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의 가관(可觀)"

평화뉴스
  • 입력 2007.09.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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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정치판 돌아가는 꼴, 입가에 쓴 웃음이 절로 베인다"


길거리에서 통째로 삶긴 채 쓰러지게 만들 것만 같은 더위가 끝없이 계속될 듯 하더니 며칠 째 햇살 한 줌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듯 매일같이 비가 추적추적거리고 있다.

비가 땡볕더위를 저만치 밀쳐 내었는지 그래도 가을은 어김없이 성큼성큼 다고오고 있는 듯한데, 세상이 달라지면서 한반도에서 반만년을 함께 해왔던 가을 들녘의 포만감과 여유로움이 오히려 낯설어지고 있다.

올 정기국회가 끝나면 가을걷이로 땀맺힌 이마를 닦으며 환하게 웃는 농사꾼의 모습은 더 이상 이 땅에서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도시는 콘크리트로 칠갑을 한 아파트 숲들이 시야를 가리고, 농사꾼의 손길이 끊긴 농촌은 도시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터에, 빠르게 변해가는 기후는 머지않은 장래에 한반도의 가을 풍경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래서 이 나라는 점점 볼거리 없는 삭막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


"정치인 노무현의 속내는?"

볼거리 없어 더 여유없는 이 삭막한 나라에 그나마 웃음 섞인 볼거리를 끊임없이 만들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정치인’이란 직함을 가진, 보통사람들과는 사고구조가 좀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 ‘볼거리’를 글깨나 읽은 사람들은 ‘가관’(可觀)이라 하고, 그런 ‘볼거리’에서 자연스레 스며 나오는 ‘쓴웃음’을 ‘조소’(嘲笑)라고 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PD 연합회 창립 기념 축사에서 다가오는 대선과 관련된 정치꾼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그 쪽(한나라당)에서 나온 사람한테 이 쪽(범 여권)에서 줄서 가지고 부채질하는 요즘 정치가 참 가관”이라 논평했다.

정치가 가관인 것이야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이겠으며, 대선판에 줄서기야 정치꾼들의 동물적인 생존본능에 따른 것일진데 새삼 ‘가관’이랄 것도 없는, 그저 그냥 선거 때마다 보는 역겨운 현상일 뿐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자신이 먼저 ‘저 쪽’과 연정을 하자고 애걸복걸한 적도 있지 않은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에 대해 굳이 그 후보와 지지세력만을 꼭 찍어 초를 치는, 대통령으로서가 아닌 정치인 노무현의 속내가 무엇인지가 못내 궁금할 따름이다.


"민생탐방 하고도 '한미FTA' 적극 지지?...'장관' 던지고 대선캠프?"

정작 그 후보의 행적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행적이 가관인 것은 따로 있다.
그 후보는 한나라당 소속일 때부터 대선을 겨냥하여 민생탐방을 했던 적이 있다. 자신이 직접 제작하고 감독.출연까지 했던 속칭 「체험, 삶의 현장」의 정치인 버전이었던 셈인데, 수염도 깍지 않고 꾀죄죄한 모습을 한 채(목욕까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생탐방이랍시고 온 동네방네를 싸돌아다닌 뒤 점점 삭막해져가는 우리 사회를 위해 그가 내놓은 비젼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그는 지금 민생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한미 FTA 협상 체결에 가장 적극적인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도대체 그 후보는 민생탐방이란 걸 왜 했으며, 민생탐방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뒤늦게 그 후보를 추종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미 FTA 협상 반대집회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시낭송까지 했던 사람도 있다. 가관인 것은 맞긴 맞다.

어디 그 뿐인가? 친일관료가 건국공신이 되고, 또 1공화국에서부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능력있다”는 평가를 받는 나라에서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란 말은 학생들 한자시험에나 나오는 말인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현직 장관이 임명권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사표를 던지고 차기 대권후보의 선거 캠프로 냉큼 날아 들어가는 꼴은 보다보다 처음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관조차 제대로통제 못하는 청와대가 기자들과는 대놓고 맞짱을 뜨고 있다. 가관 아닌가? 입가에 쓴웃음까지 저절로 베인다.


"근무력증(筋無力症)에 흐느적거리는 시민단체"

다음 달이면 미국산쇠고기가 아예 통째로 넘어올 태세이고, 정기국회가 열리면 한미FTA 비준동의안은 아무런 토론도 저항도 없이 통과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권이 가진 눈곱만큼의 개혁성에 의지한 채 세를 키워온 시민단체는 정권의 개혁성이 사라지자 근무력증에 빠져 흐느적거리고 있다. (*. 근무력증(筋無力症) : 신경장애로 근육이 쇠약해지는 질환)

서로 부둥켜안은 채 마주보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오르내리는, 학생차림의 젊은 남녀들... 내일이면 실업자가 될지 모를 그들의 얼굴이 지금은 너무나 태평스럽고 한없이 행복해 보인다.

언론으로부터 주군을 배신(?)한 참모라는 비난을 뒤짚어 썼던 전직 청와대 비서관이 청와대 앞에서 펼치는 일인시위가 비소리와 어울려 한없이 처량하고 외로워 보이는 요즘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식자들은 '가관(可觀)'이 아니라 '목불인견(目不忍見)'이라 한다.


[김진국 칼럼 7]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대구경북 인의협 공동대표)



(이 글은, 2007년 9월 3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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