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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20년, 신천의 야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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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문화시선]
"신천 에스파스, 풀 한포기 자라 무성해지는 시간을.."

대봉교에서 수성교 사이 신천..
대봉교에서 수성교 사이 신천..

2007년 8월의 신천.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이라고 우겨도 되지 않을까.
붉은 코스모스가 만발하고 잠자리가 떼 지어 날아다니는 신천변의 모습은 푹푹 찌는 대기만 살짝 지워버리면 영락없는 가을모습이다.

신천의 대낮은 화투치는 노인 집단, 장기 두는 노인 집단, 운동하는 노인 집단이 매우 정적이고 한가로운 풍경을 만든다.

뻘 처럼 드러난 넓고 검은 흙더미 위에는 새들이 내내 머리를 처박고 뭔가를 찾아 종종걸음하고 카메라를 든 청년 잠복병처럼 그 모습을 쫓는다.

대부분이 그늘 속에서 빛을 피하고 있건만 잔디밭에 드러누워 책 읽는 금발머리는 태양이 두렵지 않다. 잠자리채 든 아이 달린다.

이십년도 넘은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본 것은.
신천에서 잠자리채 든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사건처럼 다가온다.

5시가 넘을 때쯤이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롤러브레이드를 타는 두 어른을 오래 바라본다.
이제 60대는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 체칠리아 수녀가 마을 주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게이트볼을 하는 아저씨의 몸짓이 근사하다.
자갈길을 맨발로 걷는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문득 뒤돌아 본 풍경.
멀리 교회의 첨탑과 열지어 선 푸른 나무들과 붉은 꽃이 몹시, 아름답다.

온갖 색깔들로 휘황하면서도 오로지 회색으로 느껴지는 데에 도시의 신비가 있다면 제 특유의 빛깔들 보다 수 억 배는 더 많은 빛깔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자연의 신비일 것이다.

7시가 넘으면 신천변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이들, 엄마들, 아빠들, 천천히 달리는 모녀,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짧은 바지의 숙녀들, 완벽하게 갖추어 입은 자전거 맨들, 그리고 쿵짝 쿵짝 음악소리.

혼자서는 이밤이 너무 길어요 땡벌, 땡벌.. 핫 핑크색의 셔츠를 입은 선생님의 동작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중년의 아주머니들. 맨 뒤쪽에는 아저씨들도 몇분. 구경하는 사람들.

대중가요에 맞추어 저마다 시범자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는 사람들, 군무의 형태를 띤 그들의 저녁 운동을 보며 새마을 운동의 조기청소가 떠올랐다.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동경잡기>에 보면 고대 삼국시절의 ‘선인문화도’에 대한 설명이 있다. 거기에는 ‘당시 발달한 음률과 기예가 하나 되는 악가무일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해진 시간마다 행해지고 있는 저녁의 집단 운동은 현대 중산층 어머니들의 악가무일체 문화도를 그리고 있다.


"처음부터 인공 개발이 아닌 야성을 살린 자연 복원이었어야 했다"

신천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1987년 신천 첫 종합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시멘트 공화국의 정부답게 일단 테두리는 콘크리트로 말끔히 발라졌다.
1990년에 오폐수 유입 방지시설이 마련되어 썩은 물이 없어지긴 했지만 동시에 신천 자체는 말라붙어 버렸다. 그 대책이란 것이 하수처리장의 물을 방류하는 것이었고 1997년 2월 하루 10만t 통수가 이루어졌다. 길다란 콘크리트 어항에 물 붓는 형국이었다.

상동교 옆 신천..
상동교 옆 신천..
2001년 7월에는 방류수 대신 임하댐 물을 퍼 올린다는 발표가 나왔지만 양이 부족해 불가능 할 때가 많아졌다. 그러자 수질 안정화 실패, 종합개발 미비라는 언성과 함께 콘크리트 어항이 아닌 자연하천으로 개발했어야 했다는 말들이 그제야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인공 개발이 아닌 야성을 살린 자연 복원이었어야 했다.

신천에서 수달이 발견되면서 형세는 또다시 바뀌었다. 수달 발견이라는 대단한 보도들이 이어졌고 그 사이 수달의 죽음이 한컷 사진으로 실리기도 했지만 2005년 초 4마리였던 수달이 2006년 4배나 불어난 16마리가 발견되면서 자연은 ‘이것이 우리의 힘’이라는 것을 스스로 말하기 시작했다.

갖가지 개발 계획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신천 금호강 종합개발계획’이 발표되었고 300억 원 이상을 투입하는 신천 수질환경 개선을 위한 유지수 개체 사업이 또 별개로 발표되었다. 300억원 중 150억원을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지원받기로 하고, 대신 일정 개발권을 주겠다는 시와 주공사이의 교환이었다.

그러나 발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택공사와의 협약이 파기되는 일이 터졌고, 이어 두 사업의 설계비 예산까지 시의회에서 삭감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시는 ‘주택공사의 임대주택 사업을 대구시민들이 반대해서‘가 그 이유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천 수질을 1등급으로 개선하는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한다. 국비 150억 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시비 등으로 대체해 2010년 완료할 계획이다.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는 내외국인들에게 1등급 수질의 신천을 자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시의 모든 계획들의 종국은 2011년에 있다.


