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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온정리 인민병원을 나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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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시사칼럼]
"그들은 하나라도 더 도와달라는 말과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 6월 말께 2박 3일 일정으로 북한을 다녀왔다.
필자에게는 3년 전 평양 방문에 이은 두 번째 방북이었다.

이번에는 국제보건의료재단의 동행 요청을 받았다.
국제보건의료재단은 2005년 12월에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과거의 민간 <국제보건의료발전재단>을 계승해 2006년 8월, 정부출연기관으로 재출범한 재단이다.

1년에 30억 원 정도의 정부 예산과 170억원 정도의 민간 후원금을 합해, 약 200억원의 예산으로,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의 가난한 나라에 의료지원사업을 펼치는 법인이다. 북한에도 수해지역 등에 의약품 지원사업을 펼쳐 오다, 작년 10월부터는 온정리 인민병원 현대화 지원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의 방북 용무도 온정리 인민병원 현대화 지원 및 의료협력 사업 현장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국제보건의료재단 관계자와 통일부 공무원, 그리고 안과 의사 두 분, 간호사 두 분과 함께 입북했다.

온정리 인민병원은 금강산 바로 밑의 마을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간의 지원으로 병원 외관과 내부도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남한에서 자원봉사를 신청한 안과 의사들이 번갈아 입북해 온정리 주민들의 안과 질환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주로 백내장 환자가 많았고, 백내장 수술이 최근 의료지원 사업의 핵심이었다.

온정리 인민병원의 약품창고..모두 남한에서 지원해 준 약품들이지만, 그 마저도 매우 초라하고 열악한 형편이었다.
온정리 인민병원의 약품창고..모두 남한에서 지원해 준 약품들이지만, 그 마저도 매우 초라하고 열악한 형편이었다.
얼마 전에는 내과와 치과 의료지원 사업을 펼쳤다고 한다.
필자와 함께 입북한 광주아이안과의 윤태중원장과 신민정간호사, 문산제일안과의 임동권원장과 정경옥 간호사 등 네 분은 모두 자원 의료봉사팀이었다.

온정리 인민병원의 병원장과 그보다 더 높아 보인 명예원장(당 간부)의 안내를 받아 병원 건물의 모든 방들을 빠짐없이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치과, 산부인과, 내과, 외과, 약국, 검사실, 원무과 등 병원 구색은 다 갖추고 있었다. 갱지 노트에 펜으로 몇 줄씩 적힌 환자 진료카드도 열어볼 수 있었고, 남한에서 지원해 준 약품 보관창고도 모두 안내받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작은 규모의 마을 병원인데다, 진료실의 시설과 환경, 약품 사정 등이 열악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필자는 몇 가지 찡한 느낌을 안고 돌아왔다. 혼자 간직할 수 없어 간단히 정리해 본다.

첫째는 예상했던 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북한의 의료 사정이 열악하다는 사실이다.
그 날도 우리 의사들이 진료를 보고 있던 안과 진료실 앞 복도에만 환자들이 서너 명씩 대기하고 있었지, 다른 과목 진료실 앞에는 환자가 없었다. 온정리 마을에 내과 환자, 치과 환자, 산부인과 환자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아마도 병원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너무 열악해서 환자들이 안오는 거라 여겨졌다. 그럼 온정리의 환자들은 어떻게 그 고통과 병을 이겨내고 있는 걸까?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환자 병력카드...병력을 펜으로 기록한 노트를 보는 필자 일행과 병원장. 오른쪽 노트들이 병력카드철이다.
환자 병력카드...병력을 펜으로 기록한 노트를 보는 필자 일행과 병원장. 오른쪽 노트들이 병력카드철이다.


둘째는 남한의 지원을 요구하는 북한의 자세가 매우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한 때 북한은 자신의 치부를 남한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혀를 찰 정도의 자존심(?)으로 큰 소리만 쳐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날 필자가 본 온정리 인민병원 관계자들은 하나라도 더 도와달라는 말과 표정을 아끼거나 숨기지 않았다. 사실상 딱하기 그지없는 내과 진료실, 산부인과 진료실, 검사실, 약품 보관창고, 그리고 우리나라 1960년대를 떠오르게 하는 환자 진료카드 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도, 약품 하나, 컴퓨터 하나, 혹은 의료기기 하나라도 더 지원받고 싶어 하는 그들의 절박함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들은 통일부와 국제보건의료재단 관계자에게 지속적이고 더 적극적인 지원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셋째, 국제보건의료재단과 남한 의료진의 의료지원 사업은 온정리 주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었다.
입국검사소의 북한 직원들, 금강산을 관광하면서 만난 북한 안내원들, 금강산 산악구조대의 북한 요원들도 온정리 인민병원 의료지원 사업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인민병원 지원사업차 방문했다고 하니,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작년 10월에 시작되어 아직 1년도 안된 온정리 인민병원 의료지원 사업은, 여러 모로 매우 효과가 높은 대북 협력사업인 것으로 느껴졌다.

병원 복도에서 설명하고 있는 병원장(여)과 명예병원장(당 간부), 그리고 설명을 듣는 필자 일행.
병원 복도에서 설명하고 있는 병원장(여)과 명예병원장(당 간부), 그리고 설명을 듣는 필자 일행.


병원을 나서는 마음이 내내 착잡했다.
저 순박해 보이는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 한켠이 답답해 오지만, 착잡한 이유는 또 있었다. 이런 대북 협력사업은 마땅히 훨씬 더 큰 폭으로 확대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섰지만, 남한 사회 일각에서 여전히 막강하게 꿈틀대고 있는 저 ‘퍼주기론’, ‘좌파정부론’, ‘전쟁불사론’ 등의 낡은 생각들이 그것이다.

역시 듣던 대로 금강산은 천하 명산이었다.
하지만 금강산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필자는 그곳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젊은 남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북한의 환자들을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성을 다해 진료에 임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그것도 남한에서 왔다는 그들을 믿고, 자신의 두 눈을 내맡긴 채 수술대에 누운 북한의 환자들도 아름답긴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꽃보다, 천하 명산 금강산보다도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이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문득문득 엄습해오는 답답함 속에서도 그 답답함을 떨궈낼 수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가슴에 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홍덕률시사칼럼 71]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원장과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 대구대학교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온정리 인민병원...(사진 왼쪽부터) 병원 명예원장(당간부), 통일부 주무관, 병원장(여), 김문봉 대구대 교수, 장주효 대구팔공문화원장, 필자, 김현경 국제보건의료재단 팀장.
온정리 인민병원...(사진 왼쪽부터) 병원 명예원장(당간부), 통일부 주무관, 병원장(여), 김문봉 대구대 교수, 장주효 대구팔공문화원장, 필자, 김현경 국제보건의료재단 팀장.


(이 글은, 2007년 7월 9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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