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거 한데서 기다리지 말고 여그 여 앉아서 지달리라."
지붕 선만이 희미하게 드러나 있는 마고재, 어두운 대청마루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 마당을 서성이는 내게 손짓한다. "누구 기다리노. 어데서 왔노."
대답을 해도 같은 물음을 반복하시더니 "할머니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그람, 그람. 내가 30년대부터 여서 살았재. 저기 불서진 데가 우리집이라."..'여기'라는 단어는 정확히 알아들으신다.
여기, 삼덕동, 30년대부터 2007년 오늘까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방 마고재에서, 나는 그녀를 기다린다.
김정희. 설치 미술가라고도 하고, 환경 미술 운동가라고도 하는 그녀. 저-기, 온다.
삼덕동에 살지 않는 삼덕동 사람
“꿈이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대학에서 환경미술을 전공했고, 그래서 졸업하자마자 학원을 차렸죠. 바로 망했어요. 어쩌나, 어쩌나 할 정신도 없었죠. 그렇게 멍한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길에서 고등학교 때 활동했던 YMCA 선생님을 만난거에요. 여차저차 하다고 했더니, 그럼 우리집에 가서 지내라, 그러셨죠. 그 집이 바로 삼덕동 담장 허물기 1호 집이었어요.”
오호라, 이를 보고 운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가 98년, 그후 햇수로 10년이다. 10년을 삼덕동에서 지냈다.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고, 벽화를 만들고, 마을 문패를 달고, 쉼터의 아이들과 정을 나누고, 개발의 힘들과 싸우며, 마을 축제를 만들어 왔다. 그 10년이, 그녀와 함께 마을을 한 바퀴 걷는 동안 나에게 쏙쏙 다가왔다. “감기는 좀 어떻노? 삼일 약 듣지 않으믄 그거 안되는 기라.” 길에서 만나는 주민들이 옆집 이웃에게 말 걸듯 한다. 불 켜진 가겟집에서 창 너머로 웃음을 보내온다. 그녀는 삼덕동 사람이었다.
그녀와 함께 동네 한바퀴
그녀를 처음 만난 마고재는 마을 국악원이자 작업장이며 마을의 중심에서 사랑방 역할을 맡고 있는 한옥이다.
마고는 우리 전통 신화속의 대지모(大地母)를 의미한다. 마고재 옆에는 옛 삼덕초등학교 관사였던 ‘빗살미술관’이 있다. 아주 잘 보존된 일본식 가옥이다.
“이곳이 삼덕동 인형 마임 축제의 메인 공연장이에요. 여기에서 청소년 쉼터에 있던 아이가 결혼식도 했었죠. 동네 잔치였어요. 빗살 미술관은 삼덕동 재개발 문제로 시끄러울 때 개발추진위쪽에서 ‘우리가 돈 내고 본부로 쓰겠다’고 해서 한동안 격동을 겪었어요. 구청에서는 임대료를 받는게 이익이니까. 우리 쪽에서 사수했지만 매달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개발과 보존의 대립은 아직도 여전하고요. 벽화골목으로 가 볼까요.”
마고재와 빗살미술관 사이 골목, 고택들이 죽 이어지는 길가 벽이 모두 벽화들이다.
튀지 않는 벽에 부러운 눈길이 머문다. 집의 모양새와 담이 지니는 내재율이 벽화와 부딪힘 없다.
“벽화를 만들어 갈 때 집 주인과의 대화가 가장 중요해요. 그 집에 사는 사람이 가장 잘 아는 거거든요. 벽이 무엇을 원하는지. 눈에 확 드러나는 것 보다 보물찾기 하듯, 자세히 보면 정성을 알 수 있는 소박함이 좋은 것 같아요.”
벽화 골목에서 뿐 아니라 삼덕동 곳곳에 벽화들이 있다. 그것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조각 같기도 하고 손이 많이간 세공품 같기도 하다.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그 재료들이 대부분 재활용품들이다. 그녀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톱밥이나 흙, 나무, 병뚜껑, 과자봉지, 깨진 항아리 조각들과 기와 조각들, 갈빛 맥주병조각, 파란 소주병조각까지.
“동사무소에요. 이곳도 담장을 허물고 나서부터 저 정자나무 아래 평상은 할아버지들 고스톱 모임 장소에요. 하하. 맞은편 평상은 할머니들 장소구요. 코코버스에 가서 커피한잔 해요. 왠만한 카페보다 훨씬 좋아요.”
코코는 이동 도서관이다. 버스 창에서 반짝거리는 것들은 모두 과자봉지로 붙여 만든 거란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다.
"이 버스는 대구 모 버스회사에서 기증해 주신 거에요. 아니다. 사실은 기증해 주실 려고 했는데 절차가 너무 많았어요. 회사 사장님이 그러면 사라, 그래서 얼마 드리면 될까요, 했더니 ‘10원’, 그러시는 거에요. 정말 계약서에 10원이라고 적었어요. 신고하러 가니까, 이거 조사나갑니다 그러시대요. 조사는 안나왔어요. 너무 뻔하니까."