"머지않아 풀들이 자라날 것이다. 대구 하천에서는 처음이다"

2007년 8월의 신천은 분명 똥물의 오명을 벗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썩 괜찮은 모양새를 가지고 있고 신천 둔치는 다양한 행사의 장이 되기도 한다. 대구 남구청과 TCN대구케이블방송은 8월 4일부터 9일까지 매일 오후 8시 ‘폭염탈출 신천돗자리 음악회'를 개최했다. 중동교 남쪽 무선모형조정경기장에서 열린 음악회는 4일 ‘클래식의 밤'을 시작으로 5일 ‘퓨전음악회', 6일 '트로트 콘서트', 7일 '국악의 밤', 8일 '7080 콘서트' 그리고 오늘 9일에는 시민이 참여하는 ‘신천사랑 가요제'가 열린다.

중구청은 8월 24, 25일 이틀간 오후 8시 대백프라자 옆 신천둔치에서 ‘신천 음악 영화제'를 여는가 하면 북구 생활체육협의회는 8월 31일까지 경대교에서 도청 간 신천 둔치에서 걷기교실을 연다. 머지않아 2007 대구 컬러풀 페스티벌도 열릴 것이다.

풀들은 그 생명력으로 무성한 광합성을 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적어도 친환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데에 부끄럽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는 시멘트 위에 돌멩이 갖다 붙이는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최소한 친환경 블록을 깔고 자연석으로 제방을 쌓을 줄 알게 됐다.

최근 파동 상동교에서 가창교에 이르는 용두3보 주변 460m 구간에 하천 둔치와 도로 경계에 4, 5m 높이의 돌무더기들을 쌓았다. 홍수에 대비한 제방 설계로 동글동글한 호박돌들을 쌓고 그 틈새를 흙으로 채웠다. 머지않아 풀들이 자라날 것이다. 대구 하천에서는 처음이다.


사회적일자리와 친환경적 하천관리 사업

‘친환경적 신천 가꾸기 사업’도 있다. 대구YMCA, 대구광역시 도시개발공사, 그리고 시가 함께 추진하는 이 사업은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의 하나로 기업과 정부, 시민단체가 힘을 합친다. 노동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은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익성 등으로 인하여 시장에서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는 보건.사회복지.교육 등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비영리단체 등에 의해 일자리를 창출’ 하는 것으로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사회적일자리와 친환경적 하천관리 사업을 기업 연계형에 도입했다.

사업내용으로는
○ 신천과 금호강 합류지점 동편 둔치 약 1,500여평 (대구시로부터 무상임대)
○ 신천둔치 생태문화 경관 조성
○ 신천생태 파수꾼 육성 및 신천 생태 감시활동
○ 신천 에스파스 블로그 ․후원회 조직, 운영을 통해 시민들의 참여 확대 유도
○ 유아 및 어린이를 대상으로 생태놀이터, 생태학습장, 생태 관찰 장소 및 신천일대를 적절히 활용한 생태문화교육 프로그램(숲속 예술 학교, 유치원) 운영을 기획 운영하여 수익 창출

향후 계획으로는
○ 대구광역시 도시개발공사로부터 3년간 총 1억5천만원 지원 및 각종 자재 및 장비등 지원 및 대구광역시로부터 사업장소 무상임대 및 운영경비 지원
○ 3년간에 걸친 생태경관조성사업과 관리 및 생태교육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하여 사회적일자리를 통한 수변환경 개발 및 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프랑스 파리의 세느강을 중심으로 실업자들을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육성하여 친환경적인 생태문화경관을 조성하는 자활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2009년까지 ‘생태와 복지가 함께 살아나는 신천 에스파스 사업’을 벌이고 이후에는 대구YMCA가 ‘사회적 기업’ 형태로 운영을 맡을 예정이다.


신천 에스파스..."흙을 뚫고 나온 풀 한포기가 자라나 무성해 지는 그 지난한 시간을.."

에스파스는 파리 세느강의 환경 정비를 담당하는 회사의 이름이다. 에스파스의 직원들은 대부분 노숙자와 장기실업자 등 취약계층으로 회사 자체가 일할 의욕은 있으나 고용되기 어려운 사람만을 고용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올해 초 사회적 기업에 대한 KBS의 보도가 있었다. 시민단체로 출발해 10년 만에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한 사회적 기업 회장의 인터뷰였다.

“저는 주주가 아니라 임금 노동자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란 영리만을 추구하지 않고,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수익의 일정 부분을 공익 목적에 사용하는 기업을 말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면서 사업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취약계층을 위해 국가나 민간의 영역이 아닌 제 3의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파스, Espace는 공간, 우주, 간격, 사이, 기간을 의미하는 불어다. 참으로 그 의미가 깊다. 신천 에스파스 사업은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 공간의 성격과 그 공간을 만들어가는 시간에 대해, 흙을 뚫고 나온 풀 한포기가 자라나 무성해 지는 그 지난한 시간을 기저에 갖고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후 사회적 기업이 될 대구 YMCA의 행보 또한 기대된다.


[류혜숙문화시선 26]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 archigoom@naver.com



(이 글은, 2007년 8월 9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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