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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프로젝트의 희생자들"
[김민남 칼럼]
"정체성 물음은 일상의 다짐일 뿐, 떠벌릴 일은 절대 아니다"
2007년 08월 17일 (금) 11:30:03 평화뉴스 pnnews@pn.or.kr
   
정치와 철학을 대조하여, 흔히 정치는 상대를 죽이는 것이고 철학은 상대를 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정치는 있어야 하겠고, 그래서 상대를 죽이는 짓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기 위해 최선의 것이 아닌 차선의 것을 찾는 대화로 상생하는 것이 정치의 정도라고 했겠지.

그런데 상대를 완전히 죽여 완승해야 직성이 풀리는 패도의 정치가 정치권을 넘어 기업에도 교육에도 종교에도 기승을 부린다. 패도를 즐기는 자들은 상대를 적으로 내모는 음모를 숨기기 위해 자신들이 바로 최선의 것을 쫒는 무결점의 도덕군자인양 처신하기 예사인데, 그 처신술은 독설로 대중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아첨이다. 독설은 패거리를 지어서 선악을 가리기 좋아 하는 대중적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지게 되어 있기에 그렇다.


결국 패도의 정치꾼들은 이런 대중을 토양으로 힘을 쓸 수 있기에 그들은 당연히 대중을 우민화하는 ‘정체성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 프로젝트는 삼성맨이니 고려대맨이니 전교조교사이니 크리스챤이니 하는 특별한 인간형 창출을 위한 아주 인텐시브한 행동강화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말하자면 삼성맨이라는 이름을 얻어면 그들끼리 패를 이루고 그들끼리의 정실을 다른 이와 구별하는 행동특성이 되어버린다. 삼성의 전사가 된 삼성종업원과 삼성맨이라는 언사를 아무렇게나 쓰는 대중을 버팀목으로, 삼성은 무너지지 않는 성스러운 탑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찬으로 무리지음이 선의 세력이 되고 그 세력은 기꺼이 그 선의 전령사가 된다. 또 마찬가지로 전교조교사가 교육의 선을 독점하고 그들끼리의 전교조는 최선의 것만을 쫒는 이념집단이 된다.

한명의 천재가 수십만명의 둔재를 먹여 살린다는 삼성의 독설이 참여정부의 사회운영 전략으로 채택되고, 테러세력에 빌미를 주는 어떤 양보도 있을 수 없노라며 그들을 응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독설이 순교의 비상한 뜻이 되고, ‘평준화는 사회를 좀 먹는 아편’이라고 패도의 논법을 펴는 서울대가 신성한 권력이 된다 아무리봐도 권력은 사실에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식 위에 자리 잡는 것 같다. 이 땅의 ‘일류’라고 딱지를 달고 있는 기업 교육 언론 종교가 패도의 권력 행위를 일삼고 있다.

정체성 프로젝트의 희생자가 된 젊은이들이 아프간에서 신음을 토하고 있다. 그들의 신음소리와 함께 또 다른 정체성 프로젝트의 희생자들인 텔레반의 신음소리도 듣고 있다. 당장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21명의 희생자들을 구해야 하고,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정체성프로젝트의 희생자들을 구할 문화운동을 벌려야 한다고, ‘이해없는 신앙을 강요하지 말라’는 김용옥의 고함이 그 요구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체성 물음은 길 찿아 나서는 사람이 갖는 겸손의 다짐이다.
성공을 쫒다가 잃어버린 가족에게 이웃에게 용서를 구함이다. 우리속에 도사리고 있는 연약함의 드러남이다.
정체성 물음은 인간으로 살아있음의 증거일 뿐 떠벌릴 일은 절대로 아닌데, 그런데 하물며 나눔과 사랑의 종교가 신도들에게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간증하라고 다그치는 짓을 자행하고 있다.

정체성 물음은 활동이다. 일꾼답게 오늘을 일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상이다.
일꾼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일년후 나의 모습을 또렷이 그려 보는 비전의 물음이다.
오늘의 내 삶을 가지고 내 과거와 내 미래에 대해 묻는 물음이다.

수학교사가 누가 어떻게 보더라도 수학다움의 수학수업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 수학교사의 정체성이다. ‘유사’ 수학수업에 빠져 들지 모른다고 근심하는 수학교사가 비로소 정체성 활동에 나선다. 유아교사에게 유아교육하도록 조건을 만들려고 노심초사하는 것이 유아교육 행정가의 정체성 활동이다. 유아교육 교수들이 모여 유아교육 정체성을 말잔치하면서 유사 유아교육을 정론으로 만들어버리는 패도의 짓을 한다. 모든 유사 행위는 패도의 말잔치로 치장되게 되어 있다. 교육행위에신뢰를 쌓고 그리고 타당함을 증거하는 것이 교육학의 정체성 활동이다.

정체성 물음이 어찌하여 존재의 물음이 아닌 패도의 선전이 되어버렸을까.
모범인간과 불량인간을 가르도록 일제가 파놓은 함정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음이 그 이유라고, 종교와 정치가 이 함정을 지금도 더 깊이 파고 있노라고 말하고 싶다. 이해없는 믿음에 근거한 일체의 정체성 프로젝트를 경계하자.


[김민남 칼럼 12]
김민남(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경북대 교육학과. mnkim@knu.ac.kr )



(이 글은, 2007년 8월 13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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