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서적, 그녀의 추억.."

평화뉴스
  • 입력 2007.06.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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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대구 사회과학 책방 '신우' 전정순씨.."길손은 점원이 되고 시대 아픔은 사랑으로.."


1983년 10월 6일.
대구시 중구 남일동 아카데미극장 뒷쪽의 신우서적.
이날도 그 남자는 문 닫을 때까지 구석에 앉자 책을 보고 있었다.
그가 돌아가는 길,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다. 비 맞고 가는 그에게 우산을 전해줬다.
그리고 다음 날. 그가 돌려준 우산에는 한통의 편지가 있었다.

"비를 촉촉히 맞으며 걸어가는,
혹은 뛰어가는 많은 사람들 보다는
덜 추워하며 덜 외로이 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스며든 우산이 어쩌면 처량했을 비를 막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신우서적 여주인과 그 남자는 그렇게 처음 ‘사랑’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달도 지나지 않아 ‘운동권’ 그 남자는 또 다시 감방으로 들어갔다.
‘반성문’ 한장 끝내 쓰지 않아, 같이 들어간 7명 중에 유일하게 1년6개월 만기출소.
그 남자는 옥중 ‘독방’에서도 고생했고, 그녀는 책과 영치금을 넣어주는 ‘빵순이’로 지냈다.

신우서적 여주인 전정순(50)씨..
신우서적 여주인 전정순(50)씨..
그의 만기출소 하루 전 85년 4월 22일.
대구교도소 교도관 한명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내일 출소하면 찾아와도 되는지 물어봐 달라네요..."
"놀러나 오라 카이소..."

다음 날, 그 남자는 신우서적으로 찾아왔고
서적 근처 어느 찻집에서 별말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 해 6월 10일, 책방 여주인과 손님은 한 이불을 덮었다...

신우서적.
80년대 대구지역 운동권과 문인들이 주로 찾았던 사회과학서점이다.
그러나, 그 책방 문을 연 주인은 ‘사회과학’과 거의 상관없는 대입 3수생 아가씨.

전정순.
195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그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로 나왔다.
경북대 국문과에 2번이나 시험쳤지만 모두 떨어져 ‘3수’의 길을 걷고 있었다.
1979년. 아카데미 뒷쪽에 있던 부모님의 작은 건물이 도시계획에 묶여 돈이 되지 않자,
‘월세’라도 건지자는 심정으로 그녀가 책방을 열었다. "공부도 잘 안되고 책이나 실컷 보자"며...

"그 시절, 문학소녀 아닌 사람 어디 있겠어요?
재미 없으면 하지 말자, 신명나게 하자는 마음으로 그냥 책방을 열었죠..."

그녀는 대구시청 근처 책 도매상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책들’을 계속 사들였다.
그런데, 그녀가 좋아하는 책이 남들에게도 좋았을까? 책방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 시절 가장 잘나가던 책은 이문열의 ‘영웅시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책방 벽에는 온갖 낙서가 가득했고, 대책없이 하루종일 죽치고 앉아 책을 보는 이들도 많았다.

모두가 가난한 시절. 책을 빌려가는 사람도 많았다. 너덜너덜한 헌 책을 누가 살까.
그냥 책방에 꽂아둘 수밖에 없었고, 죽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소일거리가 됐다.
"길손이 점원이 됐죠. 책보는 사람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책방 문을 연 이듬 해 1980년. 신우서적은 옆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1983년. 늘어나는, 죽치는 길손을 감당할 수 없어 서점 2층에 아예 찻집을 열었다.
사림(士林). 손때 묻어 팔지 못하는 책 100여권을 꽂아뒀고 죽치는 사람들을 그쪽으로 보냈다.

주로 운동권 학생과 문인들이 단골이었다.
"정말 하루종일 끝이 없었죠. 얼마나 많이 오는지...사람 보며 살았죠"

장정일.박기영.김용락.김진국.노태맹.김경민.박은수.박원순.신남희
윤정원.김용철.채경희.박종덕.박종문.권형우.이병술.박숙자.장대수
이희진.김기수.이상술.김찬수.박형룡.이연재.송철환.송창섭.권오국.
남영주.함종호.김영철.정학.이태수.박영아.이하석...

