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반동(反動)"

평화뉴스
  • 입력 2007.11.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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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10년 만의 파산, 20년 만의 반전..시민운동의 책임은 없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아무래도 한국 정치사에 여러 가지 기록을 남기게 될 것 같다. 국회로부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 되었던(물론 기사회생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란 것 하나만으로도 두고두고 입에 오를 내릴 터인데, 그 외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기상천외한 기록들은 다 늘어놓을 지면이 없을 정도다.

'레임덕'이 없는 최초의 대통령, 직계가족만큼은 비리가 없는(아직까지는) 최초의 대통령,, 언론사와 대놓고 맞짱을 뜨면서도 기자들보다는 PD를 끔찍이 편애한 대통령, 법조인 출신답게 정치를 모두 법으로 해결하려는 듯 고소고발을 남발한 대통령, 국민이 위임해 준 권력을 스스로 놓아버린 뒤 그것을 대단한 치적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

여기에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뒤 후보시절 자신의 공약을 가장 철저하게 지킨 대통령이란 평가까지 받게 될 지도 모른다. 2002년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다른 모든 것 깽판 쳐도 남북관계 하나만 잘 하면 된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작심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그 공약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참여정부의 임기가 막바지로 접어든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틈에 자살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희망의 불씨가 꺼져버린 상태다. 참여정부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시민사회의 여론은 권력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다. 한미FTA를 맹목적으로 밀어붙이는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 저항하는 움직임에는 여지없이 공권력의 철퇴가 내려 쳐지고 있다. 대선이 코앞인데도 저 사람들이 뭘 믿고, 무슨 생각으로 출마를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이 바닥인 이유가 바로 이런 “깽판”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남북관계 하나만”의 치적으로 집권기간 중의 실정을 덮으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과연 온전히 관철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2007 남북정상 선언문』의 합의 내용에 대해 청와대 문턱까지 가 있는 이명박 후보가 벌써부터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렇고, 남북정상 선언문이 나오는 과정에서 실정법(국가보안법)에 위배된 부분은 또 어떻게 처리할 지도 의문이다.

햇볕정책의 주역들을 취임하자마자 특별검사까지 임명하여 남북교류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시켰던 사람이 바로 국민의 정부를 계승하겠다던 노무현 대통령 아닌가. 남북의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있는 상황에도 어느 대학교수의 연구 활동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나라의 검찰들이다. 그러니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는 한은 “적성국가를 잠임.탈출”한 것도 모자라, “고무.찬양”하고, “적성국가의 수괴”와 두 손을 덥석 잡기까지 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졸임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형편이 이런데도 이른바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치세력들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지나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대선공약으로 내세울 수 있는 추진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금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닥쳤는데도 전혀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다. 단지 그 이유가 이명박 후보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정당 사이의 대결이어야함은 상식이다. 막판 선거전에 어떤 인물이 이명박 후보와 대적하게 될지, 또 결과는 어떻게 될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거니와 그 인물을 뒷받침할 세력이나 정당은 어떤 성향의, 어떤 지향점을 가진 정당일까? 한나라당과는 어떤 정책적 차별성이 있을까? 대선용 급조정당이란 비판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지금의 선거는 일당독재체제에서 치러지는 선거와 하나 다를 바가 없다.

1987년 6월 항쟁이후 군부독재의 근거지였던 민정당은 몰락했다. 그 이후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민정당의 후예들과 그 주변.지지 세력들은 최소 30%에서 최대 50%를 훌쩍 넘는 국민의 지지, 그것도 과거처럼 총칼이 아닌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한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환골탈태했다.

반면에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집권 10년 동안 집권세력을 뒷받침해 줄 정치세력은 지리멸렬, 처참한 파산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대통령의 어이없는 깽판! 한나라당과의 연정제안이었음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집권 여당의 정체성과 존립기반을 대통령 스스로 허물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정치판도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고, 국회 다수당에 이어 대권까지 노리는 거대정당인 한나라당과 군소정치세력이 할거하는 20년 전의 일당독재체제로 회귀하고 말았다.

2007년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것은 어떤 면에서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 역사의 반동(反動) 을 저지할 만한 힘을 가진 정치세력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 아니겠는가. 1987년 유월 항쟁의 성과가 20년 만에 철저하게 반전되고만 이 현실에 시민운동 진영의 책임은 없는 지 곱씹고 또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진국 칼럼 8]
김진국(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의사. 대구경북 인의협 공동대표)



(이 글은, 2007년 10월 15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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