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들의 수준"

평화뉴스
  • 입력 2007.11.0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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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률시사칼럼]
"감동은 커녕 흠결 투성이..대통령은 국민의 자존심인데.."

대선 판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여전히 이명박후보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아직 상대 후보가 확정되지 않은 시기의 지지율이라는 점에서 허수가 섞여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항할 각 당 후보들 윤곽이 잡혀가면서, 본격 대선전은 이제부터가 아닐까 한다.

고백하자면 필자 역시,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 상의 무응답층, 부동층으로 분류되는 관망자인 것이다.
주위 분들로부터 누구를 지지할 거냐고 질문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에 앞서서 필자는 2007년 대선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하고, 그 위에서 2007년 대선 후보에게는 어떤 점이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감동이 있어야 한다.

첫째, 대선 후보라면 유권자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민들에게,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세계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유력자라고 일컬어지는 후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게도 감동이 없다. 감동은커녕 온통 흠결 투성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지도자 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며, 우리 사회의 품격과 수준에 절망하기도 한다.

후보들을 감싸고 있는 소위 대선 캠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행태도 감동은커녕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정감사장에서 후보를 보호하겠다며 벌이는 소위 뱃지들의 몸싸움은 한마디로 가관이다. 뒷골목 조폭 수준의 행패, 오로지 표만을 의식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내뱉는 저급한 욕지거리 모두, 감동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

그럼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무조건 반대하고 무조건 나 잘났다고 뻐기는 말들에서는 누구라도 감동을 받을 수 없다. 뻔한 수준의 선동, 돌아서면 들통날 거짓과 궤변들도 감동을 담아낼 수는 없다.

국민은 후보들의 말보다는 후보들의 지나온 삶을 본다. 국민은 후보들의 삶에서 그가 되돌려져서는 안되는 과거인지, 우리가 어떤 고난을 뚫고서라도 다가가야 할 미래인지를 가려낸다. 낡은 패러다임과 낡은 세계관은 유권자를 절망케 할 뿐이지만, 미래를 제시하는 이에게서는 벅찬 감동을 얻는다. 국민은 또 후보들의 삶에서 거짓과 진실을 구별해 내고, 탐욕과 헌신을 구별해 낸다. 시류에 편승하는 소인배 기질과 오로지 국민과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군자의 향기를 가려낸다.

국민은 지금, 후보들의 지나온 삶을 통해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해온 이가 누구인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베푸는 삶을 살아온 이는 누구인지, 공적 권력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지 않을 이는 누구인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는 이는 누구인지, 가짜가 아닌 참지도자는 누구인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진실과 헌신의 삶을, 군자의 향기를 내뿜는 후보를 기어이 찾아내, 그에게서 감동을 얻는 것이다.


<2> 감동만으로는 약하다. 희망이 필요하다.

둘째, 대통령후보 자리는 감동만으로는 약하다. 희망이어야 한다. 그의 생각이, 그의 정책이 그의 말이 그의 삶이, 자체로서 밝은 희망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서민의 삶이 너무도 팍팍하기 때문에, 또 우리는 지금 엄중한 역사적 전환기를 살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서민들도 살만한 사회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우리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미래를 맘껏 설계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대한민국은 더 이상 21세기의 미아로 전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자신감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하고, 바로 그런 믿음에 근거한 희망을 국민들이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역사적 전환기의 내용과 방향과 의미와 과제를 정확하게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적 전환기에는 그 전환기 혼돈의 본질을 가려볼 수 있게 하고, 그 혼돈을 헤쳐갈 수 있도록 해주는 역사적 통찰력이야말로 지도자의 첫째 덕목이요, 그 지도자의 통찰력은 또한 국민이 절망을 떨치고 일어서 혼돈과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도록 만드는 나침반이요 원동력인 것이다.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20세기의 성공담으로는 우리의 청년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어설픈 주장이나 투박한 논리, 이미 익숙해 있는 구태의연한 답들로는 국민의 믿음을 살 수 없고 따라서 희망을 줄 수도 없다. 역사적 전환기의 지도자는 혼돈기의 쉽지 않은 숱한 과제들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3> 국민통합이어야 한다.

