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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 시대정신을 농락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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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경제읽기]
"당대 가장 큰 아픔을 부여안은 시대정신, 지금은 어떤가?"


요즘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부쩍 자주 쓰인다.
대선주자들은 본인이야말로 시대정신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용어는 헤겔에 의해 널리 알려진 말이다.
시대정신은 어떤 시대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에토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시대정신은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의 전유물이다.
한 개인이 역사의 정의에 대해 가끔 무력한 패배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개인을 뛰어넘어 사회와 인류의 역사는 그 구성원 모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진전한다는 믿음이 시대정신이라는 말에 녹아져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 사회에서 시대정신이라는 말은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지 않는다.
뉴라이트 재단이 ‘시대정신’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오히려 훨씬 자주 들먹이고 있다. 우파적 성향의 지식인과 보수 정당은 대체로 역사의 진보성에 대해 믿음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앞장서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을 앞세우고 자신의 비전을 시대정신과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는 아마도 최근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프레임 정치와 관련을 가질지 모른다.
우파 지식인과 보수 정당은 반대 세력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라는 개념을 미리 선점하여, 반대 세력을 시대정신을 참칭하고 있는 반역사적 무리라는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가 다분히 내비친다. 이쯤 되면 시대정신은 이미 정치적 수사일 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시대정신을 참칭하는 것은 포퓰리즘(Populism)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많은 사람이 시대정신을 말하지만 그들은 시대정신을 빙자하여 포퓰리즘에 대해 상호 공박하고 있을 뿐이다.
달을 가리키기 위해 손가락을 펴고 있는데 사람들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는 상황이 우리 사회에 펼쳐지고 있다.

어느 교수가 최근 신문 컬럼에서 시대정신을 시대의 성감대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그 교수는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하고 쉬운 예를 들어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였겠지만, 시대정신을 시대의 성감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즘적 사고의 전형이다. 성감대를 건드리면 사람은 흥분한다. 온갖 정신적 고민과 육체적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뿐이다. 성감대를 자극하는 것으로 그 고민과 고통이 치유되지 않는다.

시대정신은 시대의 고민과 고통을 치유하는 목적을 달성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가진다.
인류는 언제나 문제를 떠안고 속살 깊이 앓아 왔다. 그 앓음의 속성은 시대마다 다르게 규정되었고 당대의 사람들은 그 아픔 가운데 가장 큰 아픔을 부여안고 해결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하여 왔다. 이 과정에서 인류의 고민과 고통은 치유되고 인류의 자유는 확대되었다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전달하고자 하는 참뜻이다.

이런 점에서 시대정신은 시대의 가장 큰 아픔을 온 몸으로 함께 느끼는 사람에 의해 대변될 수 있다.
한 시대가 가장 아파하는 그 지점에서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가장 많이 눈물 흘리고 고통스러워 한 사람이 시대정신을 대변하고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인정된다. 반면에 사람들의 성감대를 자극하여 일시적으로 흥분케 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참칭한 포퓨리즘에 불과하다. 포퓰리즘이 시대정신을 농락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비극이다.

인류의 역사는 흐르는 강물과 같다.
흐르는 강물은 고비 고비 새로운 냇물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물줄기를 키운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로 시대의 결점에서 너른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을 수용하여 스스로를 치유하고 자유로워졌다. 격변의 시대에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이미 옛날에 지나쳐 흘러온 저편 역사적 골짜기의 기억을 붙들고 사람들을 잠재우려는 시도 또한 시대정신을 참칭하는 포퓰리즘의 무리라고 해야만 한다.

[김영철경제 읽기 12]
김영철(계명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kimyc@kmu.ac.kr)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철 교수님은, 경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5년부터 계명대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교육부 정책자문위원과 [대구라운드] 집행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대구사회연구소] 연구위원과 [대구경북지역혁신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방분권과 내발적 지역경제론](2005), [지역은행의 역할과 발전방안](공저, 2004)과 [자본,제국,이데올로기](공저, 2005)를 비롯한 많은 책을 썼습니다.



(이 글은, 2007년 7월 3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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