'머머리섬', 왜 인형 마임 축제인가
삼덕동 인형 마임 축제 ‘머머리섬’이 올해 여름에 있었다. 2회째다. 2006년 첫회 때 나왔던 자료를 보면 머머리섬에 대한 설명이 있다.
‘김포군의 최북단 보구곳리에 가보면 강 가운데 유도섬(留島)이라는 큰 섬이 하나 앉아 있다. 그 옛 이름이 ‘머머리섬’이다. 그 너머가 바로 북한인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섬 하나가 홍수에 떠밀려 임진강을 따라 떠내려 오다가 여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는 것이다. 오늘에는 세상의 큰 흐름에 밀려 가까스로 삶의 자리를 지키는 곳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것 저것 다 해 봤어요. 밴드들 연주, 국악, 무용, 댄스, 등등. 근데 인형극과 마임이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하기에 가장 좋았어요. 인형극과 마임을 하면 아이들은 거의 무아지경에 빠지죠. 어른들도 마찬가지에요. 어른과 아이 사이에 공통되고 통할 수 있는 정서가 만들어지는 거에요. 삼덕동 사람들의 삶을 지키고 문화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에요. 마을에는 생활과 함께 일도 있고 문화도 있어야 하니까요.”
집에 산다는 것과 마을에 산다는 것
"마을 태권도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동네에서 시범을 보이면, 부모들은 엄청 자랑스럽게 아이들을 바라보죠. 그것을 함께 보는 이웃들은 부러워하고, 자신들의 아이도 태권도 도장에 보내죠. 일종의 회전, 공생이에요.
개발을 한다고 골목들을 부수면 모퉁이 수퍼마켓, 식당, 미용실, 세탁소는 어떻게 살아가나요?
마을은, 함께 사는 거잖아요. 예식장 같은 데서 돌잔치를 하는 게 아니라 마을안에서 마을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잔치를 하는게 맞는거 아닌가요?
목공소에서는 나무 조각들을 얻고, 아크릴 상점에서는 아크릴 조각들을 얻고, 동네를 다니다 박스들을 주워 아이들과 집도만들고 인형도 만들고 그래요. 마을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요.
마을은, 단순히 하나의 단위가 아니라 같이 사는 공동체에요. 작가들이 만든 문패들을 직접 고르고 또 직접 이름을 적으시면서 곱다곱다 하시는 모습 보면 너무 뿌듯해요. 감사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작업들
"원래 아이들 가르치며 사는 게 꿈이었기도 하지만, 아이들은요, 아이들에게서 모든 것들이 나와요. 어른들은 벌써 머리가 굳어 있지만 아이들은 안 그래요. 모든 것을 얻고 배워요. 정말 놀라워요. 그 상상력과 창의력은."
"공공미술가로서 제 역할은 일상생활 공간과 일상에 대해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거라 생각해요. 소통할 수 있는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죠.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의 습관에서부터 새로운 각성을 이끄는 매개체, ‘일상생활에 대한 창의적 개입’이랄까."
서른 여섯, 찌짐 잘 굽는 남자 어디 없나
“요즘은 다른 지역에서 사례 소개를 해 달라는 요청이 많아요. 좀 많이 바쁘게 다니고 있어요. 그런 곳에 가니까 차비도 주고 발표비도 주고 그러대요. 먹고 사는 것은 걱정 없어요. 단지 모으지 못할 뿐이죠. 하하.
여동생 둘은 벌써 벌써 결혼 했죠. 저야 뭐, 아직 눈에 찌짐 붙여주는 사람을 못만나서..어디 없을까요? 찌짐 잘 굽는 남자.”
내년, 그리고 앞으로 3년간의 희망들
“내년에는 지난 10년간의 활동들을 모아서 책을 쓸까 해요. 그러면 요즘처럼 불려다니는 일이 적어지겠죠. 작업도 더 많이 할 수 있을 테고. 작업 할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그래도 이렇게 작업 외적인 일을 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이렇게 마을들이 하나하나 문화적 공동체로 만들어지고 언젠가 도시와 나라 전체가 그런 공동체들의 더 큰 공동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앞으로 3년 간은 꼼짝 않고 자전거 만들기 할 거에요. 두발, 세발, 네발 자전거도 만들고, 관광할 수 있는 자전거도 만들고, 아이들과 장애인도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아트 자전거 프로젝트에요. 버려진 자전거를 모아 수리하고 재생 과정을 거쳐 출퇴근용으로 활용하게 하고 예술디자인 자전거도 만들어서 도심이나 신천변에서 투어할 수도 있게. 동시에 일자리도 창출하는 거에요. 동참하실 분 없나요?”
밤 10시. 그녀는 아직 할 일이 있다며 다시 청소년 쉼터로 간다. 또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러, 그 생각을 뚝딱뚝딱 만들러, 만들어서 전하러, 그 와글와글한 신명의 고민으로 돌아간다. 삼덕동에 살지 않는 삼덕동 사람 김정희, 그러나 그녀는 더 큰 것을 위해 그곳을 고집한다. ‘이곳에서 탄탄하고 올 곧게 해야만 다른 곳에서도 탄탄하고 올곧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그녀, 대구 예술인 김정희다.
글.사진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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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7년 10월 25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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