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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게 사랑하는, 그 심장을 가졌는가"
[주말 에세이] 류혜숙
..."일년 전 그들,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을까"
2007년 12월 07일 (금) 12:25:17 평화뉴스 pnnews@pn.or.kr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향하던 키 작은 아이들이 운동장 한 가운데에 우뚝 서서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움직이지 않는다. 제 등짝보다 큰 가방을 둘러멘 아이들, 말라붙은 콧물로 꼬장꼬장한 얼굴의 소년들, 새침한 입매로 벌써부터 도도함을 익힌 소녀들이 조각공원의 석상처럼 섰다. 천천히 내려오는 태극기, 국기를 내리는 임무를 맡은 아이의 얼굴에 돋아있는 뿌듯함.

이 모든 풍경 속에 한 여자아이가 눈 속으로 들어온다. 국기가 내려오는 동안, 아이는 풍선처럼 점점 커진다. 어느새 훌쩍 삼십대 초반의 얼굴로 낯설게 선 여자는 갑자기 당황한다. 뜻을 곱씹어 본 적도 없고, 평생 그러하리라 굳게 다짐한 것도 아니던 저 문장은 또박또박 잘도 기억하는데,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오른손을 올려야 해? 왼손이었나? 두 손은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는다.

꿈이다. 선잠에서 깨어나 한참을 생각한다. 꿈이었구나. 나는 자랑스런...다시 한번 소리를 내어본다. 막힘없이 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오른쪽이었나, 왼쪽이었나, 시원한 대답은 소리가 없다.


일년 전 그들

일 년 전 꼭 이맘때였다. 직장을 그만두려 했던 언니, 사표를 썼다고 선언했던 C,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던 B를 기억하는지. 지금, 언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터에서 제법 단단한 뿌리를 뻗어가고 있고, 사표를 썼던 C는 허허실실 위태한 시간을 보내다 얼마 전 첫 월급을 받았다며 큰 웃음으로 한턱냈다. B는? B의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을까.

나는 어땠나. 지난 일 년 간 쓴 일기장을 넘겨보면 군데군데 새로 고치고, 조탁한 흔적들이 발견된다. 과도한 정서들, 모순된 감정들에 대한 퇴고, 자기부정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자간에서 꿈틀거린다. 감정들마저 새로이 구성하는 시간이 지난 일년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낭패감이 든다, 화가 난다, 목이 메인다.

그 꿈은, 낭패감이 들까봐, 화가 날까봐, 목이 메일까봐 소리 내지 못했던 내 심장의 메시지 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기 있어. 왜 나를 떠돌게 하니, 왜 나를 잃어버렸니. 가치 잃은 충성과, 무게 없는 의무와, 변해버린 맹세와, 기대 없는 약속은 널 사랑하지 않아. 난 미치게 널 사랑해, 그러니 이제 날 찾아, 라는.

자신의 결핍을 인정해야 할 때가 있다. 지난해, ‘그렇게 두근거렸으면 좋겠다’는 바램은 올해 ‘심장을 찾아야 겠다’가 되었다. 그토록 발광을 해도 행복해지지 않았던 것은 심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당신을 미치게 사랑하는, 그 심장을 가졌는가.

   
[주말 에세이 59]
평화뉴스 류혜숙 문화전문기자 pnnews@pn.or.kr / archigoom@naver.com



(이 글은, 2007년 11월 30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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