 <젊은 연인들>이 은상을 받았었다. 나머지 두 사람은 지금 사업을 한다고 하고 박문옥은 그 후 30년을 노래해 왔다.


70-80년대 시대를 노래했던 남도의 가수.
이후 세대의 일부에게는 <직녀에게>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목련이 진들>이나 <누가 저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구할 것인가> 등 상업주의의 그늘에서도 순수하고 감동적으로 노래해 온 강하나 낮은 목소리의 가수이다.

1977년 소리모아..
1977년 소리모아..
그의 노래인생 30년을 축하하는 이번 공연은 전국 5개 도시에서 순회되었는데, 대구 공연에서는 대구의 노래패인<소리타래>의 오프닝과 명창 윤진철의 소름나게 좋았던 소리, 그리고 여전히 무리 없이 편안하게 노래하는 <기타하나 동전 한닢 뿐>의 이재성이 손님으로 함께했다.

특히 <소리모아>의 예전 멤버들이 모여 부른 <저녁무렵>은 세대들간의 청춘에 대해, 그 너무도 다름에 대해, 부럽고도 부러운 모습이었다. 피를 솟구치게 노래도 있고 눈물을 솟아나게 하는 노래도 있고 미소를 자아내는 노래도 있다. 그의 이번 공연은 전자를 모두 포함한, 미소를 터트리게 했던 시간이었다.

대화

“누구 공연 이었어?”
“박문옥 콘서트.”
“좋았어?”
“응. 무지 재밌었어.”
“근데, 그 사람이 왜 거기서 해?”

“안될 건 또 뭐야. 음... 대구는 원래 공연할 계획이 없었는데, 누군가가 하자고 밀었다던데. 대구에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좋은 공연이라고. 공연장들이 그렇게 갑자기 비워지는 것도 아니고 다들 사정들이 있으니까. 씨네80 대표가 도움을 많이 줬다고 공식적으로 인사하던데. 대구예대총장, 민예총, 예술마당 솔, 팔공문화원, 한국문화공동체, 대구여성회, 참여연대, 환경연합도 도움을 줬다하네.”
“으응.”

“그나저나 오월도 다 갔는데 아직 밤바람이 차네.”

[류혜숙문화시선 22]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 archigoom@naver.com



(이 글은, 2007년 5월 31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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