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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품에서 세상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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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송년 편지>
"마음으로 새긴 이름들..2008년 희망의 바다에서 뵙겠습니다"


대선 때문인지 올해 '연말'은 정리할 겨를도 없이 빨리 지나간 것 같습니다.
나흘 전, 27일에는 평화뉴스 매체비평팀 송년회가 새벽까지 이어졌습니다. 지역언론에 있으며 지역언론을 비평하는 현직 기자들. 3년쯤 같이 어울리다보디 웬만한 가정사까지 비평(?)하기도 합니다. 오밤중에 만났으니 술잔도 빨리 돌아갔습니다. 2007년 올 한해를 정리하며 재미삼아 '네글자'로 덕담 한마디씩 하기로 했습니다. 교수님들처럼 '고사성어'로 하려니 글발도 달리고, 그냥 '지 쪼대로' 넉자를 마추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고사성어는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의 '자기기인(自欺欺人)'이었습니다.

어떤 기자는 "올해 신문 만드는데 죽을 고생을 했다"며 자신이 쓴 코너 이름을 따 'oo기획'식으로 말했고, 또 다른 기자는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었다며 '정중동(靜中動)...'으로 올해를 정리했습니다. "그건 넉자가 아니잖아요"라는 핀잔에 "신문에서는 ...을 한 글자로 친다"며 받아넘겼습니다.
돈을 좀 벌어야겠다는 A기자는 '아주머니(money)'를, 떠나고 싶다는 B기자는 '나는 간다'를, C기자는 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는 뜻으로 '불광불급(不狂不及)'을 말하며 술 잔을 비웠습니다. D 선배는 올해 매체비평에 열심히 못했다며 '지웅 미안'으로 웃어 넘겼습니다. 저의 올해 네글자는 '망망대해(茫茫大海)'였습니다. 그 뒤에 '돛단배'를 붙였습니다. 고요한 바다라도 파도는 끝이 없고 바람은 배를 흔들 뿐 '순항'을 허락지 않고...

사흘 전, 꿈을 꿨습니다. 예전에 주로 다니던 경찰청 기자실이 보였고, 한 전국지 선배가 쓰레기 정리 좀 하라며 또 잔소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뭔가 기사 꺼리를 찾아 후배에게 전화하자 그 후배는 "남들 쓰기 전에 빨리 쓰자"며 닥달했습니다. 대선 후보가 왔는지 사람 많은 곳에서 사진 찍느라 부딪혔고 낯익은 몇몇 기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몇몇 장면이 뒤엉켜 새벽에 눈을 뜨니 '멍'했습니다. 한 겨울의 '개꿈'이었습니다.

이틀 전에는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습니다. 얼마 만의 등산인 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난 해 '앞산터널' 취재할 때 앞산 절반쯤 오른 게 전부인 것 같았습니다. 담배에 찌든 목구녕 콧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산에 가자고 꼬신 선배에게 "내년에는 경조사 아니면 만사 제치고 따라댕기겠다" 했습니다. 그 추운 날 갓바위에는 여전히 어머니들이 많았습니다. 합장하고 절을 하고..."잠든 아이의 머리맡에서 기도하는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하루 전, 12월 30일 일요일. 올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외투를 걸치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지금 쓰고 있는 '송년 글'을 끄적였습니다. 대선이 끝난 뒤부터 많이 생각했지만, 계속 저를 돌아보게 할 뿐 잘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뭘 썼나 싶어 지난 3년간 쓴 글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올해 '개혁'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개혁은 잘못을 고치고 더 잘살기 위해 필요한데, 한해가 저무는 지금도 '개혁의 실체'는 좀처럼 와닿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혁할 의지가 없는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입니다. 이제는 개혁의 원론을 넘어, 분명한 '정책'으로 국민들 가슴에 와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참여정부 출범 2년째, 평화뉴스 창간 첫해인 2004년 12월 31일 '송년 글'이었습니다. 3년 전 그때 '와닿지 않던 개혁'은 이 정부 끝까지 와닿지 않았고, 보란듯이 국민들의 모진 버림을 받았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씁쓸한 위안도 들지만, 이렇게까지 버림받은 '개혁'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 2007년 12월 31일 새벽. 어느 선배 기자가 찾아와 차 한잔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평화뉴스와 저를 걱정하고 격려해주시는 말씀에 울적하던 마음이 한결 좋아졌습니다. 어제 사무실에서 끄적이던 글을 다시 펴 이 문단을 넣어 고치고 다듬고 있습니다.

2007년 1월, '인혁당 무죄'라는 대법원 재심 판결로 시작해 12월 대선으로 한해가 끝났습니다.
'6월 항쟁 20년'이라며 많은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그 기념은 대선과 함께 '그들의 잔치'로 끝났습니다.
10월, 남북정상의 뜻깊은 두번째 만남이 있었지만, 한미FTA와 파병 연장은 여전히 이해못할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올해 평화뉴스 창간 3주년 행사를 했고, 시민사회, 대선, 전문가집단을 화두로 '작은 토론회'를 이어갔습니다.
'대안언론'으로 4년 가까이 지났지만, 제대로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지 늘 걱정입니다. 잘못하다 참여정부의 '개혁'처럼 와닿지 않는 '대안'으로 그칠까 밤을 설쳤습니다. 대선 때 후보들을 쫓아다니며 후보와 민심을 살피고 지역언론의 의제를 따졌습니다. 괜찮았나요? 묻기도 겁나지만, 평가는 늘 독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저는 솔직한 듯 솔직하지 않았습니다. 독자 앞에 공개할 것과 못할 것을 많이 가렸습니다.
할 말을 다하는 것 같지만 기사로 쓰지 못한 취재가 훨씬 많았습니다. 의미와 가치를 많이 따졌습니다.

이제 또 한해를 끝내며 '반성문'처럼 평화뉴스를 보고 또 다시 봅니다. 매일 뭔가를 싣고 또 올리는 제 마음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을지 생각합니다. 지난 해까지 매주 쓰던 '들풀편지'도 한달에 한 두번으로 줄었습니다. 생각은 많은데 기사에 쫓겨 차분히 편지 쓸 여유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사무실을 나설 때, 입에 신물이 나고 눈이 아파오는 피로를 자주 느낍니다. 어떤 날은 뿌듯함으로, 또 어떤 날은 무진장 쓸쓸함으로 돌아섰습니다. 스스로 짜놓은 규칙에 맞춰 이어온 날들...내내 긴장하며 또 한해를 보냈습니다.

입에 발린 말 같지만, 필자와 후원인들께 얼마나 감사하는 지 모릅니다.
필자와 후원인 이름을 사무실에 늘 펼쳐두고 있습니다. 이름은 얼굴을 떠올려 마음으로 새깁니다.

이름 모르는 독자들도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의 품에서 세상을 봅니다. 독자의 품에서 세상을 느끼고 그 온기로 글을 씁니다.
글은 오직 읽은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믿기에, 독자는 평화뉴스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여전히 작은 돛단배에 몸을 싣고 있지만, 찬바람 망망대해 희망으로 저어가는 힘은 '독자'입니다.


읽어주셔서, 곁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8년, 희망의 바다에서 힘차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12월 31일
평화뉴스 편집장 유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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