신우서적과 사림, 그녀는 수십명의 이름을 사연 섞어 말한다.
모두 ‘골수 단골’이었단다.


"박원순? 대구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박원순 변호사가 대구지방법원에서 ‘판사 시보’를 할 때였죠. 거의 매일 들렀죠.
그런데 늘 똑같이 책 한권은 사고 또 한권은 빌려갔었죠. 나중에야 알았죠 그 사연을..."

박원순 ‘시보’는 2권을 빌리기 미안하니 한권은 사고 한권을 빌려갔다.
돈이 없었던 그는 그렇게 빌려간 책을 법원에서 몽땅 복사해서 자기 책으로 만들었다.
훗날, 박원순 변호사는 전정순씨을 만나 고백했다. “나는 책도둑이 아니라 글 도둑었다”고...

그렇게 잘나가던 신우와 사림.
책방 여주인은 그 시절 지역 신문에 ‘신간 안내’를 쓰기도 했다.
신우와 사림은 지역 문인과 대학생, 언론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3수’를 잊은 채 사랑방 안주인으로 살았고, 1982년 계명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림’은 4년이 되지 못해 문을 닫았다.
신우서적도 86년 술집 ‘멍텅구리’ 자리로, 88년 전통찻집 ‘산하루’ 앞으로 옮겼다.
처음 책방을 연 곳과 멀지 않은 ‘중앙로’ 일대지만, 예전의 ‘신우’만큼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1992년, ‘신우서적’의 간판도 내려졌다...


그녀와 한 이불을 덮고 산 남자. 신창일(48).
경북대 학보사에서 활동하던 그는 82년 ‘현장’에 투신했고 이듬 해 손가락을 다쳤다.
제적돼 갈 곳 없던 그는 하루 종일 서점에 있었다. 그리고 2년 연상의 그녀를 사랑했다.
가을비에 마음을 전했지만 곧 다시 구속. 1년6개월을 꼬박 살고 출소해 85년에 결혼했다.

"그 사람에게 술 한잔, 돈 한푼 안 얻어 쓴 사람이 없었어요.
말없이 늘 사람들 챙기고, 힘들게 운동하던 사람들에게 ‘군자금’ 대고..."

그가 구속돼 재판을 받던 1983년 가을.
포승줄에 꽁꽁 묶여 끌려가던 그 남자의 뒷모습을 기억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질게도 고문받고, 독방에서 고생하고...그래도 힘든 얘기는 절대 안하는 사람이죠"

부부가 된 이듬 해 예쁜 딸 ‘나리’를 낳았다.
서적과 집안을 같이 돌보기가 그녀에게는 힘겨웠다.
남편은 여전히 ‘남 좋은 일’에...‘신우’는 그렇게 문을 닫았다.

신우서적의 그 많던 책들은 훗날 ‘새벗도서관’의 밑거름이 됐다.
전정순씨는 ‘성서공동체FM’에서 ‘담장 허무는 엄마들’이란 코너에 힘을 쏟고 있다.
장애가 있는 딸 ‘나리’를 키우며 겪는 엄마의 마음을 세상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살고 있다.

"사랑요? 그냥 시대의 아픔이었죠..."

앞산 어느 찻집에서 만난 전정순씨.
신우와 사림 얘기에 사춘기 소녀처럼 감상에 젖었다.
그리고, 남편 신창일씨를 말하며 때로 눈물을, 때로 미움을 보였다.

"순수하고 바보스럽죠.
그래도 잠든 남편을 보면 그렇게 착하고 사랑스럽네요.."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한 ‘신우서적’. 그리고 찻집 ‘사림’.
문학소녀 그녀는 쉰 나이에 접어들었다. 아련한 추억이 그녀를 울린다.

"신우.사림..그때 그사람들, 참..보고싶네요"


글.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pnnews@pn.or.kr / p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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