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 1 ..."뻔한 거짓 공약과 허언, 정직한 후보는 정녕 없는가?"
왜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자기가 대통령되면 모두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사회학을 30년 넘게 공부하고 있는 필자 눈에는 지금 우리 사회의 과제들 가운데 뭐 하나 쉬워 보이는 일이 없는데, 그들 눈에는 모두가 만만하게만 보이는가 보다.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 일본-중국 등과의 역사.영토갈등 문제, 사회양극화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 일자리 창출 문제, 경제패러다임을 바꿔가는 문제, 한미 FTA 문제, 농촌ㆍ농업 문제, 공교육 살리고 사교육비 줄이는 문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문제, 환경 문제, 지구 온난화 문제, 지역갈등 문제, 비수도권의 황폐화 문제, 국가균형발전 문제, 지방분권 문제, 저출산-고령화 문제, 연금개혁 문제 등, 정말이지 필자에겐 쉬워 보이는 일이 하나도 없다. 대통령이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능력있다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상황과 여건 역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쉽게만 해결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난제들로 필자에겐 보인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 되겠다고 나서는 그 많은 후보들은 자기를 대통령 만들어 주기만 하면 그 쉽지 않은 문제들을 모두 다 잘 해결해 내겠다고 큰소리친다. 지지자들은 정말 그렇다고 믿는 건지 아니면 맹목인지 알 수 없지만, 후보들의 무책임한 큰소리와 허언(虛言)에 환호로 답한다. 필자는 그런 모습들이 답답하다. 아무리 표를 모아야 한다지만, 뻔한 거짓 공약과 진정성 없는 허언 경쟁은 봐주기 힘들다.
겸손하면서도 정직한 후보는 정녕 만날 수 없는 걸까?
필자는 이렇게 말하는 후보가 그립다. ‘나에겐 이 엄청난 과제들을 해결해낼 전지전능의 힘이 없다’고.
‘대통령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2007년의 대한민국은 이제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와 결심으로 문제를 풀어 낼 수 없을 정도로 다원화됐고 민주화됐으며 대단히 복잡한 구조 속에 놓여 있다’고. ‘그래서 문제 하나하나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도 이러저러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하고, 이러저러한 역할을 함께 감당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다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말고 요구하지도 말라’고... ‘비록 어려운 일이지만 국민 여러분과 함께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혹시라도 그런 후보는 없는 걸까? 그런 후보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필자에게, 대한민국에게 얼마나 큰 복일까? 선거판은 감동의 도가니가 될 수도 있을텐데...
망상 # 2 ..."그 사람이 그 사람, 하나같이 너는 틀렸다?"
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너는 틀렸다고만 하는 걸까? 어떤 때는 거의 달라 보이지 않는, 그래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 같은 사람들이 마치 원수처럼 싸우기도 한다. 그럴 때,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진정한 애국 의지보다는 벌거벗은 권력욕, 나 아니면 안된다는 교만을 보게 된다. 아무리 경쟁자이고 그래서 그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내 보여야 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표를 뺏어 와야 하는 처지들이라고는 해도 선거판이 너무 각박하다. 너무 전투적이고 너무 적대적이다.
이렇게 말하는 후보는 정녕 만날 수 없는 걸까? ‘당신은 이런 점이 참 좋아 보인다.’ ‘당신이 내건 이런 정책은 국가를 위해서 참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나에게도 당신의 이런 장점이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부럽다.’ 그런 광경을 꿈꾸는 것은 결국 망상일 수밖에 없는 걸까? 이렇게 인간적으로 감동주는 후보를 만날 수만 있다면, 필자에게 아니 대한민국에게 얼마나 복일까?
망상 # 3 ..."한국 정치 확 바꿔놓을 유권자, 어쩔 수 없는 망상인가?"
대통령 하겠다고 나선 이들이 대개 교만하고 경박하며 진실되지 못하고 전투적이기만 한 것은 필경 유권자들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정치학 개론 수준의 명제를 굳이 떠올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권자는 권력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정치와 정치인의 수준을 구조적으로 결정짓는 원천인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들 역시 그런 후보들을 나무라는 것으로 면피하려 하거나,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못된 후보들은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진 사람인 듯,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듯 괴로워하지 않는다. 자신만 청정하겠다는 뜻인지, 타락한 선거판을 외면하면서 자기 잘난 맛에 빠져들려고만 한다.
아무리 표를 쥔 유권자들이 큰소리칠 수 있는 선거 국면이지만, 유권자의 진지한 성찰 선언은 나올 수 없는 없는 걸까? ‘한국의 정치가 이런 수준에 머문 것은 유권자 탓이요 내 탓이다.’고,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들이 저 수준밖에 못 보여 주는 것 역시 결국엔 유권자 책임이요 내 책임이다’고 선언할 유권자는 없는 것인가? 뼈를 깎는 반성과 실천을 통해서 후보들이 더 이상 저렇게 교만할 수 없도록, 저렇게 경박하고 거짓일 수 없도록, 정치 체질을 바꿔놓고 선거 구도를 확 바꿔놓을 수는 없는 걸까?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망상이란 말인가?
망상 # 4 ..."잘못과 책임은 늘 당신 몫, 증발해버린 지식인 사회의 성찰"
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유권자들을 원망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일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내로라하는 이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을 원망하는 것이 훨씬 책임있는 자세일지 모른다. 예컨대, 언론과 교수들과 종교인들이 문제인 것이다. 필자 보기에 우리 사회가 지금 겪고 있는 이 혼돈과 고통과 불안에는 언론과 지식인과 종교인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 잘못은 없고 저 사람들 때문이라고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는 이런 지도층 인사를 만나볼 수는 없는지 착잡해진다. ‘내 책임이다.’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에게도 크고 작은 책임이 있다.’ ‘우리 언론인(교수들, 종교인)이, 나아가 우리 온 국민이 함께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이 난국을 헤쳐갈 수가 없다.’ ‘나부터 반성하겠다.’
본래 ‘성찰’은 지식인의 본연의 모습인데, 지식인사회에도 성찰의 모습은 언제 증발해 버렸는지 본 적이 가마득하다. 늘 내 잘못은 없고, 잘못과 반성과 책임은 늘 당신 몫이다. 늘 정치인만 잘못했고 유권자만 문제인 것이다.
망상에서 벗어나기
한참을 망상에서 헤매던 나는 길고 긴 망상의 늪에서 벗어난다. 그러면서 아하! 하고 무릎을 내려친다.
‘그렇지. 문제는 나 아닌가! 내가 변화하지 않으면서 왜 나는 후보 탓만 하고 유권자 탓만 하고 언론인, 다른 교수, 종교인 탓만 하고 있었던 거지?’
그리고는 게을렀던 나를 돌아본다. ‘난 그동안 뭘 했던가? 역시 문제는 나 아닌가?’
긴 망상에서 벗어나는 순간, 몇 날을 지루하게 내리던 비는 언제 그쳤는지, 얼마 만에 보는 찬란한 가을 햇살이 내 연구실 창가를 들이친다.
[홍덕률의 시사칼럼 72]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원장과 <대구사회연구소> 부소장, 대구대학교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7년 9월 1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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