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문화거리
제 몸집만한 가방을 둘러멘 아이가 깡통을 차며 지나간다. 인도와 차도의 경계석 곁에는 하수도를 찾지 못한 소나기가 모여 있다. 차들이 휭 달리고 자전거를 탄 한 무리의 어린 소년들 곡예를 한다.
대구학원에서 봉산오거리까지 600M. 그 길에 크고 작은 화랑들, 고미술, 고서적점들, 표구점, 화방, 차, 공예, 출판기획, 서적, 식당들, 커피숍들, 아파트, 초등학교, 오락실, 꽃집, 슈퍼마켓, 문방구, 교회, 새마을금고, 주차장, 중구 청소년 문화의 집, 그리고 봉산 문화회관이 꼼짝 않고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너비가 60cm쯤 되려나. 인도는 자전거와 작은 오토바이들의 주차장, 혹은 대걸레, 화분, 박스, 조형물 등이 점령했다. 가로등도 인도에 있고, 가로수도, 전봇대도 인도에 있다.
차도는 말 그대로 차의 길이다.
일렬로 선 차들 혹은 달리는 차들.
사람들은 인도가 아닌 차도를 걷는다. 자동차 승!
붉은 소탑과 하얀 거탑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이 거리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명성? 적어도 유동 인구는 많아졌다.
양산을 든 아주머니들과 어깨를 드러낸 아가씨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은 남자들이 거리를 걷는다.
아파트 상가
그 곡선에 따라 인도는 넓어지고 좁아지지만 기존의 인도보다는 훨씬 넓어 제대로 사람이 다니는 길 구실을 한다.
커피숍과 와인 숍 앞에는 작은 테이블을 놓고 차양을 드리웠다. 거리의 연속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다.
국비무료교육
상가 앞에서 두 노인이 말을 건다. “그 카메라 뭐요? 80이요?” “아뇨, D70s에요.” “사진작가요?” “하하, 아니에요.” “우리도 사진하거든. 관심이 많어. 요즘은 포토샵을 배워. 저기서. 차비까지 줘.” “포토샵을 배우세요? 와~ 매일 오시겠네요. 재미있으세요?” “그럼 재밌지. 매일 와. 아가씨도 해. 접수하는데 가르쳐 줄까?”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 나이 많아.” “함께 배우는 분들도 같은 연령대인가요?” “아니야. 아니야. 젊은 사람들이 더 많아. 재미있어. 우리? 60이 넘었지.”
그곳은 그늘이다. 거리에서 유일하게 풍성한 그늘이다.
돗자리를 깔고 앉은 세 아저씨들 곁에는 물통이 놓여 있다.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은 할아버지는 가 닿는 시선이 없다. 오후 6시가 되자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봉산문화회관 2층
봉산문화회관 2층에는 카페테리아와 전시실이 있다.
지난해에 왔을 때는 카페테리아가 공사 중이었는데 지금은 전시장이 공사 중이다.
전시장은 천장고를 높이고 쓸모없는 공간들을 일체 정비하는 리노베이션 중이다.
찻값이 싸고 노 스모킹이어서인지 청소년들도 온다.
이곳에서 뜨개질 모임이나 스페인어 모임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복을 입은 세 여고생이 차가운 음료와 조각 케익을 먹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나누다 나간다. 화장실 거울에 붙어 서서 머리를 빗으며 이야기한다. “우리 어디갈래?” “신천 갈까?” “그래 신천 가서 놀자.” 오, 신천의 재발견인가 방황하는 별들인가.
거리에서
문만 뚫어놓은 갤러리들 앞 보도는 라그랑주 포인트처럼 에너지를 만들지 못한다. 몇몇 갤러리 같은 갤러리를 갤러리로 만드는 것은 하얀 벽면과 할로겐 조명이다.
이제 막 새로운 전시를 시작한 예송갤러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다.
들어서거나 말거나 나가거나 말거나 라디오인지 텔레비전인지 소리들이 높았다 낮아지고 이야기들이 높았다 낮아진다. 입구 책상위에 놓인 팜플렛을 뒤적이자 가격표를 보여준다. 석 갤러리는 문이 잠겨 있고 문화공간 G는 들어서자 불을 켠다.
문화공간 G
문화공간 G는 거리의 갤러리들 중에서 전시장 면적이 꽤 넓고 천장고도 높다. 창고형으로 지어진 전시장은 천정의 검정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면을 모두 검정 바둑판 모양의 스폰지로 발라놓았다.
주변에 그다지 높은 건물도 없는걸 보면 천창을 낼 만도 했을 텐데 이렇게 흡음 시설을 해 놓은 것은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공간 G는 비영리 문화단체로 총 9개의 소규모 동아리를 운영한다. 가곡교실, 와인모임, 문예, 미술사를 공부하는 그림 사랑회, 클래식 음악감상 소고회, 플롯모임, 국악 등 다양하다.
거리는 건물 자체가 1층은 상업 공간 2층은 주거공간으로 만들어진 작은 박스형이 다수를 차지한다. 갤러리 Ro 는 주거공간이었던 2층을 전시공간으로 바꿔놓은 곳이다.
작가 노중기씨가 만든 공간으로 “작품이 하나라도 팔리면 작가들 가계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만들었지만 “자금만 더 들어갔다”며 웃는다.
지난해에 개관한 이 갤러리는 서양화를 중심의 전시공간이다. 낮고 좁은 곳이지만 물 한잔 시원히 마시고 쉴 수 있는 편안한 장소였다.
몇몇의 새로움
2007년 5월에 문을 연 세라믹 아트 숍인 ‘마마스 핸즈’는 도자기 핸드 페인팅을 일반인들에게 강습한다. 일일체험도 가능하다.
매우 느리지만
화랑들이 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중반, 이후 하나 둘씩 늘어가면서 봉산동 좁은 골목은 화랑가를 이루게 되었고 1991년 중구청에 의해 ‘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다.
도로를 포장하고 하수도를 정비하고 인도를 만들고 은행나무 가로수를 심고 가로등을 세우고 간판도 정비했다.
그 정비의 계획성은 매우 의심스럽지만. 벌써 16년 전이다.
봉산 문화의 거리는 일반 대중이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특화된 시장의 형태에 더 가깝다.
그러한 가운데 대중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이 아주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것은 항상 오래된 것이며 오래된 것은 항상 새로운 것이다.”라는 블랑키의 표현대로, 16년 전의 시작을 이제 다시 새로움으로 봐 보는 긍정적 인간이 되어 볼까. 언젠가 오래된 것이 될 새로운 것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지금에 대해. 13년 전 최초에 가졌던 거리에 대한 미성숙한 환상, 그 후 지속되고 견고해진 거리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이 이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매우 느리지만.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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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8월 23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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