셋째, 차기 대통령은 그 자체로 국민통합이어야 한다. 그 자신이 국민통합과 평화의 철학이요, 상징이어야 한다. 차기 정부는, 대통령이 몸소 체현하고 있는 국민통합과 평화의 철학과 상징을 다양한 정책으로 만들어 내고 집행하는 역할을 하는 손과 발일뿐이다.

대통령은, 남-북, 영남-호남, 수도권-지방, 그리고 상위20-하위80, 정규직-비정규직, 장애인-비장애인, 남성-여성 등으로 찢기고 갈라진 이 한반도와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실을 진정으로 마음 아파해야 하고, 이 분열과 갈등을 온 몸으로 녹여내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이여야 한다.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 외국인 여성과 그들이 낳아준 코시안, 그리고 새터민 등이 겪는 가슴앓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껴안을 수 있을 정도의 정의감과 국민통합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이 땅 구석구석에서 횡행하는 온갖 형태의 차별과 냉대에 분노하면서, 이 땅 어디서라도 우리와 함께 숨쉬고 사는 모든 이를 똑같이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인권 감수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군림하려 하고,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낼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내겠다는 철학과 의지도 갖지 못한 채 분열을 확대재생산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이는 차기 대통령으로는 명백히 부적절하다.


<4> 국민의 자존심이어야 한다.

또 하나 있다. 대통령은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이어야 한다. 천박한 물질주의자가 이끄는 대한민국의 수준은 그 정도로 국제사회에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뒷골목 싸움꾼이 이끄는 대한민국 역시 국제사회에서 그 정도로 취급받게 될 것이다. 강대국에 무릎꿇고, 약소국이라고 가벼이 여기는 사고방식을 가진 이가 이끄는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20세기 낡은 패러다임과 배신이 트레이드마크인 지도자가 이끄는 대한민국 역시 그 정도 수준으로 세계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받게 될 것은 뻔한 이치다.

우리 유권자가 누구를 차기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는 바로 국민 자신의 수준과 대한민국의 품격을 결정짓는 일이 된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서 국가의 격이며, 국민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 5년은 한반도가 통일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딛는 시기가 될 것이고, 한반도 평화에 기대어 우리가 동아시아 번영의 허브로 본격 발돋움하게 될 시기이며, 우리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중-러 등 열강의 각축이 불꽃을 튀길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 격랑을 헤쳐갈 국가와 대통령의 지혜가 특별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특단의 시기에,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내면서, 대한민국의 품격을 만방에 떨쳐낼 수 있는 이여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5> 물론 도덕성은 기본이다.

감동과 희망, 그리고 역사적 통찰력, 국민통합과 국민 자존심에의 감수성 등은 대통령 후보란 자리에 특별히 요구되는 덕목이고, 그래서 그것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너무도 중요한 덕목이 하나 있다. 바로 도덕성이다.

도덕성은 사회 지도자 누구에게나, 특히 사회지도층의 최정점에 있는 대통령에게는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한탄이 하늘을 찌르고 있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험악하게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 경제의 발목마저 잡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있게 제시되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춘 지도자를 세워내는 것은 그 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돈을 삶과 사회의 최고 가치로 여기는 천박성, 그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세,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않는 구태(舊態), 그리고 추악한 부패 등은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치명적인 흠결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도덕성이 갖춰지지 않고서는 대통령의 말과 정부의 정책을 국민이 존중하거나 따르지 않게 된다. 그것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처절한 비극일 뿐이다. 어떤 능력과 자질을 가졌더라도 도덕성에 치명적 흠결이 있다면, 그는 대통령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도덕성은 사회지도자에게는, 특히 대통령에게는, 다른 어떤 능력과 자질에 앞서는 기본적 덕목인 것이다.


[홍덕률시사칼럼 73]
홍덕률(평화뉴스 칼럼니스트. 교수. 대구대 사회학과. drh1214@hanmail.net)
* 홍덕률 교수는 <대구경북분권혁신아카데미> 원장과 <대구사회연구소> 소장, 대구대학교 <시민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평화뉴스> 창간 때부터 <홍덕률의 시사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은, 2007년 10월 22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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