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네!
처음부터 백수는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섬유계통에서 2년 넘게 ‘직장인’ 타이틀도 달고 다녔다. 그러다 덜컥 사표를 던졌다.
1년 반 동안 여행을 하고, 흙집 짓는 것도 배워보고, 귀농 공부도 해 보고, ‘녹색’을 헤집어보고, 생각도 하고, 그렇게 떠돌았다.
귀농을 바랬고 소농을 꿈꾸었다. 나 혼자만의 귀농은 의미가 없었다.
행복하고 즐거워야 했다. 공동체의 문화가 큰 화두가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고 싶었다.
죽어도 싫다니까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험이 시작되었다.
도시에서, 모여서, 수다 떨고, 배워보고, 연극도 해 보고, 떠나보고, 얼마나, 어떻게 즐거운가의 실험.
대구 B급 인터넷 1인 잡지, 안분지족
잡지는 대구를 사랑한다.
"아웃백보다는 명성 족발이 좋고, 윤도현 밴드보다는 밴드 ‘포장마차’가 좋다. 홈플러스 보다는 알뜰마트가 좋다. 홍대 앞보다는 클럽 헤비가 좋고, 미스 사이공보다는 만화방 미숙이가 좋다."
잡지는 대구 제품, 대구 가게, 대구 배우, 대구 공연장, 대구 사람을 사랑해 달라고 자꾸자꾸 강요할 것이다. 대구에서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들, 대구에서 재미나게 살아 갈 사람들, 대구에서 재미나게 사고 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잡지질’의 이유이자 소득이다. 아, 백수에서 잡지 편집장이 된 것도 소득이겠다.
여기는 어중이 떠중이, 당나라 부대, 문디 반상회, 아마추어 동호회
그래서 잡지는 대구에 사는 시간 많은 사람들을 편애한다.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전부 해본다. 재미있게 사는 법의 연구다. 어마어마하게 노래를 잘하는 사람, 무시무시하게 잘하는 바이올린 연주자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보고 싶다면, 한다. 기타, 서예, 뜨개질, 바이올린, 드럼, 걷기, 여행, 외국어, 노래, 연극, 책 읽기, 그림 그리기, 등등.
“무엇보다도 돈 적게 들이고 재미있게 사는 법을 연구한다. 돈 쓰면서 재미있기는 쉽다. 프로페셔널 하게 가르쳐 주면서 돈 받는 선생님보다 어설프게 가르쳐 주지만 공짜인 선생님이 좋다. 배워서 밥벌이 할 것도 아니고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할 필요도 없고 독하게 하고 싶지도 않다.”
장비 갖추어서 스쿠버 다이빙 하는 게 더 뽀다구 나고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우리는 그냥 수영한다. 등산 장비 갖추고 높은 산을 오르는 게 더 멋지지만 우리는 그냥 신천변을 걷는다. 이왕 하는 거 번역과 통역이 가능할 정도로 깊이 있게 배우는 게 훨씬 쓸모가 많지만 우린 그냥 까막눈 일본어 한다.”
작은 것들끼리의 편애, 안문사카
안문사카는 안분지족 문화사랑 카드다. “에슥헤이 텔레꼼 카드 있는 분들이 아우트빽에서 20% 할인해주니까 조금 더 자주 가게 되는 뭐 그런 현상, 돈 잘 벌고 회사 규모 어마어마한 기업들도 죽기 살기로 서로 연합을 하고, 서로 혜택을 주고, 서로 손을 잡고 그러는데, 우리네 작은 업체들은 더더욱 손을 잡아야 하지 않겠나?” 현재 극단 예전, 카페 인디, 클럽 헤비, 공간 울림이 잡지와 가맹되어 있다. 물론 안문사카 소지자는 각 업체에서 할인을 받는다.
때로는 연극배우
그는 연극배우다. 대구 연극제에서 상도 받았다. 그럼 백수가 아니었네! 프로인가?
내 기억에 그 발표회는 TV의 그 어떤 개그 프로보다 웃기고, 돈 주고 본 그 어느 공연보다도 감동적이었다. 친구들이, 식구가, 내 삶 깊은 곳에 관계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이, 내 친구들이 보면서 웃어주고, 소리쳐주고, 박수쳐주는 무대. 무대 위의 사람도 무대 아래의 사람도 즐거운 무대. 그래서 나는 공연을 할 때마다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필사적으로 표를 판다. 객석에 내가 아는 사람이 없으면 정말이지 흥이 안 난다.”
“잘 만들어서 돈 많이 벌어서 배우들 돈 많이 주는 게 연극의 성공인가? 연극은 상업과 비상업의 중간지점이다. 소극장도 그렇다. 객석과 무대가 멀지 않다. 대구 관객들도 그런 것에 애정이 있다. 돈값을 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역 공동체에서 예술 하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극 삼류 러브스토리
락 공연도 아니고, 뮤지컬도 아니고, 그냥 음악극이라고 하자. 밴드가 연주를 하고 중간 중간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연주가 끝나면 연기, 다시 연주, 다시 연기, 이렇게 이어 이어 하나의 드라마가 있는 공연으로 탄생했다.
직접 대본을 썼고, 직접 연기하고, 친구 둘을 배우로 끌여 들였다.
8월 18일, 클럽 헤비에서, 전혀 새로운 형식의 놀이가 펼쳐졌다.
관객은 40여명 이었다. 그럼, 기획자이기도 하군.
밥 철학
얼마 전 그는 결혼을 했다. 4년 연애한 아내는 바이올린 연주자다.
직장을 버리고 백수가 되었을 때, 잡지를 시작했을 때, ‘헤어지자고 하겠구나’ 생각했단다.
애인의 말. “나 때문에 너 답지 않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리고, 결혼했다.
궁금하다. 어떻게 먹고 사나?
"감독님이 예전에 하신 말씀이 있다.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려면 밥만 먹고 살줄 알아야 한다. 극장에 와라. 밥 주께.’ 밥도 먹고, 잡지질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아내 때문에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게 살고 있다."
백수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잡지의 편집장이기도 하고, 모임의 주동자이기도 하고, 연구자이기도 하고, 기획자이기도 하고, 대본을 쓰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한 사람.
대. 구. 인. 손. 호. 석. 이. 다.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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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8월 3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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