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트 전호성, 글 쓰는 달그림자, 그가 다시 왔다. 아니 그를 포함한 플레이스트들이 무대로 왔다.
지난해의 약속대로, 조금 늦었지만, 대신, 공주들을 데리고 왔다. 플레이스트들의 2번째 작품, '공주 시리즈'가 지금 '예술극장 온'에서 펼쳐지고 있다.
구분의 최소화, 공간 자체를 비틀다
좁은 홀 한쪽에 매끈한 아이보리색의 나무 의자들이 쌓여 있다.
입장하는 관객들은 모두 의자를 하나씩 들고 들어간다.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이 가깝다.
이들은 가까운 거리를 더욱 좁히는 시도를 한다. 누구나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에 의자를 놓고 앉는다.
단지 배우들의 등 퇴장에 필요한 공간 확보를 위한 양해는 있다. 구분의 최소화, 공간 자체를 비트는 형식이다.
막이 오르기 전, 관객들은 공간 곳곳을 활보하며 사진을 찍고 소품들을 구경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자리가 좋을까, 저기가 낫지 않을까, 의자를 엉덩이에 붙이고는 좋은 자리를 고른다. 과감한 이들은 무대가 되는 한쪽 구석의 탑 위를 점령하기도 한다. 그리고, 암전. 시작.
극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데렐라’, 그리고 ‘라푼첼’의 ‘공주’들을 모티브로 한 옴니버스 형식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아니고, 잔혹 동화도 아니다. 이 극은 ‘동화’ 자체가 아니다. 동화 속 물리적인 배경들, 오브제들을 빌려왔을 뿐이다. 극은 지금 이 시대, 플레이스트들이 보는 세상이다. 즉, 재해석이라기보다는 차용이다.
'플레이스트'에 직시된 이 시대의 '공주들'
그래서 공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그녀들이 아니다.
태생부터 공주인 사람, 착한 심성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공주의 지위를 획득한 사람,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아직은,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이번 공주 시리즈의 공주들이다.
플레이스트들에 의해 직시된 이 시대의 공주들이 외모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이혈세혈원칙주의의 키워드로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사실 고루할 수 있는 주제들이지만, 고루하지 않다.
실험을 넘어 관객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내재율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 트랙에서 주요하게 이용되었던 숏컷들은 그러한 전개 방법에 익숙해지기를 요청하는 다소의 인내가 필요했다. 기존 극들에 의한 익숙함 때문이라고 차치할 수만은 없는 아쉬움. 의도했던 효과들은 그들만의 실험을 넘어 관객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섬세한 내재율을 필요로 한다. 자칫 장면 전환의 미숙으로 보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2시간의 긴 공연시간이 금세 지나갔고, 그들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는 확실하다.
마지막 대사는 이렇다. "믿어. 난 믿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사랑해 줄 사람이 꼭 있을 거야." 암전, 끝.
그리고 배우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마지막 인사가 너무 멋스러워 뭉클했다.
그리고 디렉터 전호성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그는 극의 마지막 대사를 스스로 무대 위의 배우로서 다시 말한다.
"믿어. 난 믿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사랑해 줄 사람이 꼭 있을 거야."
이 말은 지난해 그의 말과 중첩되어 다가온다. "관객을 믿습니다. 저는 무대 위에서 가장 솔직합니다."
ps. 공연이 끝나고 그가 나에게 물었다. "어땠나요?" "유쾌했어요." "허, 거참, 성격 이상하시네..."
그의 질문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그의 반응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안다. 하지 않고 나온 나의 뒷말은 이렇다.
"플레이스트들의 재기와 눈빛들이 참 유쾌했어요."
공연은 이번 주말(20일) 까지다. 4시와 7시 30분, 하루 두 번.
장소는 시청 앞에서 동인파출소 방향 부림 초밥 지하 예술극장 온. 입장료는 만원. 초대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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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8년 1월 17일 <평화뉴스>주요 기사로 실린 내용입니다 -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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