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잠잠하던 노대통령이 작심하고 한나라당 대표주자들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미군기지 이전 등 주요 대목에서 한나라당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연정까지 제안했던 여권의 정책기조에 비춰보면 조금은 어지럽다.
그래도 대운하의 허구성이나 독재자의 딸을 겨냥하는 노골적 발언은 관전자들에게 일말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지지자들이 열광하고 한나라당 진영이 발끈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양측 사이의 전선형성이 범여권 대선주자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분석들도 나왔다. 친노와 반노의 구도로 가서는 승산이 없다는 재빠른 계산이 그 걱정의 원인이다.
이번 대선은 과거 어느 때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참여정부가 혼란을 초래한 면을 부인할 수 없다. 서민의 권익을 전적으로 옹호해 주리라는 기대와 달리 참여정부는 성장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양극화 문제를 정면 돌파하지 못했고, 그 결과 노대통령 자신도 뼈아프게 인정하듯이 빈부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그 반작용으로 다수 서민들이 원조 재벌중심당인 한나라당에 의지하려 들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대표주자들에게서 서민들의 희망을 찾는 것도 한참 무리수 같다.
이 전 시장의 가벼운 말솜씨는 이미 노대통령의 화법에 단련된 국민들의 귀에 별 충격이 되지 못할 듯하다. 나는 오히려 그가 또 무슨 경박하고 재미있는 말을 쏟아낼 것인지 기대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의 성장지상주의와 개발독재적 의식구조 혹은 분배 의지 박약한 그의 야망체계를 감안하면 그의 집권이 서민에게 안정과 축복보다는 더 큰 굴욕과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장담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성장의 수준이 아니라 성장과 분배의 적합한 배율일 것이다. 허나 성장과 개발의 콘크리트벽 속에는 분배를 향한 서민들의 바램이 끼어들어갈 틈이 별로 없어 보인다.
박정희와 육영수의 향수를 주요 밑천으로 삼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서 서민의 희망을 찾는 것도 세계시민으로서 남부끄러운 일이 될 것 같다. 우선 정수 장학회 이사장으로 십여 년 동안 거액의 연봉을 챙겼다는 사실부터 께름칙하다. 그가 독재권력 덕분에 새파란 나이에 영남대 이사장 노릇을 했고, 더구나 불명예스럽게 퇴출되었던 전력도 산뜻한 이야기는 못될 것이다.
더구나 무소불위의 권력 덕에 누린 특혜에 대해, 또 인혁당 사건을 비롯해 독재정권이 자행한 반인륜 범죄에 대해, 일말의 반성도 부끄러움도 표현할 줄 모르는 그에게서 약자와 서민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허망한 일 같다. 그런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원칙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모든 대선주자들 혹은 모든 권력이 서민들에게는 거기서 거기라고 냉소주의에 빠질 것까지는 없다. 서민들을 배신했다고 전통적 지지자들에게서도 따돌림 당하고 있는 참여정부조차 인권 문제, 과거사 문제, 남북문제 등에서는 과거 독재정권들과 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가. 역사허무주의나 정치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권력의 성격차이를 확인하는 수고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선한 얼굴로, 착한 목소리로 시작된 대부분의 권력들이 자아도취증과 관성에 빠져 쉽사리 악한 권력으로 치달아온 역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이 점에서 선한 권력의 조건, 혹은 선한 권력으로 남아 있기 위한 조건을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1. 약자들(인간의 과도한 약탈로 신음하는 생태계까지 포함)의 생존을 얼마나 보살피고 빈익빈 부익부의 오랜 사슬을 끊고자 노력하는가, 아니면 입으로만 서민을 노래하면서 서민들을 양극화의 벼랑으로 끝없이 내모는가.
2.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와 관련해 민족생존의 차원에서 평화유지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가, 아니면 정권유지를 위해 공작을 일삼고 전쟁이라도 불사할 태세인가.
3. 노동운동, 학생운동, 민중운동을 사회통합의 원동력으로 받아들이고 인권과 사상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가, 아니면 운동세력들을 빨갱이 취급하고 고문이라도 하여 근절하려고 국가권력을 동원하는가.
4. 권력이 초래하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얼마나 수용하고 자체반성능력을 갖추어 가는가, 아니면 비판을 용납하지 못해 국민의 입을 막고 국민들이 알아서 기도록 노예근성을 심어놓는가.
5. 옳다 그르다, 정당하다 부당하다의 문제에서 국민들이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역사적 불의를 충분히 정리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이권을 갈취하기는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고 있는가.
6. 각 개인들이 자기 나름으로 세상의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다양한 양태의 권력들을 부단히 나누어가고 나아가 장기적으로 국가권력기구 스스로를 축소 해체해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가, 아니면 권력 독점의 수위를 갈수록 높이는가.
7. 그리하여 사회 전체에서 짜증나는 에너지가 아니라 의미 있고 신나는 자발성의 에너지가 활기차게 순화되도록 하는가, 아니면 에너지의 흐름이 한곳으로 쏠리고 막히게 하는가.
나는 앞으로 어떤 대선주자가 부각되든 그가 입으로 외쳐대는 선전 문구에 마음을 빼앗기기 전에, 그의 전력과 이에 근거하는 예상행로에 위의 척도들을 적용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선한 권력이 집권하도록 한 표라도 보탤 작정이다.
[홍승용 칼럼 32]
홍승용(평화뉴스 칼럼니스트. 대구대 독문학 교수. garam2000@naver.com)
홍승용 교수님은,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자랐으며, 서울사대 독어과와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지난 ’83년부터 대구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문예미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미학이론], [부정변증법], [프리즘], [문제는 리얼리즘이다] 등의 역서와 [루카치 리얼리즘론 연구], [저항의 아름다움], [변혁주체] 등의 논문을 썼습니다.
(이 글은, 2007년 6월 4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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