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날 옛날 카바레
이름은 브리앙, 몰락한 지주의 아들이었다. 열다섯 살에 상경해 제 밥벌이를 해야 했고 싸구려 숙소와 술집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수줍던 시골 소년은 거리와 환경의 언어들, 즉 선명한 속어, 생동감 넘치고 거칠고 냉소적이고 과감한 신조어들에 충격을 받았고 차츰 그 언어에서 시적인 힘을 얻게 되었다. 브리앙은 그 빌어먹을 도시를 거닐며 거리의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그 언어와 동시에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었고 곧 그 두가지를 녹여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인간적이라는 찬사에 걸맞는 노래를 만들곤 했다.
이후 그는 카바레를 열었다. 로트렉의 그림으로 도장된 그의 카바레는 하류인생들의 삶을 포착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손님들은 상류층, 예술가 등이었다. 브리앙은 그들에게 다양한 비속어를 쏟아내었는데 한마디로 그의 카바레는 도발과 관객 모독을 일삼는 극장의 시초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좋아했다. 그는 팔자 좋은 손님들을 똥처럼 취급한 것에 대해 “그들은 내가 농담을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큰 소리로 웃었다.”라고 말했다. (리사 아피냐네시 <카바레, 새로운 예술 공간의 탄생> 참조)
2. 행복한 가족..."마지막 10분"
연극 한편이 앵콜 공연에 이어 연장공연을 하고 있다. 제목, <행복한 가족>. 6월 28일부터 열린극장 마카에서 시작하여 지난 7월 14일부터 문화예술전용극장 시티에서 연장공연에 들어가 있다. 연장공연 첫날 매진이었다 하니 ‘앵콜’과 ‘연장’의 괴력을 느낄만하다.
“공연이 곧 시작됩니다. 이 시간, 조금 지루하시죠. 단돈 오백원, 예쁜 가격에 드리고 있습니다. 예, 여기에 행운이 들어 있습니다. 잘, 보시면 찾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전 거짓말을 못합니다. 필요하신 분, 없으시면 저는 갑니다. 아, 네, 복 받으실 겁니다. 여러분, 진짜, 정말, 반갑습니다. 연장 앵콜 공연을 맞아 작은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의 연극 제목은 무엇일까요, 확실합니까, 정말입니까, 네, 확실히 정답입니다. 오늘 오신 분들, 너무 양반이십니다.”
암전, 곧, 낮은 조도 속에 노인 등장. 겉옷을 벗고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벽에 건다. 암전.
광고를 보면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로 공연 내내 끊임없는 폭소로 몰아가다가 결국 눈물이 터질 수밖에 없는 마지막 10분’이라는 문구가 있다.
실제 한 시간이 넘게 웃음이 이어지다 마지막 10여 분 간 침묵, 그렇게 끝을 맺는다. 긴 공연이었기 때문인지 잠깐씩 호흡이 끊어지는 시간이 있기는 했지만 사위 역을 맡은 이중옥 배우의 몇몇 디테일 연기와 장남 역 이홍기 배우의 건달스러운 표정은 잔영이 오래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불편함을 자아내는 오버 액션들, 과다하게 전락시킨 종교적 요소, 지나친 반복으로 인해 오히려 에너지를 잃은 유머들은 전체를 풍자와 유머로 집약한다고 할지라도 날카로움과 리듬을 느낄 수 없었기에 오히려 불편했던 코믹함이었다. 극과 극은 같은 성질을 가진다. 때문에 완전한 반전으로 치달았던 마지막 10분은 덩달아 힘이 상쇄되어 감동이나 슬픔, 분노와 같은 순수한 감정보다는 씁쓸함이 진한 연극이었다.
그 씁쓸함이 이 연극의 힘이다. 이 연극에 대해 ‘현 사회의 가족, 노인 문제 등을 색다른 감각과 훈훈한 교감, 웃음으로 버무린 격이 다른 연극’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이 연극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일 뿐이다. 가족이나 노인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시대의 과잉, 이 시대의 상업성,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소적 긍정의 이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행복’과 ‘가족’이라는 상호 수식의 도덕을 철저히 파괴하는 방법으로 말하고 있다.
그 어색한 웃음들, 그 어색한 몸짓들, 그것을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때 즈음 노인의 진정한 슬픔을 보여준다. 그러니 노인의 슬픔이 진정 슬프게 다가올 리 없다. 새로운 관객 모독의 탄생. 브라보.
3. 지역예술 세미나
2007년 7월 19일,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 대구시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역문화소위원회가 주최한 세미나가 있었다. 주제는 “지역예술 지원체계의 현황과 과제”, 부제는 “광역시의 문화예술 지원전략” 이었다.
대구광역시 지역문화위원장, 문화예술 단체장들의 축사가 30여 분간, 이어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 이현식씨의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문화예술 지원 원칙과 기준”, 대구광역시 문화예술과장 안국중씨의 “대구광역시 문화예술 지원 현황 및 전략”, 부산발전연구원 도시경영사회연구부 부연구위원 오재환씨의 “부산광역시 문화예술 지원 현황 및 전략”, 울산 발전연구원 도시사회연구실 연구원 이재호씨의 “울산광역시 문화예술 지원 현황 및 전략” 발제로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쉽게 풀이하자면 각 광역시가 문화예술분야에 책정한 돈이 이만큼인데, 그것을 어떻게 누구한테 나누어주고 있고 그 기준은 이러하다 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정한 돈을 어떻게 나누느냐하는 배분의 문제였다.
각 광역시마다 상이하면서도 참신하여 벤치마킹할만한 기준과 방법들도 제시되었지만 교집합되는 부분에서 일관된 흐름은 사업위주로 간다는 것이었다. 즉, 돈을 쥔 주체가 지금껏 단체 중심으로 배분하던 것을 사업 위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단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고, 주체는 주체대로 공공을 내걸고 제 시대의 기념비를 세우는데 전력하겠다는 굳센 의지를 꺾을 리 없다. 문화사업, 문화예술사업, 공공예술, 창작지원사업, 기초예술진흥사업 등 등 등. 참으로 공공을 위한 다양한 이름들이다. 여기에 예술은 저 홀로 설 자리가 없다.
브레히트가 오래전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라고 했을 때 새겨들었어야 했을까. 성석제는 벌써 호랑이를 봤다는데, 최정화는 쓰레기들을 긁어모았는데, 아직도 쿤데라의 시에 희망을 거는 건 미련한 짓일까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될 일
(밀란 쿤데라. ‘시인이 된다는 것은’ 중에서)
'행복한 가족'을 보고 밤길 나서면서 문득 지난주의 이 세미나가 떠올랐고 그때 스타벅스 앞을 지나고 있었다. 예전, 제일서적이었던.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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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이 글은, 2007년 7월 26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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